지난 3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지난 5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각본상, 남녀조연상을 휩쓴 2025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오애순(아이유/문소리 분)과 양관식(박보검/박해준 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평생 애순을 고생시켰다고 생각한 관식이 마음을 먹고 가게를 인수한다. 하지만 대형 호텔과 골프장이 들어선다던 애순과 관식의 식당부지는 허허벌판이 됐고 애순과 관식 부부는 아들 은명(강유석 분)의 원망을 들으면서 쓸쓸한 말년을 보낼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부지런한 '무쇠' 관식은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며 가게를 일으켰고 때마침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대형 호재가 생겼다. 여기에 근처에서 유명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금은동이네'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지역의 맛집이 됐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관식의 망해가던 식당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효자 드라마는 바로 제주에서 많은 부분을 촬영했던 SBS 드라마 <올인>이었다.
▲<올인>은 방송 후 제주도 촬영장소가 관광명소가 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올인> 홈페이지
이병헌의 전성기를 활짝 연 드라마
1991년 KBS 공채 14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병헌은 1992년 KBS 일일드라마 <해 뜰 날>에서 주인공 최형만 역을 맡으며 주목받았고 같은 해 캠퍼스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데뷔 초부터 드라마에서 꾸준히 관심을 받았던 것과 달리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와 <런어웨이>, <그들만의 세상>, <지상만가> 등 영화에서는 번번이 흥행 참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던 1999년 이병헌은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통해 영화에서 첫 흥행작을 만들었고 < 공동경비구역JSA >와 <번지점프를 하다>, <중독> 등에 출연하며 흥행 배우로 떠올랐다. <아스팔트 사나이>와 <아름다운 그녀>, < 백야 3.98 >,<해피 투게더>, <아름다운 날들>까지 SBS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던 이병헌은 2003년 자신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드라마 <올인>에 출연했다.
<올인>에서 어린 시절부터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타고난 센스와 두둑한 배짱으로 최고의 겜블러에 등극하는 김인하를 연기한 이병헌은 SBS 연기대상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을 휩쓸었다. <올인> 이후 다시 영화에 전념한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과 <좋은 놈,나쁜 놈, 이상한 놈> 등에 출연했고 2009년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국가안전국 대테러요원 김현준 역을 맡았다.
2010년대부터는 '연기괴물' 이병헌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됐다. 2010년 <악마를 보았다>와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 시리즈, <레드:더 레전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에 출연한 이병헌은 2015년 <내부자들>에서 정치 깡패 안상구 역을 맡아 엄청난 열연을 선보였다. 2017년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에 출연한 이병헌은 2018년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9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2020년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모티브로 한 김재평 역을 맡은 이병헌은 2021년 전세계를 강타한 <오징어게임>에서 베일에 싸인 프론트맨을 연기했다. 2023년 <콘트리트 유토피아>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쓴 이병헌은 3월에 개봉한 바둑영화 <승부>에서도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줬고 오는 29일 공개되는 < 오징어게임3 >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최고 시청률 47.7%, 투자가 아깝지 않았다
▲<아름다운 날들> 이후 2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이병헌은 <올인>을 시청률 47.7%로 이끌며 전성기를 맞았다.
SBS 화면 캡처
학창 시절에 영어 공부를 특별히 열심히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두 영 단어 'ALL'과 'IN'을 합친 '올인'은 가지고 있는 칩이나 돈을 모두 거는 베팅을 의미하는 도박 용어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 게임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만 알고 있던 은어에 가까웠지만 드라마 <올인>이 방송된 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재산, 마음 등을 투자한다'는 의미로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올인>은 200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60억 원이 넘는 많은 제작비를 투입한 SBS의 대형 프로젝트 드라마였다. 실제로 <올인>은 <허준>을 집필했던 최완규 작가가 각본을 담당했고 제주도와 미국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으며 촬영에 필요한 세트장을 직접 건립하는 등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 그 결과 <올인>은 최고 시청률 47.7%를 기록하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올인>은 기본적으로 도박판과 감옥을 전전하던 주인공 김인하(이병헌 분)가 세계 최고의 겜블러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하지만 여주인공 민수연 역으로 <가을동화>와 <수호천사>의 '대세 멜로배우' 송혜교가 캐스팅 되면서 멜로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다. 조금 더 남성적이고 마초적인 도박 드라마를 기대했던 일부 남성시청자들이 <올인>의 전개에 조금 아쉬움을 나타냈던 이유다.
<올인>에서는 김인하와 민수연의 청소년 시절을 연기했던 배우들도 훗날 스타배우로 성장했다. 이병헌의 아역이었던 진구는 영화 <비열한 거리>와 <마더>, 드라마 <태양의 후예> 등으로 유명세를 얻었고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송혜교의 아역을 연기했던 한지민도 <올인> 이후 스타 배우가 됐다. 이병헌과 진구는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 송혜교와 진구는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재회했다.
<올인>의 음악은 유명 작곡가 김형석이 담당했는데 <겨울연가>에 출연했던 고 박용하가 주제가 <처음 그 날처럼>을 부르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가 OST를 부르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카메오로도 출연하지 않는 배우가 OST에만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그 날처럼>은 드라마와 함께 많은 인기를 얻었고 박용하가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디딤돌이 됐다.
이병헌과 함께 한류 스타 된 서브 주인공
▲지성은 <올인>을 시작으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뉴하트> 등에 출연하며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SBS 화면 캡처
<겨울연가>의 박용하나 <대장금>의 박은혜처럼 한류 드라마가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면 서브 주인공도 함께 유명세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올인>에서는 서브남주 최정원 역의 지성이 '올인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최정원은 선하고 침착한 캐릭터에 민수연에 대한 애정과 순애보도 상당히 깊었지만 김인하에게 '주인공 보정'이 집중되는 바람에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패배를 인정하고 돌아섰다.
지성이 서브남주 최정원 역을 맡았던 <올인>에서 '여성배우 최정원'은 <소문난 칠공주>의 미칠이로 본격적인 유명세를 얻기 전이었던 데뷔 초, <올인>에서 영등포 패거리의 홍일점 유정애를 연기했다. 어릴 때부터 인하를 대놓고 짝사랑했지만 결국엔 김인하와 앙숙 관계인 임대수(정유석 분)와 결혼했다. 하지만 결국 임대수도 결혼식 직후에 살해당하면서 드라마에서 가장 기구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1980년대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순돌이(이건주 분)의 부모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현식 배우와 박원숙 배우는 <올인>에서 김인하의 삼촌 김치수와 유정애의 어머니 장현자를 연기했다. 타짜 출신으로 나이트클럽에서 나이 많은 웨이터로 일하는 김치수와 나이트클럽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장현자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로 드라마 후반 인하가 마련해준 집에서 함께 산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던 유민(본명 후에키 유코)은 <올인>에서 마이클 장(김병세 분)의 애인이자 여성 겜블러 리에 역을 맡았다. 리에는 테이블 매너와 와인을 교육하다가 김인하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민수연을 마음에 품은 김인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우아한 이미지의 배우 서지혜도 신인 시절 <올인>에서 수다스러운 나이트클럽 직원 미희 역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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