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치광이 피에로> 스틸
엠엔엠인터내셔널
주인공은 페르디낭(장폴 벨몽도 분), 가진 것 없던 프랑스인이지만 이탈리아 돈 좀 있는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 부러울 것 없는 한량의 삶을 살고 있다. 널찍한 고급 주택에다 좋은 차, 아내와의 금슬도 나쁘지 않고 슬하에 어린 딸까지 둔 그의 삶이 중산층의 전형처럼도 보이는데, 특별한 아쉬움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재미며 열정을 둘 구석 또한 보이지 않는 듯 하다. 다니던 방송국도 무슨 이유인지 때려치우고 백수로 지내는 페르디낭에게 아내가 인맥으로 이런저런 일자리를 소개하지만 그는 영 마음이 없는 것만 같다.
영화는 페르디낭이 아내와 함께 처가에서 연 파티에 가는 대목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내는 둘 모두 파티에 꼭 가야 한다며 임시로 보모까지 불렀다는데, 막상 참석한 파티는 영 마음이 끌리지가 않는다. 온갖 허울을 훑는 듯한 뜬 대화에, 마음 끌리는 구석은 하나도 없는 요상한 분위기가 관객 보기에도 초현실적으로 보이기만 한다.
날렵하게 올라붙은 젊은 여성의 맨가슴을 그대로 까보여도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도록 한 연출이 너무나도 고다르스러운 가운데, 권태 그 자체처럼도 보이는 늙수구레한 사내들과 성공한 치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지겨운지. 그렇게 페르디낭은 파티장을 도망쳐 제 집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있으니 바로 빈 집에서 애를 보는 미모의 보모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안느(안나 카리나 분), 진작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졸다 차가 끊기도록 못 움직였다는 그녀와 그녀를 바라보는 페르디낭 사이에서 어쩐지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건 왜일까. 이유는 곧 드러나는데, 쏟아지는 비에다 막차시간이 지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탄 차에서 그들이 과거 연인이었단 사실이 공개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이야기는 도저히 짐작이 불가능한 막무가내 막장극으로 흘러간다. 할리우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내일을 향해 쏴라>와 같은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도피와 범죄, 다시 도피와 범죄의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도 펼쳐진다. 물론 고다르의 영화가 위 두 작품보다 몇 년 쯤 앞서 있다는 점은 영화사적으로 그가 추앙받는 이유와도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미치광이 피에로>는 그 제목처럼 뒤가 없는 두 남녀의 미친 듯한 여정을 뒤따른다. 그저 범죄에 한해서가 아니라 이들의 관계까지도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과정으로 흘러가는데, 영화는 개연성이며 줄거리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거침없이 나아가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1960년대, 프랑스, 고다르의 영화만이 빚어내는 특별함이 있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중심을 채우는 건 에너지며 낭만이 아닐까. 영화 재개봉 포스터엔 '새로움, 파격, 광기, 누벨바그의 가장 결정적 순간'이란 카피가 들었는데, 이 역시 그의 영화가 갖는 특별한 힘을 고려해 쓰인 것일 테다.
6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재개봉한 영화는 소위 씨네필이 지나치기 어려운 선택지가 될 것이다. 지난해 <국외자들>에서 확인했던 바, 고다르와 누벨바그, 파격과 새로움이 이 시대 식상함에 물들어가는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여전한 유효함을 지니고 있는 때문일 테다.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엠엔엠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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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