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스틸
스튜디오디에이치엘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전설적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권 발간부터 곧장 그 비범함을 드러낸 작품은 2년 만에 극장판으로 제작돼 일반에 공개되기에 이른다. 제작상의 제약이 얼마 없는 만화 원작인 때문일까.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특색, 본연의 매력이라 해도 좋은 자연친화적이며 규격이 크고 고전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설정의 작품이 그 빛을 발한다. 만화 자체도 일본 만화사에 길이 남는 걸작으로 평가되지만, 애니는 그 이상의 가치를 발했다. 다시 감독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일으킬 만큼의 재정적 성공을 가져다준 것이다.
성공에 고무된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 친구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해 앞의 스즈키 토시오, 그리고 타카하타 이사오까지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해 차기작을 향해 전력투구한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이 1986년 작 <천공의 성 라퓨타>다.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 데뷔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 실패한 뒤 7년 만이었다.
이후는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르는 일련의 전설들이 우루루 태어나는 것이다. 거의 장르로서의 지브리, 우리가 아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탄생이다.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그 작품 가운데 깃든 세계관과 철학, 작품관을 작품 그 자체는 물론, 에세이 안에 담긴 문장, 그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의 입을 통하여 밝혀낸다. 전쟁에 반대하지만 전쟁에 쓰인 무기에 매혹당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무력감에 가까운 인식을 품고,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뚜렷한 성과 앞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치열하면서도 처연하기도 한 모습이 은근히 드러난다.
가만히 보면 근래 유행한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 열풍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랜 투쟁과 그 아래 깔린 인식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듯도 하다. 한 땀 한 땀 혼신의 열정을 바쳐 그려내던 그림을 불과 수 초 만에 생성하는 AI(인공지능)의 활용을, 지브리 스튜디오를 아끼는 이들조차 거리낌 없이 하는 모습이 어딘지 반인간적이면서도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당해낼 수 없는 흐름 앞에 해낼 수 있는 최선으로 맞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들이 이제와 AI 앞에 선 예술이며 애니, 애니메이터와 인간 그 자체처럼 여겨지는 건 차라리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영화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지만 무엇도 바꿔내지 못했다고 씁쓸하게 읊조리는 이 위대한 작가의 모습으로부터 오늘의 관객은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그저 역경을 뚫고 성공에 이른 거장만을 보았다면 '자연의 영혼'이란 부제가 붙은 이 영화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포스터스튜디오디에이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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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