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는 게 그렇다. 두어 시간짜리 영화 한 편 파일을 내려받는 데 단 몇 초면 충분한 세상인데 결코 볼 수 없는 작품이 세상에 널려 있다. 돈만 내면 세상 어느 영화든 쉽게 구해볼 수 있다고 믿지만, 또 한국에선 어떤 영화도 전부 개봉한다고 믿지만, 현실은 그와는 영 딴판인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어떻게 보는가. 영화제에서, 극장에서, OTT를 통해, 이따금은 TV 지상파와 케이블채널을 통해서겠다. 지방자치단체 및 대학교 도서관에서 구입한 DVD와 블루레이를 시청각실에서 볼 수도 있겠고, 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감상실을 찾아 자료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대부분은 극장과 OTT, 두 개 경로를 통해 작품을 마주한다.

여기서 왜곡이 생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 중 한국 극장에 걸리는, 또 OTT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영화는 극장은커녕, OTT 서비스를 통해 볼 수가 없다. 왜냐고? 수입해서 배급하려면 당연히 돈이 들게 마련인데, 영세한 영화사들이 이를 감당할 만큼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때문이다.

칸이 주목한 영화, 3년 만에 겨우 수입

 영화 <로데오> 스틸컷
영화 <로데오> 스틸컷필름다빈

그저 보장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십중팔구는 들인 돈을 뽑지 못하고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한국 극장가에서 소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단한 스타가 나오는 작품 몇을 제외하곤 성공을 거두는 영화가 드문 때문이다. 한국 수입배급사들이 갈수록 위기를 겪는 이유, 들여오는 영화가 갈수록 천편일률적이 되는 이유다.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 중에서도 한국에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가 수두룩하다. 한국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 가운데서도 태반, 실제론 대다수가 한국 극장에서 정식 개봉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한국 대중들과 닿지 못하는 것이다.

<로데오>는 이와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롤라 퀴보롱의 2022년 작 영화는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나서야 한국에 상륙했다. <로데오>는 제75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 인기상을 차지했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두고 겨루는 경쟁부문과 별개로, 독창적인 색채의 작품을 모아둔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칸영화제를 대표하는 인기섹션으로, 황금종려상 못잖게 이 부문 수상작을 찾아보는 애호가가 적잖을 정도다. 소위 씨네필, 영화애호가라 자부하는 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목할 점은 <로데오>가 75회 칸영화제에서 수상했단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가 78회란 점을 고려하면, 3년 전인 2022년에 월드 프리미어, 즉 공식적으로 최초 시사를 가졌단 뜻이겠다.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가 고르고 고른 끝에 선정한 참신하고 색깔 있는 작품들, 20편의 영화 가운데서 상패를 가져간 몇 안 되는 작품이 그해는 물론, 이듬해, 다시 그 다음연도까지 한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한국 영화팬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새 얼마나 많은 자극을, 기회를, 영감의 원천을 놓치고 있는가. 개탄스럽지 아니한가.

가만히 <로데오>의 흥행추이를 보고 있자면, 알 것도 같다. 개봉하고 보름이 다 되도록, 채 1000명을 모으지 못한 관객수가 참담하다. 상영관은 일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제외하면 전멸에 가깝다. 기실 배급사 또한 이런 영화를 찾아보는 극소수 영화팬을 겨냥해 작품을 들여왔을 터다. 필패의 전장에서 싸우는 예고된 성적이 아닌가. 그렇게 여기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다.

본 사람 채 한 줌에 지나지 않으나 여기 글이라도 남겨보는 건, 이 같은 추세에 조금이나마 거슬러보기 위해서다. <로데오>는 어떤 영화인가. 주인공은 줄리아(줄리 레드루 분), 척 보기에도 보통이 아닌 여자다. 많이 봐줘도 이제 스물 몇이나 됐을까. 혈기를 주체 못하고 아무것이나 대거리하는 십대 청소년처럼 줄리아는 앞뒤 따지지 않고 무엇에나 부닥치고 본다.

통제하지 못할 에너지, 그 끝은 어디인가

 영화 <로데오> 스틸컷
영화 <로데오> 스틸컷필름다빈

영화는 줄리아가 바이크를 구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바이크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이크를 탄 수많은 청년들이 한적한 도로가에 모여서는 제각기 곡예를 부리는 현장이다. 우리로 치면 폭주족 비슷한 모양인데, 막상 거리를 내달리기보다는 저들끼리 결코 쉽지 않은 바이크 곡예를 부리며 즐기는 게 다르다. 막상 오기는 했지만 할 줄 아는 곡예는 없는 듯한 줄리아다. 다른 이들과 어울리려 말을 붙여보기도 하지만, 이곳의 규칙이며 문화는 줄리아 같은 초짜, 그것도 여자 바이커에겐 열려 있지 않다.

이쯤이면 영화의 길이 정해진 듯 여겨질 수 있겠다. 남자들의 사회인 바이크 곡예, 온갖 어려움을 뚫고 그 길을 처음으로 개통하는 여자 바이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 있어 보인다. 물론 그랬다면, <로데오>는 주목할만한 시선 섹션에 초청되지 못했을 테다. 너무나 뻔하고 빤하므로.

<로데오>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 제목 '로데오'가 가리키는 것처럼, 나아가는 게 아니라 통제하는 것이고, 통제하지 못할 것과 맞서 휩쓸리는 것이기도 하다. 감당치 못할 듯 보이는 억센 황소 앞에 작은 창 하나 들고 선 투우사처럼, 길들지 않은 야생 짐승 등허리에 올라타 마침내 떨어지고 말 싸움을 벌이는 카우보이처럼, 막무가내로 흘러가는 삶과 세상에 맨 몸으로 저항하는 줄리아의 모습을 그린다.

줄리아는 말 그대로 반쯤 미쳐 있다. 바이크를 타기 위해 바이크를 훔치고, 바이크를 더 잘 타기 위해 세상의 질서를 부순다. 어째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 바이크는 모든 것이다. 바이크를 위해선 사람들의 시선, 법과 질서, 차별과 억압까지 맞설 준비가 돼 있다. 좀처럼 감당키 어려운 그녀의 전진 앞에서 관객은 줄리아라는 인간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억센 짐승처럼 감내할 뿐이다.

끝도 없이 직진으로 내달리는 영화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요령따윈 어디에도 없다. 거칠고 때로는 무리한 시도들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가 간직한 우직함, 휘지 않는 고지식함, 전력으로 부닥치는 박력, 얼마쯤은 뚫어내고 마는 힘에 이르기까지, <로데오>만이 가진 장점 또한 충만하다.

영화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각별히 인기를 끈 작품이란 사실은 만듦새 때문이 결코 아니다. 이 드문 성격과 어찌됐든 밀어가는 힘이 이 시대 평이한 작가들과의 차별점을 갖고 있는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색깔을 한국에서 내걸리는 흔한 작품들 가운데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그 이유로 이 영화는 생명력을 얻는다.

 영화 <로데오> 포스터
영화 <로데오> 포스터필름다빈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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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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