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 별에 필요한> 스틸컷
넷플릭스
궁금하지 않은 로맨스
반면 <이 별에 필요한>의 서사는 새로운 성취를 보여주지 못했다. 흔히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전적인 작품은 외관에 비해 알맹이가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이 별에 필요한>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우선 로맨스 영화로서 <이 별에 필요한>은 클리셰를 답습한 결과 지나치게 무난하다. 지구와 화성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 나머지 평범한 롱디 커플의 연애사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구와 화성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로맨스는 그 자체로 여러 변수를 상상할 수 있는 소재다. 그런데 <이 별에 필요한>은 정작 그 공간적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난영과 제이의 우연한 만남, 연애의 시작, 화성으로 떠나려는 난영과 만류하는 제이의 갈등 등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구에서 펼쳐지기 때문. 난영이 화성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로 떠나는 것으로 설정해도 둘의 로맨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구와 화성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오히려 서사의 균형감이 무너뜨리기까지 한다. 화성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두 연인의 갈등 상황에서 한쪽의 문제나 입장은 너무 사소하게 느껴진다.
제이는 밴드 멤버들과의 의견 차이로 그만둔 음악을 다시 시작할지를 고민한다. 물론 자아실현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가족사가 얽힌 도전과는 그 층위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SF적인 배경까지 더해지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는 연결고리가 있더라도 제이의 서사는 서서히 난영의 서사에 가려진다. 결국 <이 별에 필요한>의 로맨스는 보기에만 예쁜, 마치 향기 없는 모란꽃과 같아진다.
후반부를 장식하는 <이 별에 필요한>의 SF적인 전개 또한 좋게 말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하면 기시감이 진하다. 특히 <인터스텔라>와의 유사점이 두드러진다. 우선 상황이 비슷하다. 두 영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우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겼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또 두 작품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사랑을 상징하는 명확한 오브제가 등장하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인터스텔라>만큼의 감동이나 전율까지는 안기지 못한다. 오브제를 활용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상대적으로 덜 정밀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는 쿠퍼와 머피 모녀의 애증을 손목시계 하나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단계의 설계를 했다. 그에 반해 극 중 턴테이블은 난영과 제이의 관계 시작점이기는 하나, 손목시계만큼 뇌리에 각인되는 오브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둘의 사랑이 시작된 후로는 우산처럼 턴테이블을 대신하는 소재도 등장하고, 턴테이블보다는 난영이 반복 재생할 정도로 좋아한 제이의 음악 그 자체가 더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턴테이블처럼 생긴 우주가 등장하는 장면은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질 여지가 존재한다.
부족한 짜임새는 작품을 관통하는 '아날로그'라는 주제 의식을 약화한다. <이 별에 필요한>은 초반부터 의식적으로 디지털 세상을 거스르는 아날로그 기기를 등장시키며 손과 마음이 직접 닿는 아날로그적 감성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화상채팅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하는 난영과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종이와 펜으로 메모하는 제이를 반복해서 대비하는 식이다.
<이 별에 필요한> 영화 곳곳에 짧게 삽입된 임팩트를 주는 밴드 음악도 청량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더해 구도적으로도 신선한 그림이 있다. 우주로 떠나는 사람을 여성, 지구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남성으로 설정한 덕분에 일반적인 SF 구도를 탈피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삭막한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현실을 고려하면 기술적으로는 분명히 가능성을 보여준 도전이다.
▲영화 <이 별에 필요한> 스틸컷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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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