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시리즈 <나인퍼즐>은 10년 전, 미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현직 프로파일러인 '이나'(김다미)와 그를 끝까지 용의자로 의심하는 강력팀 형사 '한샘'(손석구)이 의문의 퍼즐 조각과 함께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추리 스릴러다. 지난 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려 범인이 가려졌다.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과 지난 5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많은 남성이 등장하는 현실 베이스의 작품을 했었는데 여성 서사나 비현실적인 세계관은 처음이라며 운을 떼었다.
불분명한 배경, 만화적 설정 의도
윤종빈 감독은 <용서 받지 못한 자>로 데뷔해 한국 영화사에 남을 굵직한 영화들을 배출해 왔다.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민란의 시대>, <공작>으로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최근에는 <수리남>을 통해 시리즈 연출자의 기대도 충족하게 되었다.
<나인퍼즐>은 그가 두 번째로 연출을 맡은 시리즈로 윤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리얼리즘을 버리고 만화적 세계관을 구축 한 작품이다. 그는 "독자로서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흡입력이 강했고 다음이 궁금해지는 힘이 있었다. 작가님의 설계대로 잘 낚이면서 충실하게 따라갔다"며 대본의 첫 이미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독자로 대본을 읽었을 때와 연출자로서의 방향성은 달랐다. 그는 "결국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에 닿았고, 지금 같은 만화적인 톤을 창조하게 되었다. 공간이나 경찰차, 제복도 가상의 세계처럼 인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부러 캐릭터, 연기, 의상, 헤어스타일도 만화적으로 설정했다. 프로파일러의 기본 특징인 냉철함, 지적임, 프로다움을 버리고 천재적인 직관에 의존하는 탐정처럼 보이도록 넥타이와 안경을 추가했다"고 덧붙였다.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불분명한 시대상도 인상적이었다. "실제 콘셉트를 잡은 건 재개발 이슈와 옛것과 새것의 공간적인 대비를 보여주려 했다. 경찰청은 신사옥, 한강 경찰서는 오래된 건물로 만들었고, 주상복합건물 더 원 시티와 한샘의 오래된 아파트로 대비를 주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의도했다고 말했다.
▲<나인퍼즐>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러면서 "작가님이 만든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캐릭터의 디테일은 배우와 수정해 갔는데, 전적으로 자율성을 열어주어 편하게 작업했다. 대본을 읽었을 때 '이나'에게 프로페셔널하고 걸크러시한 부분이 느껴졌고, 이를 10년 전 트라우마로 아픔이 생긴 캐릭터로 수정해 유아적이고 퇴행적인 콘셉트를 잡아갔다. 캐릭터의 유니크함을 1부부터 천천히 빌드업해 갔고, 번지점프하는 장면과 심리 상담을 받는 장면을 넣어 독특함을 주었다"며 "한샘은 목에 문신을 새기고, 비니를 씌워 흥분할 때마다 뚜껑이 열린다는 설정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프로파일러 설정과 다른 점 중 하나가 마치 사건에 빙의한 듯 연극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이에 "캐릭터의 성격을 전달하려는 장치적인 연출이었다. 자세히 보면 이나가 말하는 방식이나 톤이 회차가 진행될수록 달라진다. 초반에는 아이 같았지만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섬뜩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다미씨가 잘 해주었다"라고 답했다.
그 밖에도 사건 프로파일링을 시뮬레이션 할 때 인물과 특정 물건에 핀 조명만 넣은 듯한 블랙 화면의 독특한 방식이 화제였다. 이를 두고 "이나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생각한다. 또한 직설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어서, 블랙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다며 빨간색이 자주 등장하는 의도에는 "연쇄 살인의 메인 컬러라 '레드'를 중심에 두고 이나의 자동차, 캐리어 등을 일관되게 맞추었다. 이와 반대되는 '그린'이나 칙칙한 톤은 한샘에게 주었고, 중간 톤의 '엘로우'는 한강 경찰서에 주었다"고 설명했다.
범인, '어떻게'보다는 '왜'가 중요
▲윤종빈 감독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퍼즐 연쇄 살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많다. 지진희, 예원, 이희준, 이성민, 황정민, 박성웅, 김응수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초반부터 많은 배우를 다 넣자고 의견 낸 건 아니었다. 다만 10부에서 이들을 재차 설명해야 했는데, 혹시라도 (시청자가) 기억 못 할까 봐 임팩트 있는 분들을 섭외한 거다. 내내 대사도 없이 사진이나 시체로만 나와도 강하게 매칭되고 각인될 인물을 찾았던 거다. 주변에서는 친분을 과시하냐고 물어보시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언젠가는 저도 갚아야 해서 부탁하는 게 더 어려웠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매주 궁금증을 유발하며 잘 끌고 가던 중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며 허무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살인의 동기는 있지만 방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아 조력자나 공범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두고 "이야기 자체가 '어떻게'보다는 '왜'에 맞춰 있었다. 전체적인 틀을 따지고 볼 때 승주(박규영)가 꾸민 일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이었다. 무력이나 창의적인 살인 방식도 아닌, 의학 지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추리, 스릴러 장르의 문제 중 하나가 '반전 강박'에서 비롯되어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범이 있는 설정이냐는 물음에는 "공범보다는 퍼즐 살인을 기획했던 공유자가 있다고 봤다. 시체 절단 부위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나. 국과수가 아니라면 알기 힘들다. 해결하지 않고 넘어간 것도 꽤 있는데 의학 지식이 상당한 누군가가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했다"라며 살인을 주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두고 "성별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승주는 여성성과 미모도 이용했을 테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안 되었다"고 부연했다.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쫓는 겉모습 속에 부조리한 사회상을 담았다.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재개발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비극을 핵심으로 삼았다. '사람을 죽여서 사람 살 곳을 만들지?'라는 승주의 마지막 말은 상실과 비극이 교차하는 진혼곡처럼 들렸다.
"대본 때부터 그 대사가 임팩트이자 핵심 메시지라 느꼈다. 원래 다른 배우가 하기로 했었는데 작품을 설명하는 키워드라 승주가 하도록 바꾸었다. 서울 중심으로 과밀화되는 나라에서 재개발을 막을 수 없는데, 시간이 지나도 연이어 비극과 아픔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 대사였다. 용산 참사가 모티브냐고 물으시는데 오히려 큰 참사기 때문에 오해를 없애려고 '한강구'라는 가상 공간을 차용했다. 다만, 한국에 악명 높았던 용역 업체의 피해 사례를 담은 논문을 참고했다. 사례 중에 일부러 불을 내서 사람들을 몰아냈던 걸 빌리긴 했지만 특정 사건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교살, 총상, 약물상 등 다양한 살인 방법이 나오지만 정작 범인은 화형을 택한다. 윤종빈 감독은 "원래는 약물 자살이었는데 엔딩이 약해 수정했다. 범인을 죽여야 할지, 사라지게 할지 고민하게 되었고. 과거에 얽매여 오해하며 미워했던 자신에게 주는 유일한 고통이자, 최고의 벌인 화형을 택하게 되었다. 엄마가 죽었던 방식으로 사라지는 게 대단원의 마지막으로 어울렸다"고 답했다.
사건 종료 후 또 다른 퍼즐이 도착하며 사건이 시작된다. 시즌 2를 염두에 두었냐는 질문에는 "제가 하든 안 하든 시즌 2의 가능성을 닫아 버리면 안 된다고 봤다. 퍼즐 살인 사건을 따라 한 모방 범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준비한 공모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의도한 떡밥이 아닌데도 의외의 범인을 찾는 네티즌의 추리 덕에 즐겁고 재미있었다는 소회를 전했다.
끝으로 윤종빈 감독은 "해보지 않은 작업이라 좋았고 이번 아니면 평생 해보지 않을 것 같았다. 일본, 유럽은 전통적인 추리물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많이 없잖냐"면서 "사실 어떤 장르인지는 중요치 않다. 매력적인 이야기와 흡입력, 할 만한 이야기인지가 관건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장르도 욕심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2015년도에 쓴 시나리오를 영화로 찍어 보려다가 올해 구체화된 게 있다. 내년 봄쯤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다시 돌아와 저와 어울리는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군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라고 말해 차기작의 기대감을 높였다.
한편, <나인퍼즐>은 총 11부작이며 디즈니+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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