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시선으로 본 인간세계, 그 불편한 이야기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개와 고양이를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이 있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검은 개 '랩터'와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랩터와 플루토는 사람과 어울리는 반려동물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다. 랩터와 플루토가 거리에서 만나는 것으로 뮤지컬은 시작하고,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랩터와 플루토는 이야기 내내 사람과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한다.

개와 고양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설정,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작품이 던지는 성찰적인 문제 의식은 <개와 고양이의 시간>이 2020년 초연 이후 현재까지 호평 속에서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한재은 작가와 박현숙 작곡가가 합심해 만든 국내 창작 뮤지컬로, 올해 공연으로 세 번째 시즌을 장식한다.

초연과 재연의 무대였던 드림아트센터를 떠나 삼연은 대학로 더굿씨어터에서 진행된다. 더굿씨어터는 무대가 좌우로 넓고, 객석과 가깝다는 점이 특징이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8월 10일까지 공연되며 랩터 역에 동현·윤은오·홍성원, 플루토 역에 유태율·박좌헌·니엘이 각각 분한다.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 사진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 사진(주)아떼오드

오해가 아닌 이해, 적개심 말고 공감

거리에서 나고 자란 검은 고양이 '플루토'는 어느 날 눈을 다치고, 이를 발견한 인간은 플루토를 치료해주기 위해 데려간다. 하지만 플루토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에 큰 반감을 느끼고, 자신을 치료하고자 하는 인간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플루토는 인간의 집에서 탈출해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영역을 찾아가는 플루토 앞에 검은 개 '랩터'가 나타난다. 랩터는 인간의 손에 길러지다가 거리에 내몰리게 되었는데, 자신을 길러준 인간을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를 찾고자 한다. 플루토와 달리 인간에게 우호적이며, 플루토에게 주인을 함께 찾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인간이라는 같은 대상에 대해 플루토와 랩터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플루토는 인간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오해하기도 한다. 자신을 왜 데려갔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씻기고 말리는 것, 약을 먹이는 것 등 인간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적개심을 드러낸다. 랩터는 플루토에게 인간 행동의 의미들을 알려주며 플루토의 적개심을 차츰 줄여간다.

랩터의 목표는 주인을 찾는 것이고, 플루토의 목표는 친구들을 찾는 것이다. 둘의 목표는 비록 다르지만, 동행하며 서로를 알아감과 동시에 인간에 대해 알아간다. 플루토는 랩터의 조언대로 인간의 집에 들어가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오해에서 출발했지만, 차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플루토는 인간에게 보살핌을 받기만 하는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 플루토도 인간을 보살핀다. 밖에서 힘든 일을 겪고 온 인간을 위로하고, 인간은 플루토에게서 큰 힘을 얻는다. 일방적인 관계에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할 차례다. 랩터와 플루토는 관계를 맺은 이를 알아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 제시되는 방법은 '이름'이다. 랩터는 플루토에게 인간의 이름을 지으라고 권하고, 플루토는 자신을 보살피는 인간을 "참치"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서로를 알아보는 방법 하나가 더 제시되는데, 바로 눈과 목소리다.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확인하며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름을 지어주고 부르는 것보다 더 깊은 관계에서 가능한 일로,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대면하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눈과 목소리로 서로를 알아보는 관계를 형성할 것을 관객에게 요청한다. 개와 고양이의 시선와 목소리를 빌리지만, 개와 고양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이 아닌 동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해와 적개심보다는 이해와 공감이 우리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 사진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 사진(주)아떼오드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가

한편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인간이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초반에 랩터와 플루토는 인간이 검은 개와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경우에 따라 불길하게 여기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이후 플루토의 대사는 더 적나라하게 인간의 태도를 꼬집는다. 인간에게 복종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친다는 말은 인간이 이제껏 동물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공감과 이해의 서사를 중심에 두었지만, 인간이 동물에게 행한 폭력도 다룬다. 특히 마지막에 밝혀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은 동물에 대한 폭력을 직접적으로 고발한다. 뮤지컬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흔히 '유해동물'이라고 불리는 동물들이 이유 없는 폭력에 희생된다.

그런데 유해동물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어떤 고양이는 인간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겨지지만, 또 다른 고양이는 길거리를 더럽히는 주범으로 간주된다. 이곳의 유해동물이 저곳에선 유해동물이 아닐 수도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 베서니 브룩셔(Bethany Brookshire)는 인간이 배정한 자리를 벗어난 동물이 유해동물이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먹이가 되고, 인간이 만든 각종 시설물이 은신처가 되며, 천적이 사라진 인간의 도시가 유해동물에겐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 동물을 불러들이고, 그 동물에게 유해동물 딱지를 붙이는 아이러니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비단 어떤 동물을 유해동물로 규정하고 폭력을 가하는 행태를 성찰해보는 것뿐 아니라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하면 좋겠다. 함께 살아가는 반려자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요즘에는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이 권장된다. 하지만 '주인'이라는 표현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듯하다. 우리가 동물을 정말 대등한 반려자로 생각하고 있는지, 언어적 수사에 그칠 뿐 여전히 스스로를 주인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반추해볼 만하다.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 사진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연 사진(주)아떼오드
공연 뮤지컬 개와고양이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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