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는 로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공세를 펼치지만 로사의 마음은 꿈쩍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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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저서 <마음 가면>에서 이것이 바로 '수치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브라운은 수치심을 '우리의 어떤 결함을 우리가 사랑과 소속감을 느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매우 고통스러운 감정 혹은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타인과 비교하고 평가하며 그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네가 부족해서 그래' 문화가 팽배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문화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점이나 나약한 모습을 꽁꽁 숨기다 관계에서 멀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성을 수용하고 이를 개방할 때 더 잘 연결된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취약성을 끌어안고 솔직해진다는 것은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대게는 쌍방향으로 이뤄진다.'
취약함이 서로를 연결한다
<미지의 서울>의 인물들은 정말 그랬다. 브라운의 연구처럼, 강하고 좋은 모습으로 만나려는 심리적 방어가 풀릴 때 진정으로 마음이 연결된다.
미지는 로사를 설득하기 위해 매일 찾아가 선물을 주고, 청소까지 대신해주지만 로사는 이런 미지를 소금을 뿌리며 야박하게만 대한다. 그래도 꾹 참고 로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던 미지는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사람답게 대해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분명, 감정에 휩쓸린 '취약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사는 미지의 이런 솔직함에 오히려 마음을 열고 '사람답게 대해주기'로 마음먹는다(2회). 또한 미지가 쩔쩔매여 자신의 손을 누르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회사 사람들과 만나기로 마음 먹는다. 로사의 마음을 연 것은 '잘 대해주는' 미지가 아니라 솔직하고 취약한 미지의 모습이었다(3회).
분홍과 옥희도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서로 연결된다. 옥희는 3회 자신의 어머니 돌봄을 위해 휴가를 써야 한다며 분홍에게 보고한다. 이에 분홍은 흔쾌히 허락하며 "후회하지 말고 엄마한테 돌려드려"라고 하지만, 옥희는 "네가 뭘 알아? 모녀가 다 너희 집 같은 줄 아니?"라며 자존심 상해한다. 취약한 모습을 들킨 듯한 옥희의 방어 때문에 관계가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분홍은 옥희에게 전복죽을 건네며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거든? 접때는 내가 후회돼서 한 소리야"라고 사과한다. 그렇게 분홍이 자신의 아픔을 내비치자, 옥희는 무척 미안해 하며 옥희의 마음을 받아준다. 종종 티격태격하는 옥희와 분홍은 이렇게 서로의 취약함을 드러내면서 좀 더 가까워진다(3회).
미래가 미지 대신 일하게 된 딸기밭 주인 세진(류경수)도 그렇다. 미래에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냐"며 큰소리를 치던 세진은 3회 "(제가) 섣불리 판단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타입. 저번에는 말 함부로 해서 죄송했습니다. 화낸 일에 대해 솔직히 사과한다. 그전까지 세진과 데면데면 했던 미래는 이날 밥 먹자는 세진의 제안에 처음으로 응한다.
▲세진이 자신의 약점을 개방하며 사과한 날, 미래도 세진에게 마음을 연다.tvN
이처럼 우리는 취약함을 드러내고 진심을 보여줄 때 서로 연결된다. 그러니 취약해지면 관계가 단절될까 봐 지레 겁먹게 만드는 수치심 따위는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나와 타인을 다음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다. 미지의 할머니 월순(차미경)은 미지가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쓰레기 같다고 하자 이렇게 말해준다.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냐? 소라게가 잡아 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암만 모냥 빠지고 추해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4회)
취약함을 지닌 우리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 모습을 수치스러워하지 말고, 용감한 것으로 바라본다면, 나와 타인의 약함에 더 관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각자가 지닌 취약함을 개방하며 보다 진실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취약함을 보듬는 이런 연결이 많아질 때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편견과 차별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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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