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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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이라고 내세울게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 중 20년은 놀았던 것 같아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30년을 해보니 '숙이 장하다. 어떻게 했냐'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그리고 그런 말을 들으니 실패하고 방황했던 나의 20년도 이제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

지금이 실패한 삶 같고 꿈이 뭔지도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단 포기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일에 한 발이라도 담그고 있다면, 언젠가는 이뤄지지 않을까. 이렇게 방황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모두를 반하게 한 '따귀소녀'에서 거침없는 '숙크러시'를 거쳐, 25년 만에 '연예대상'까지 수상한 김숙의 성공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4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선 방송인 겸 코미디언 김숙이 출연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김숙과 유재석의 인연

김숙은 1995년 21살에 대학개그제 은상을 차지하며 데뷔했다. 그는 "과거도 잊힐 권리가 있지 않나. '메뚝 선배(유재석)'가 너무 싫은 게, 잘했던 모습도 아니고 지금봐도 이불킥이 나오는 과거 영상들을 복원하고 링크까지 걸어서 항상 저에게 배송한다. 너무 분하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특유의 솔직하고 엉뚱한 성격 때문에 김숙에게는 수많은 레전드 일화들이 존재한다. 학창 시절 조회시간에 당시 유행하던 '숭구리당당' 댄스를 추며 장난을 쳤던 김숙은, 무서운 선배에게 걸려 "너 어디 한번만 더 해봐"라는 경고를, 진짜 한번 더 해보라는 말도 잘못 알아듣고 눈치 없이 앵콜을 하다가 더 크게 혼난 일이 있다고.

KBS 공채 개그맨 12기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선배들로부터 '돌아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군기문화가 만연하던 희극인실에서 어느날 10만 원권 수표를 주며 담배를 사오라고 시킨 선배에게 실제 담배 10만원 어치(100갑)를 꽉 채워서 사온 일화도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선배들 사이에서는 "김숙에게는 절대 심부름 시키지 말라"는 불문율까지 생겼다고.

김숙은 선배인 유재석과 1997년 <남편은 베짱이>라는 코너를 함께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만 해도 신인급이었던 김숙과 유재석에게 무려 8분짜리 분량의 긴 코너가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유재석은 늦은 시간에 귀가해야 하는 여자 후배들을 자신의 차로 일일이 데려다주기도 했다고. 출연자들은 유재석의 집에 모여 밥도 먹고 회의도 하면서 일주일에 3-4일간 밤을 샐 만큼 정성을 다하며 팀워크를 다졌다. 비록 얼마후 IMF 사태가 터지면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코너는 오래가지 못하고 폐지됐지만, 당시 선후배들이 맺은 끈끈한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때는 진짜 돈도 없었다. 공동체 생활처럼 오직 개그만을 위해 사는 삶이었다. 누가 돈을 벌어도 자기 돈이 아니었다. 같이 밥을 사먹고 집안 대소사 다 챙겨주며 서로 진짜 가족처럼 지냈다. 그래서 유재석 선배랑은 사실 남다르다."

성실한 친구는 어쩌다 게임중독에 빠졌나

유재석은 직접 겪어본 김숙이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리 '성실하고 꾸준한 친구'였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긴 무명 시절을 겪었던 김숙은 막연히 방송 캐스팅만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생계를 위해 부업을 병행해야 했다. 당시 김숙은 옷가게를 열었지만 낯가림이 심해 두 달 만에 폐업했다고.

주식투자 실패와 게임중독으로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작가의 권유로 차량을 구입하기 위해 마련한 600만 원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으나 회수한 것은 고작 20만 원에 불과했다고. 당시 김숙에게 주식투자를 적극 권유하며 '성공하면 따뜻한 몰디브로 이주해 여름 옷만 입고 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해당 지인은, 얼마 후 겨울에도 여름 옷을 입은 채로 나타나 김숙에게 사과했다고.

일도 돈도 없었던 시기, 김숙은 한동안 게임에 빠졌다. 집안에 컴퓨터를 4대나 놔두고 마치 PC방처럼 하루종일 게임만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필요한 물품을 사느라 잠시 외출한 것을 제외하면, 방송국에도 발길을 끊었다.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진짜 중독이었다. 하루를 36시간처럼 썼다. 밤을 완전히 새우고 아침 10시쯤 취침했다. 밤낮이 완전히 바뀐 거다. 꽃다운 나이 25-26세에 암흑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덕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 전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젊은 나이에 얼굴이 썩어있는 거다. '이게 나인가' 싶어서, 그때부터 게임도 술, 담배도 다 끊고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삐져 있었던 것 같다. 일은 하고 싶은데 안 들어오니까. 항상 저는 방송국에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살았다. 겉으로는 '방송 안 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당시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 주변으로만 이사를 다니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다."

방황의 시기를 지나 김숙은 KBS <개그콘서트>의 '따귀소녀' 역할로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절친한 선배이자 파트너 송은이와 함께 연구하며 본인의 개성을 살려 만들어낸 따귀소녀는 선배들도 '김숙 그 자체'라는 호평을 내릴 만큼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SBS <웃음을 찾는 사람>로 무대를 옮겼고, 복부인을 풍자한 '난다김' 캐릭터를 선보이며 인기몰이를 이어갔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예능 트렌드가 SBS <강심장> 등 여러 출연자가 단체로 등장해 입담을 경쟁해야 하는 '떼토크' 위주로 바뀌었다. 낯을 가리는 김숙은 변화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심지어 캐스팅이 됐는데도 촬영 전날 본인만 출연이 취소된 경우도 있었다고. 이미지와 달리 앞에 나서는 걸 잘 못한다는 김숙은 "옷가게 트라우마가 다시 온 거다. '나는 저런 거 못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떼토크를 할 때가 제일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토크를 안 시키면 말을 못했다. 또 시키면 여러 명이 지켜보니까 부담이 돼서 잘 못 살렸던 것 같다. '판 깔아주면 못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출연했던 가수도 저렇게 웃기는데... 나는 마땅한 개인기도 없었다. 그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13년 <무한걸스>를 끝으로 일이 다 끊겼다."

송은이가 발견한 김숙만의 '입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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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에 두 번째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된 김숙은 한동안 여행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그때는 여행을 진짜 많이 다녔다. 전세금도 조금 빼고 아버지에게 대학원 간다고 거짓말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지금도 석사 학위 가져오라고 이야기하신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힘든 시기의 김숙을 포기하지 않도록 다독이고 챙겨준 것은 송은이, 유재석 같은 절친한 선배들이었다. 방황하던 김숙은 2015년 송은이와 함께 당시 드물었던 연예인 팟캐스트 <비밀보장> 진행을 맡으며 새로운 플랫폼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

캐스팅 걱정도, 방송국의 눈치를 봐야 할 필요도 없던 팟캐스트 포맷에서 한결 편안해진 김숙은 숨겨진 입담을 터뜨리며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비밀보장>은 수년 간 차트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모았고, 10주년을 이어가며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또한 같은 해에는 윤정수와 가상 커플로 호흡을 맞춘 < 님과 함께2 > 역시 대박을 터뜨린다. 김숙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성별관계를 역전시킨 파격적인 '가모장' 캐릭터를 선보이며 "어디 남자 목소리가 파티션을 넘어" 등 여러 걸크러시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 님과 함께2 >의 윤정수-김숙 커플은 분당 최고시청률 6.4%를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2010년대 중반부터 예능의 트렌드가 집단토크에서 개개인의 일상과 자연스러운 모습을 강조하는 '관찰예능'의 시대로 넘어온 것도 김숙에게는 호재였다. 본인의 성향에 맞는 장르와 플랫폼에서 그드디어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았다. 바야흐로 '갓숙의 시대'가 열리는 전환점이었다.

이후 <언니들의 슬램덩크>, <연애의 참견> 등 다양한 예능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김숙은 2020년 마침내 데뷔 25년 만에 KBS <연예대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당시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현재도 김숙은 방송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방송인이자 MC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김숙은 20대 시절과 달라진 것에 대해 '행복'을 꼽았다.

"20대 시절은 잠깐 방황도 했지만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 상처받았던 20대와 달리, 지금은 노하우들이 생기면서 '나의 행복'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김숙을 가까이서 지켜본 유재석은 "김숙은 시대를 앞서가는 도전을 해내고, 세상에 맞춰서 살아가기보다는 내 길을 만들어서 살아간, 우리 분야에서 또 하나의 다양성을 보여준 존재"라고 평가했다.
유퀴즈 김숙 유재석 개그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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