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은 6월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로 훌쩍 떠나보는 건 씨네필,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지난달 '씨네만세'에서 즐길 만한 영화제를 추려 소개했다. 기사를 보고 영화제를 찾았다는 이들로부터 받은 연락은 글 쓰는 이에게 적잖이 뿌듯한 감상을 안겼다.
그로부터 매달 즐길 만한 영화제를 추려 소개하기로 했다. 수백의 영화제가 난립하는 한국이다. 가끔은 내실이 영 민망한 영화제도 없지 않다. 어떤 이들은 영화제가 열린단 소식만 듣고 상영관을 찾았다가 영화제란 고작 이런 것이냐고 실망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아 외연만 유지하는 영화제가 적지만은 않은 것은 분명 민망한 일이다. 작은 목소리를 키워내고 문화의 저변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외부의 지원보다도 선행돼야 비로소 즐길 만한 축제, 모일 만한 행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한국엔 가볼 만한 영화제가 많다. 한국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해외 최신 작품을 수급하는 국제영화제부터, 지역 주민과 영화인을 묶어내는 지역기반의 영화축제, 특정한 주제로 깊이 파고들어 관객의 인식을 넓히는 행사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를 추려 이달 열리는 세 개의 영화제를 소개한다.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서울국제환경영화제포스터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
요즘 같은 시대에 드문 사례라 할 만하다. 지난 윤석열 정권에서 영화제를 비롯한 문화예술 기금을 삭감하는 와중에도 이 영화제는 얼마 타격을 받지 않았다. 벌써 22회째를 맞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국내외 유력 기업의 든든한 후원을 받아 매년 꾸준히 그 외연을 확장해왔다. 전 세계 다채로운 작품 수급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들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명성 높은 운영진, 근 한 달 가까운 온라인 상영을 비롯한 충분한 상영회차 보장까지, 영화제를 찾는 이들이 원하는 요소를 꾸준히 확충해왔다.
기후위기가 당면한 문제로 다가선 오늘이다. 파괴되는 환경과 이를 되살리려는 대안적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온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봐야 옳다. 지난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기간 중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국가를 가려 뽑는 '오늘의 화석상' 1위 수상자로 꼽힌 한국이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가운데, 아직도 일상, 무엇보다 산업의 측면에서 근본적 변화를 도외시한 한국의 오늘이 전 세계적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5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진행하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6일부터 8일까지 메가박스 홍대에서 진행된다. 디지털 상영관에서도 15일까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제 측은 올해 특별히 영화제 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탄소량을 측정해 상쇄하는 실천적 작업도 진행키로 해 관심을 모은다. 탄소발자국 보고서 또한 작성해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최초 탄소중립영화제를 추구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발걸음이 그저 보여주기만은 아니라고 기대하게 되는 건 오늘의 기후위기 앞에 실천하는 움직임이 얼마 되지 않는 때문이다.
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포스터
무주산골영화제
특별하고 강렬한 인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극장 하나 없던 무주에서 매년 영화제를 여는 꿈같은 일을 현실화시킨 이 전설적 영화제가 어느덧 13회째를 맞았다.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건 물론, 좀처럼 발길 닿지 않던 전북 무주의 산골로 전국의 영화 애호가들을 불러 모으는, 결코 쉽지 않은 성취를 얻었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크게 삭감되고 영화예술을 즐기는 이의 수도 줄어든 작금의 현실 가운데서 무주산골영화제는 후퇴가 아닌 전진을 기약한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 12년간 5일 일정으로 행사를 진행해왔지만 올해는 6일부터 8일까지, 단 3일로 줄여야 했다. 양적으론 명백한 손실이다. 그럼에도 영화제의 질과 품격만큼은 훼손하지 않으려 고심했다. 언제 어디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상영이 아닌, 무주에서만 특별히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한 흔적이 역력하다.
실내상영은 물론, 무주산골영화제만의 특장점이라 할 만한 야외상영 프로그램을 구분해, 공간의 특징을 살린 매력적인 행사를 준비했단다. 단순히 작품과 마주하는 평범한 관람을 넘어 무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의지다.
프리미어, 무주에서만 트는 독자적 작품이 거의 없음에도, 국내 유력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검증된 작품에 더해 팬들이 몰려들 법한 매력적인 영화를 여럿 준비한 올해 무주산골영화제다. 18개국 86편의 작품이 들어왔다. 특별히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시상식의 주인공이 된 션 베이커의 작품군을 무주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다. 매년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서는 줄을 올해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14회 광주독립영화제
▲광주독립영화제트레일러 캡처
광주독립영화제
영화로운 불빛으로 썬텐을!
전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극장을 꼽자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후보가 바로 광주극장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이 오래된 건물은 그저 곁을 지나치기만 해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거니는 듯한 특별한 감상을 자아낸다. 영화가 그저 영상콘텐츠라고 여기지 않는, 공간과 함께 맺는 특별한 경험이라 여기는 감수성 있는 관객에게 광주독립영화제는 특별한 경험이 될 테다. 광주극장에서 영화제 개막식을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한국 독립영화 20여 편을 가려 뽑아 상영하는 광주독립영화제는 매년 꾸준히 찾는 이들의 관심이 늘어나는 작지만 매력적인 영화축제다. 올해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열리는데, 광주 출신 창작자들의 신작 십수 편을 포함해 광주 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여럿 관객 앞에 선보일 예정이다.
열악한 재정적 여건 가운데서 구체적인 일정과 상영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영화제 개최여부 및 상영날짜는 확정됐다. 지역 독립영화제가 꾸준히 이어져 일대 영화인을 자극하는 의미 있는 행사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올해 제14회 광주독립영화제가 그 가늠자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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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이것 때문에 전국에서 찾아온 그 산골, 올해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