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이를 만났다. 감독과 작가, 배우, 제작자며 영화사와 영화제 관계자들까지 몹시도 다양했다. 처음부터 꼭 한 명만 인터뷰를 해보자고 다짐했다. 누구 하나를 잡아 인터뷰를 하기로 한다면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보다 집중해 들여다볼 테니까. 그러면 억지로, 또 일로써 사람들을 만나는 지루함도 얼마쯤 가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운이 좋아 이번 영화제에선 유익하고 즐거운 만남들이 이어졌는데, 여기엔 누구든 꼭 한 명 인터뷰를 해보자는 마음도 영향이 없지 않았으리라 여긴다.
못해도 50-60명과 적어도 20~30분 씩은 마주앉았던 열흘이었다. 개중엔 대단히는 아니래도 얼마쯤 이름난 이도 있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이도 있었는데, 나는 어느 순간 그들보다도 다른 이를 인터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공식초청작 <엔진의 심폐소생>, 코리안시네마 섹션 상영작 <목인>의 배우로 영화제를 찾은 이종윤이다. 연극배우로 30여 년, 단역으로 시작한 영화판에서 크고작은 영화에 출연하며 20여 년을 보냈다.
드라마 <카지노>에서 제법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해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한 독립영화를 비롯해, 10주년을 맞은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 그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이가 많은 배우 이종윤에게 오늘을 버티도록, 또 정진하게끔 하는 힘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단역에도 숨을 불어넣는 이들이 있다
▲두 번째 상업영화 단역 출연에도 상당한 인상을 남긴 <해바라기> 찜질방 직원 역의 이종윤
쇼박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억에 남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많아야 채 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과 상대역, 제법 비중 있는 조연까지, 이름을 가진 배역이면 그나마 낫겠다. 영화엔 수많은 장면이 있고, 그 많은 장면 중엔 지나쳐 다시는 돌아봐지지 않는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 <괴물>의 4번 돗자리 사내, <마파도>의 똘마니3 같은 배역이 꼭 그러하다. 그렇지만 이 작은 배역에도 삶을 불어넣으려 고투하는 노력이 있다. 아주 가끔은 결실을 보기도 한다. <해바라기>의 사우나 직원처럼, 제법 뇌리에 박히는 존재가 될 때가 있다.
비공식 천만영화라 불리는 <해바라기>에서 출소한 전설의 주먹 오태식(김래원 분)이 찜질방에 간 순간이 있다. 그곳에서 복역 전엔 보지 못한 사물함 전자식열쇠를 신기하게 열어 대었다 말았다 열었다 잠갔다를 반복하는 오태식의 모습이 나올 때였다. 이를 거슬리게 여긴 사우나 직원이 그에게 다가가 최첨단 센서라며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갔던 그가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오태식 앞에 나아가 몇 마디를 더 붙이려 든다.
그때 온몸에 문신을 한 벗은 몸으로 연신 사과하는 오태식 앞에서 얼어붙어 얼버무리는 직원, 이 순간은 유튜브며 틱톡에서도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 시청되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배우 이종윤은 바로 여기서 사우나 직원을 연기했다. 연극 10년 차, 영화는 데뷔작 <마파도>에 이어 두 번째 출연한 참이었다.
<카지노>의 윤동억,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장득호, <배드 앤 크레이지>의 임형사 등 이제는 이름 있는 배역도 곧잘 따내는 그다. 대형교회 비리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쿼바디스>에선 마이클 무어를 연상케 하는 중심배역을 맡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영화판에선 꽤나 오랜 시간을, 아직도 여전히 작은 배역을 맡아 연기하기 일쑤다. 경기 침체 때문일까. 투자가 멈추고 판 전체가 얼어붙었다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지금, 이종윤은 다시 연극, 또 작은 영화들에 적극 출연하며 유명하지 않은 배우로서의 보릿고개를 나고 있다.
반쯤 건넜다, 돌아갈 수는 없겠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난 지난 5월, 대학로 인기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 주역 중 하나로 활약하던 그를 서울 사당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그를 지탱하게 하는 힘에 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는 성공한 어느 배우의 화려한 일면만이 아니라고, 보답 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열정을 다치지 않고 지켜내는 모습이라고, 무명배우의 긍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배우로서의 출발부터 오늘에 이르는 30년을 하나하나 짚으며 오래 대화를 나누었으나 그 모든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을 생각은 없다.
"냉정히 말하자면 다른 걸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영화에, 연기에 너무 마음이 많이 들어와버렸으니까요. 다른 걸 새로 시작한대도 이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고요. 연기를 많이 사랑한다기보다는 다른 걸 더 사랑할 수가 없을 것 같달까요. 같은 건가요?(웃음)"
할 줄 아는 게 없어 연기를 했다고 반복해 말하던 그다. 끝끝내 연기를 사랑한 적 없다던 그가 마침내 다른 무엇보다도 연기에 마음이 들어왔다고 고백했다. 30여 년 연기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2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이어가던 때였다.
"안 그래도 최근에 후배들을 만나서 한 얘기가 있는데요. 요즘 그런 느낌이에요. 강을 건너는 건데, 반 이상 건너와 버린 것 같은 거죠. 내가 살아서 이 강을 끝까지 건널 수 있을지, 그건 알 수가 없는데 반을 벌써 넘어왔으니까 이제는 뒤로는 못가는 거예요. 이제와 뒤로 가려다가는 빠져 죽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강은 아직 건널 만 한지를 물었다. 이종윤이 말한다.
"솔직하게 괜찮죠. 반을 넘어왔으니까 이젠 아주 못하겠지도 않고, 계속 가면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뭐랄까 확실히는 아니고 할 수 있을랑말랑 한 거죠. 아쉬운 건 요즘에 제작되는 작품도, 들어오는 좋은 제안도 많지가 않으니, 강이 아예 안 흐른다는 느낌이 있기는 해요. 그래서 똑같이 힘이 드는데 덜 즐거운 것 같고요. 그래도 설마 영영 안 움직일까(웃음)."
버거운 삶을 그래도 지탱하는 방식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이종윤(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동료 배우들
극단 산수유
▲영화 <엔진의 심폐소생>에서 이종윤(오른쪽)과 정하담 배우.JIFF
수입도 일정치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적지는 않을 테다. 하물며 경기도 얼어붙고 엎어지는 작품이 수두룩한 요즘은 어떠하랴.
"배우처럼 막막한 일을 하려면 누구나 압력을 뺄 수 있는 구석이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전 음악이 도움이 됐어요. 록 밴드를 했는데, 무명 배우인 게 짜증이 나고 열 받고 그럴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때려 부수고, 그러다 보니까 도움이 됐어요. 막 질러버리고, 놀고, 땀을 뻘뻘 흘리고, 그런 뒤에 새롭게 배우들과 합을 맞추며 연기를 하고, 그렇게 에너지를 충전했죠.
지금도 계속 하고 싶은데 사정상 밴드활동은 멈췄고요, 대신 다른 걸 또 찾았어요. 이게 비슷비슷한데, 어떤 하나의 하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본업이 마음처럼 안 돼도 권태기를 버틸 수가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나중에 영화감독을 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단편 같은 거를 조금 찍어봤어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잠깐 머리를 식힐 겸 우리 같이 고생하는 배우들을 찍어줬는데, 그것도 괜찮다고 호평을 듣고 그러면 뭔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또 꿈을 꾸게 되고, 그렇게 권태기를 넘어가는 것 같아요."
연기 자체가 버거울 때도 있겠다. 배우는 어디까지나 작품의 일부, 전체를 통솔하는 감독이며 작품의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명하지 않은 이는 더더욱 작품을 골라 출연할 수도 없다보니, 맡은 배역이며 작품이 성에 차지 않기 쉽다. 그럼에도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배우들이 똑같이 연기를 사랑하고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싶어하더라도 조금씩 스타일이 달라요. 제가 다행인 게 뭐냐고 하면, 좋은 작품에서 좋은 배역을 맡지 않더라도 목표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 마음에 안 드는 배역이라도 감독의 머릿속 캐릭터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백 프로까지 맞춰보자는 게 목표가 되는 거예요. 그런 목표를 설정하고 성공하는 데 진심으로 희열을 느끼게 되기도 해요. 가끔은 이상한 작품이나 감독을 만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골치 아픈 사람 하나 만났네, 좋아 한 번 맞춰줘 보자' 이렇게 가는 거죠. 그런데 웃긴 게 가끔은 이런 상황에서도 배우게 되는 게 있거든요. 배우란 게 그래요."
배우라는 일이 주는 즐거움 또한 상당하다.
"배우라는 게 무엇보다 매번 새로우니까, 그게 너무 좋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힘든 것도 물론 많은데 달리 보면 작품마다, 인물마다 새롭기 때문에 권태가 없고 도전이 되죠. 이걸 위해서 스스로 계속 연기하는 범위를 넓혀놔야 하는데, 솔직히 저만 해도 불러준다고 계속 깡패 같은 것만 했다면 이렇게 못하고 15년 쯤 전에 일찌감치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어요."
계속 연기하게 하는 힘, 그리고 사람들
아직 성공에 이르지 못한 여느 배우, 대다수 예술가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를 그 또한 느낀다. 나이를 먹어가며 가족,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단 사실이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소득은 들쭉날쭉하고 미래는 확실치 않다. 강을 반쯤 건너는 동안 많은 동료가 돌아가길 선택했을 수 있겠다. 아예 휩쓸려 떠내려간 이도 없지 않을 테다. 그러나 여전히 곁에는 건너는 이가 남아 있고, 저편엔 먼저 건너 손을 흔드는 이도 있다.
"진짜 배우인생 최고의 순간이 <카지노>였어요. 최민식 배우를 상대로 절친한 친구역이니까 한 회차에선 거의 주연처럼 둘의 서사만 죽 나오고 서로 던지고 받고 연기를 하는데 짜릿하더라고요. 워낙 존경하는 배우였는데 예상과 전혀 다르게 어려운 선배 같은 느낌이 아니라 먼저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대해주고 하셔서 나도 모르게 친하게 지내는 연극판 선배처럼 그렇게 대하게 돼요.
그 슈퍼스타랑 순식간에 동등한 동료가 되고 절친한 후배가 되고 하는 거예요. 원래 사람 자체가 그런 분인 것만 같은데, 많이 배우고 느꼈어요. 동료 배우들, 예술가들을 대하는 그 자세가 연기를 대하는 것이기도 하구나, 그런 존중을 배우면서 그런 배우를 넘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출연작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는 자세를 고쳐앉아 진지하게 답했다.
"2012년에 <밍크코트>란 영화가 있었는데, 사실상 제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어요. 제대로 장편영화에서요. 배역이 그냥 뭐라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일반인인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외모 때문인지 매번 깡패나 웃긴 역할만 시키려고 하는데, 여기선 평범한 주변의 누구였어요. 통통한 외모에 기독교 신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교회에서 횡령도 하고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래서 슬픔도 죄스러움도 있는 그런 역할이었어요. 그래서 연기가 도전이 됐는데, 작품도 참 좋았지요. 그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까지 탔다니까요. 대상작 주연이에요 나!(웃음)"
흥행은 만만찮았다. 좋은 작품이 그만한 대가를 얻지 못하는 일을 우리는 수시로 마주하지 않던가.
"개봉까진 했는데 물론 빨리 내렸죠. 한국 독립영화가 어떤지 잘 알잖아요. 금방 관객수가 떨어지고 내렸는데, 그래도 그 팀이 아직까지 제일 친한 동료들이에요."
녹음을 하고 녹취를 풀고, 개중에서 쓸 만한 말을 골라내어 적고 다듬고 다시 적고 다듬어야 하는 글, 품이 많이 드는 데도 누구도 청한 적 없는 기사, 그런 인터뷰를 어쨌든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느꼈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으며 이종윤 배우가 말했다.
"상쾌한 기분이네요. 아무한테도 해본 적 없는 인생사 걸어온 길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주욱 돌아보고 풀어내는 시간이 특별해요. 정말이지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있어야 해요. 그런 대사가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슬며시 사라진다는 건 참 견디기 힘든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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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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