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인 지난 5월 23일 국회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스포츠 정책 제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출범에 맞춰 당시 발제자들의 발표 내용을 다듬어 싣습니다. 글쓴이는 함은주 스포츠인권연구소 사무총장입니다.[편집자말]

 3월 13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신시가지 내 한 테니스장에서 동호인들이 운동하고 있다.
3월 13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신시가지 내 한 테니스장에서 동호인들이 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많이 늘었네? 이 사람이 다른 날 오는 사람보다 잘 가르치더라고."

"안녕하세요, 이모님. 역시 여기서 오래, 많이 보셔서 그런가? 보는 눈이 있으시네. 운동 좀 해 보셨어요? 같이 테니스 해 보시는 거 어때요?"

"어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운동 같은 건 못해.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종종 이용하는 시립 테니스장의 청소·관리를 해 주시는 분과 나눈 대화다. 그는 테니스 코트와 축구장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한동안 테니스 코트 펜스 밖 벤치나 축구장 스탠드에 앉아 운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꽤 즐겁게 구경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직접 운동하는 건 꺼려하셨다.

스포츠가 얼마나 즐거운지, 운동은 힘을 쓰게 하면서도 힘을 나게 한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다. 또한 스포츠 시설의 청소노동은 스포츠 시설과 시설 이용자들을 위한 돌봄이자 필수 노동임에도, 그 노동의 당사자는 스포츠에서 소외돼 있는 현실이 부당하고 불편하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이 들고 나서 보니 주변에 스포츠를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양수업으로 플로어볼을 지도할 때 열려 있는 문으로 체육관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청소노동자를 알아차렸다. 테니스를 권했더니 '시간도 여유도 없다'고 답한 육아휴직 중인 지인을 통해 나의 무심함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좋은 마음으로 했던 스포츠 권유가 스포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가 되려면

'스포츠로 행복한 삶', '모두를 위한 스포츠'는 생활체육 정책의 오래된 구호이자 목표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 '유·청소년,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소외계층 대상 맞춤형 지원'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생활체육 정책은 그 그물의 코가 너무 듬성하고 커서 누군가 빠지는 일이 많다.

여성·장애인 노동자, 가정에서 온종일 부모나 자녀를 돌봐야 하는 사람 등 복합적인 차별 영역에 있거나 환경·상황 때문에 스포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부 생활체육 정책의 그물에서 빠지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일상에서 일생동안 즐기는 스포츠'라는 의의를 지닌 'Sports for All', 즉 생활체육의 의미가 무색하다. 정책의 그물에서 빠지는 사람이 없도록 모두의 스포츠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 주 1회 이상 ▲ 1회 운동 시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생활체육에 참여한 비율은 60% 정도(60.1% ~ 62.4%)이다. 생활체육 참여 증진이 목적인 다양한 정책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활체육에 참여 못하는(않는) 약 40%의 사람들이 고정적으로 존재한다.

규칙적으로 생활체육에 참여하지 않는 40% 중 '최근 1년간 체육활동 경험이 없다'고 한 응답자가 73.6%나 된다는 결과도 의미심장하다. 모든 국민의 스포츠권 향유와 스포츠의 다양성·자율성·민주성 원리 실현을 위한 '스포츠기본법'이 2022년부터 시행됐지만, 법의 가치와 목적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행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라고 판단한다.

'모두의 스포츠'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면 스포츠 활동을 하지 않는 40%의 사람들에 집중하고,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과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모두'는 'all', 'everyone', 즉 '일정한 기준에서 하나도 빼거나 남기지 않고 다'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법적·제도적으로 반영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정책과 행정에 필요하다. '운동(스포츠)할 시간이 없어서', '일이 너무 힘들어서', '운동(스포츠)을 안 해 봐서, 몰라서', '운동(스포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서' 등 일상에서 스포츠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와 정책이 기획·이행돼야 한다.

이렇게 '모두의 스포츠' 구호와 구현을 강조하는 건 스포츠가 살 만한 삶의 조건, 즉 잘 사는 삶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와 프레데리크 보름스는 <살 만한 삶과 살만하지 않은 삶>에서 "인간과 삶 사이의 모든 관계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법의 영역에서도 절대적 최소치를 우선 보장해주는 인간 사이의 최소한의 권리를 확립해야 한다"며 모든 사람에게 살 만한 삶의 조건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싶어 하고, 삶을 충만하게 살고 싶어 한다. 살 만함의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 만한 삶의 조건을 따져 묻고자 한다면 삶을 비옥하게 하는 제도적 지원과 인프라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삶, 즉 살 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모두의 스포츠는의 실질적 구현이 중요하다. 구호만으로 존재하는 '모두의 스포츠'의 실체적 비전을 숙의해 결정하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제도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은 그 다음이다.

누구에게나 열린 스포츠

 4월 2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풋살장에서 시민들이 풋살을 즐기고 있다.
4월 2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풋살장에서 시민들이 풋살을 즐기고 있다.연합뉴스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다. 모든 인간은 차별 없이 올림픽 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헌장에 명시하고 있다. 유엔과 유럽연합 등의 국제기구들도 스포츠와 신체활동이 지닌 다양한 교육적·사회적·공동체적 가치와 보편적 인권 실현을 위한 잠재력에 주목하며 '모두를 위한 스포츠(Sports for All)'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모든 인간은 신체활동의 자유를 차별 없이 누리고 스포츠를 통해 얻는 가치와 효과도 차별 없이 보장돼야 한다. 스포츠는 인간의 기본 권리와 다양한 욕구를 실현하는 문화 매개이며 신체의 자유, 평등권과 교육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공동체 참여권 등의 차원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신체활동이라는 기본권을 동등하게 누리려면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토대가 필요하고 ,현실적 정책 프로그램의 수립과 실행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인권 침해 없이, 차별과 혐오 없이) 스포츠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각 집단·계층마다 나타나는 다양한 차별의 양상과 현황을 파악하는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과정, 절차 필요하다. 예를 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조사'보다 향상된 조사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의 스포츠 지표들은 성별통계조차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다음으로 '모두의 스포츠'가 무엇인지 정책적·행정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슬로건의 정책 대상을 다양화하고 확장하며 스포츠 활동과 가치를 구현하는 구체적 정책 방법과 형태, 즉 누구나 스포츠 하는 삶의 사회적 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숙의를 반드시 해야 한다. '스포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스포츠를 할 수 있으려면 어떤 환경과 조건이 필요한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스포츠를 향유하는 스포츠권의 실현은 교육·노동·문화·복지 등 사회 정책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관련 분야의 구성원들이 함께 다양한 관점의 융합적 스포츠 정책 기획 실행을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스포츠'가 실현된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비전과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이를 반영한 스포츠기본법의 개정과 시행령·시행규칙이 제개정돼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상상하고 바라는 대한민국의 스포츠는 '누구에게나 열린 모두의 스포츠 세계'이다. 특정인이나 체육인이라 지칭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체육인·스포츠인인 세계. 그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쉽게 스포츠를 권할 수 있어야 한다. 스포츠를 권했을 때 이를 따를 것인지의 여부는 개인의 선택과 의지일 뿐, 환경·제도·계층·사회문화적·경제적 조건이 이유가 되지 않는 대한민국 스포츠를 상상한다. 여성은 물론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대한민국에 사는 모두가 다양한 스포츠를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스포츠의 재미를 경험한 사람들은 스포츠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모든 사람이 스포츠인·체육인으로, 스포츠 없는 삶을 상상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스포츠 분야의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부작용, 적폐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에 내재된 민주주의 가치 실현이며 스포츠를 통한 살 만한 삶의 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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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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