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을 연출한 한지원 감독.
넷플릭스
SF 장르에 멜로의 결합. 한국 대중 영화에선 불모지와도 같은 요소를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독립 애니메이션과 광고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해 온 한지원 감독은 신작 <이 별에 필요한>에 두 성인 남녀의 애틋함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눌러 담았다.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 감독은 글로벌 OTT와 첫 협업 소감과 함께 작품에 담긴 많은 스태프들의 노고를 짚었다.
<이 별의 필요한>은 205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화성에서 행방불명 된 모친을 이어 우주인의 꿈을 키워온 난영(김태리)이 뮤지션 제이(홍경)를 알게 되면서 사랑의 감정을 틔워가는 과정을 그렸다. 화성 탐사 과정에서 위기를 겪는 난영과 이를 아파하는 제이의 모습은 새삼 잊기 쉬운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복기시킨다.
이 작품의 씨앗은 2019년 한 주얼리 브랜드 의뢰로 내놓은 1분 30초짜리 단편에 있었다. 작화는 전혀 다르지만 할머니의 꿈을 이어받아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던 한 감독은 여기에 여러 캐릭터와 사건을 부여해 색다른 SF 장편을 만들어냈다. < D.P. > <지옥> 시리즈를 제작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한지원 감독의 단편을 보고 협업을 제안했고, 이것이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투자로 이어진 사례다.
SF 장르에 묻어난 아날로그 감성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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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뭐든 될 수 있을 거야> 이후 6년이 걸려 완성한 건데 클라이맥스에서 <아만자>라는 드라마의 애니메이션 파트 의뢰를 받아 할 무렵에 제안을 주셨다. 그 단편을 장편화해보자는 제안에 이야기를 확장했다. 평소에 저도 우주를 소재로 한 여러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독립 애니메이션을 해와서 장르물보단 제 이야길 녹여 표현하는 데에 익숙했기에 자연스럽게 지금의 결과물이 된 것 같다.
제가 경기도 광명시 출신인데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난영과 제이에 대한 이야기를 암울하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뭔가 멸망하는 SF 보단 < HER >같은 정서적 친밀감이 있는 세계관을 좋아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AI도 발전하니 사람의 친근한 말투를 쓸 것 같았고,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도 했을 거란 가정에 공중정원이 있고 보행자 중심의 거리로 재편된 서울을 묘사하려 했다."
두 주인공이 사랑을 키워가는 곳이 서울 종로구의 세운상가다. 평소 본인의 빈티지 카메라를 고치거나 지인 예술가들의 전시를 보러가며 내적 친밀감이 쌓인 동네를 소환했다. 미래를 묘사하는데 묘한 향수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한지원 감독은 "그게 애니메이션이 줄 수 있는 감각 중 하나"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애니메이션이 성인에게도 좋은 매체인 이유가 바삐 살면서 잊거나 두고 온 어떤 정서가 있잖나. 우리 작품은 사랑의 감정, 어린 시절의 감정을 생각나게 한다. 트렌드 흐름을 보더라도 20년, 25년 주기잖나. 턴테이블과 LP에 애착이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거기서 따왔다. 미래 이야기라도 이런 유행의 순환을 생각하면, 새로운 다른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 2025년인데 2000년대 서울의 사진과 비교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공간이 있잖나. 모든 걸 미래적인 걸로 바꾸기보단 2050년 서울에 뭐가 남아 있을까를 상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미래를 상징하는 여러 장비나 배경을 무시하지 않았다. AR과 VR 기술을 활용한 각종 장비들이 영화에 등장한다. 특히 화성 탐험 시퀀스에선 폭풍에 휩쓸리며 생명에 위협을 받는 난영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한 감독은 "미래지향적 건축물이나 관계자 인터뷰를 보거나 과학 기술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며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도 결국엔 애니메이터들의 실력으로 승부를 봤다"고 강조했다.
"실사 촬영을 하거나 3D 프리 비주얼 작업을 해서 그 바탕에 애니메이터들의 해석을 가미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모션 캡쳐는 따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2D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3D 기술을 통해 사전 준비를 많이 해서 최대한 2D로 표현하려 한 셈이다. 물론 훌륭한 3D 애니메이션도 많지만 제가 사람의 손맛을 좋아하는 성향이다. 아무래도 이건 이후 작품에도 쭉 이어질 것 같다."
김태리-홍경 목소리 연기에 많이 배워
▲영화 <이 별에 필요한> 제작스틸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은 곧 한지원 감독 개인의 경험이 짙게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애하고 결혼까지 한 그는 남자 주인공 제이가 현재 남편의 영어 이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귀띔했다. 기자는 난영의 이름이 혹시 해방 직후 가수이자 '목포의 눈물'로 잘 알려진 이난영에서 따왔는지 물었다. "그걸 발견한 분은 처음"이라며 한 감독이 설명을 더했다.
"초기 시나리오에 있던 이름인데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이 중심 소재기도 하고, 여성주의적 주제를 담으려고도 해서 난영으로 지었다. 그 설정이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세련된 요즘 이름이 많지만 그 이름이 주는 힘이 있더라."
무엇보다 감독의 의도를 잘 표현한 배우들이 있기에 지금의 완성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처음 목소리 연기에 도전한 김태리, 홍경을 두고 한지원 감독은 "제가 그분들게 배운 게 많다"며 일화를 언급했다.
"두 분 모두 작품으로만 알던 배우였는데 그 매력을 이 작품에 집어 넣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지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식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관객들도 이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끄럽지만 제 작품의 비디오 콘티를 만들 때 제 목소리로 모두 가이드 녹음을 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도 콘티에서 직접 할머니, 여주인공 등의 목소리를 녹음한 영상이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직접 가이드 녹음을 하곤 한다.
그걸 바탕으로 배우분들이 해석을 하시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는 식으로 작업했다. 제 상상보다 두 배우분이 열정적이셨다. 목소리 연기라 해석이 제한될 수 있는데 동작까지 연구해주셔서 좋은 제안을 많이 주셨다. 김태리 배우님은 거장 감독님과 작업한 경험이 있잖나. 재밌는 피드백을 주셨는데 저도 깨닫는 게 많았다."
만화방을 운영했던 할머니 곁에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다던 한지원 감독은 그 매체의 무궁한 가능성을 여전히 긍정하고 있었다. 차기작 또한 현재 제작사와 이어갈 예정. "2D 애니메이션 작업이 꾸준히 나오는 걸 보여드림으로써 보다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야지카 하야오 감독님의 <원령 공주>를 보고 받은 충격이 있다.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더라. 제가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도 이 업계가 할만하다는 말을 듣진 못했다. 항상 고군분투 해온 분들 덕에 이 신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 작품의 하청을 받던 구조에서 지금은 독창적인 작품도 나오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등 성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은 감독 개인이 아니라 함께 노하우를 개발하고 발전시켜온 해당 팀 덕에 이뤄진 것이다. 한국은 아직 그 노하우가 이어지는 안정적 구조가 없다. 정부 지원 사업도 해마다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스태프 개개인은 정말 세계 수준인데 구조적으로 지원과 격려가 더 필요하다. 우리 작품처럼 한국이 배경인 애니메이션이 다양하게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일단 뿌듯할 것 같다. 어릴 때 즐겨 본 짱구가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 게 저뿐일까. 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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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만화방 운영했던 할머니 곁에서 애니메이션 감독 꿈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