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초능력자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뛰게 하는 클리셰 중 하나다. 할리우드의 자본력을 등에 업은 화려한 영화들에 열광하다가도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심심찮게 명멸했던 게 바로 영웅물 장르다. 이중 지난 5월 30일 개봉한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는 코미디와 액션에 영웅 서사를 버무렸고, 개봉 첫 주말을 지날 즈음 39만 관객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영화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과속 스캔들>(2008), <써니>(2011) 등으로 한국 대중영화를 대표하는 흥행 감독이 된 강형철 감독이 뮤지컬 영화 <스윙키즈>를 발표한 이후 7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촬영은 2021년에 끝났지만 주연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로 4년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 배우 문제는 안타깝지만 이 영화의 본질 만큼은 감독의 진심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지난 5월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형철 감독에게 <하이파이브>에 얽힌 여러 이야길 자세하게 들었다.
다섯 캐릭터의 유래
▲영화 <하이파이브>를 연출한 강형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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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재인, 안재홍, 유아인, 라미란, 김희원 등 다섯명이 얻게 된 초능력들이 모두 이식받은 장기와 관련 있다는 설정과 이들 모두 우리 사회 구조에서 어떤 궁지에 몰려있는 서민이라는 설정 때문일 것이다. 정체불명의 존재의 장기 기증으로 각각 심장과 폐, 망막, 신장, 간을 이식받은 이들은 저마다의 능력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다가 거대 사이비 종교와 맞서 싸우며 시민들을 구하게 된다. 이야기의 초기 아이디어는 강형철 감독과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유성권 피디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타짜2>를 찍고 난 2014년 무렵이었나. 초능력자에게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떨까 하고 유성권 피디가 제안한 게 있었다. 소녀가 빠른 속도로 언덕길을 뛰어 올라가는 이미지가 생각나서 쓴 로그라인이라고 하더라. 그땐 스윽 지나갔다가 <스윙키즈>를 마친 이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거지. SF 장르라고 해서 두려움은 없었다. 제가 좀 낙천적인 편이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믿고 즐겁게 일을 시작하는 편이다.
보신분들 중에 주인공 이름이나 서로 앙숙 관계로 설정된 기동(유아인)과 지성(안재홍)이 <슬램덩크>를 연상시킨다고 하시는데 맞다. 후반부 하이파이브 장면은 나름 그 작품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그리고 이재인 배우가 맡은 완서는 제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 이름을 따온 거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작가님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잖나. 시나리오를 쓰는데 책장에서 작가님 성함이 눈에 띄더라. 그 싱그러움을 담아 주인공에게 주고 싶었다. 지성 캐릭터는 말그대로 세 개의 폐를 지녔다며 칭송받은 박지성에 대한 존경의 의미였고."
각 캐릭터들이 백수거나 힘 약한 고교생, 그리고 야쿠르트 외판원 등으로 설정된 것에 강형철 감독은 "주변 이웃들이 초능력자가 됐을 때를 상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설정됐다"며 음악과 상황 등 영화적 설정에 대해 말을 이었다.
"빌런 중에 가장 직관적인 게 뭘까 생각하다가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서 종교 사기꾼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 신을 빙자한 사기꾼이 세상에서 제일 겁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처음 그 장기를 기증한 존재를 많이 물어보시는데 일단 이 영화에선 약간 미스터리하게 시작하는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대에 어떤 힘이 주어진 사람이 시대와 대륙을 지나치며 선인으로 기억되거나 악마로 기억되기도 하는 과정을 오프닝 시퀀스에 담았다. 메두사, 드라큘라처럼 한 존재 안에 그 힘이 다 있거나 6개로 쪼개졌을 때도 있었음을 암시했다. 그래서 초반엔 좀 스릴러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완서, 기동, 지성, 선녀, 약선에게 그 힘이 전달되면 코미디의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음악에 대해선 강형철 감독 특유의 개성이 많이 묻어났다는 평이다. 전작 <스윙키즈>도 그랬고, <써니> 때도 강 감독은 디스코나 록, 포크에 국한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에 어울리는 선곡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이파이브> 주요 장면에 귀에 감기는 여러 음악들이 있다면 이 또한 감독의 계산이 십분 깔린 덕.
"제 취향이라면 취향이다. 완서가 처음 언덕을 뛸 때 나오는 게 스매싱 펌킨스 노래다. 요즘 애들과 좀 다른 말투를 쓰는 완서가 과거 저항의 상징인 얼터너티브 록 음악을 들으며 해방감을 느낄 것 같았다. 기동은 밤에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잖나. 코리 하트의 'Sunglasses at night'가 그래서 들어갔다. 야쿠르트 카트 추격 장면에 나오는 노래는 릭 애슬리의 'Never Gonna Give You Up'이란 노랜데 모두 이 영화에 어울리는 영화적인 노래라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향연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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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완서 역의 이재인을 비롯, 배우 안재홍이 선보이는 반가운 코미디 연기, 자연스러웠던 라미란의 야쿠르트 외판원 연기 등은 <하이파이브>에 생기를 더하는 요소다. 각 배우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강형철 감독은 자신의 글 이상으로 영화에 활력을 준 배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재인 배우는 백상예술대상이었나. <사바하>로 상받을 때 객석에 전 있었는데 소감을 들으며 저 반짝이는 아이는 누군가 싶었다. 대본을 쓰면서 완서 역할에 딱이겠더라. 물론 다른 배우들도 만났고 다들 훌륭했는데 재인 배우가 적역이었다. 본인의 일상 모습에 가장 가깝게 표현했다. 아빠 역의 오정세, 그리고 지성 역의 안재홍 배우는 제가 쓴 대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마치 애드리브인가 싶을 정도로 개성 있게 연기한다. 그 리코더 부는 장면에서 재홍 배우가 그렇게 춤을 출 준 몰랐다(웃음).
교주 역할로 2인 1역을 한 신구 선생님과 박진영 배우도 적역이었다. 신구 선생님은 흔쾌히 출연을 수락해주셔서 쾌재를 외친 기억이 있다. 평소 한 말씀 한 말씀이 정말 영화와도 같아서 찍어두고 싶을 정도였다. 진영 배우는 아이돌 가수라서가 아니라 정말 열심인 배우였다. 신구 선생님이 녹음해 둔 대사를 연습해서 단순히 흉내가 아닌 체화해서 소름끼치도록 연기하더라."
과거 전작들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코미디는 빠지지 않는다. 강형철 감독이 설계한 포인트들에서 예외 없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타율이 좋다는 후문이다. 그는 "웃기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몰입해서 진지하게 해낼 때 나오는 웃음이 있다"며 "안재홍 배우를 비롯해서 그런 코미디의 결이 배우들과 잘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선한 배우분들이었고 베테랑들이었다. 여러 명 모여서 찍을 때 배우들이 서로 튀겠다고 하면 엉망이 되잖나. 물론 제가 경험한 현장에서 그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는데 이 현장은 배우들이 서로 먼저 분량을 챙기라며 밀어주는 분위기였다. 서로의 액션을 잘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선한 분들이 와주신 게 제겐 행운이었다. 코로나19 시국 때 한창 찍었는데 그때 촬영 마치고 다같이 회식 한 번 못 한 게 참 아쉬울 따름이었다."
영화주의자
▲영화 ‘하이파이브’의 한 장면NEW
<하이파이브>를 두고 <전우치> <쿵후 허슬>, 가까이는 디즈니 드라마 <무빙>을 언급하는 평들이 보인다. 코미디 SF 액션에 방점을 찍은 서로 다른 영화들의 공통 분모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오리지널리티 면에서 분명 <하이파이브>는 독자성이 뚜렷해 보인다. 흥행 여부에 따라 프렌차이즈화 되어 시리즈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일단 영화가 잘 개봉되는 게 우선이다. 후속편 이야기는 그래서 조심스럽다. 제게 장르 영화 감독이란 표현을 종종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직 스스로 묻는 중이다. 좀 더 영화를 만들어 보면 답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 다양하고 재밌는 영화가 있는 가게 말이다. 어떤 분은 <스윙키즈>를, 다른 분은 <과속 스캔들>을 좋아해주시겠지. 신작 칸에 <하이파이브>라는 오락 영화를 넣은 셈인데 이걸 깔깔 웃으면서 극장에서 봐주시길 기대하고 있다.
물론 <스윙키즈> 흥행 실패가 아쉬울 순 있지만 관객과 소통 못 한 감독의 탓이다. 하지만 영화는 기록 매체이고, 영원히 남을 수 있기에 나중에 사랑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 진정성을 담은 만큼 그걸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좋아해주실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오락 영화를 만들겠지만 허투가 아닌 진성성을 담아 하고 싶다. 그리고 꼭 극장에서 볼 영화를 만들고 싶다. 물론 OTT 플랫폼을 아예 배제하는 건 아니다. 인생은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제 작품은 꼭 극장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이파이브>도 극장에서 시원하게 즐기실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결과다. 왜 사람들이 극장으로 와야만 하는지를 화면과 소리에 담아냈다. 이 영화가 작은 마중물이 되어 많은 분들이 극장으로 오셔서 한국영화들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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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락영화지만 진정성 담았다" '하이파이브' 감독의 소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