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주전쟁> 스틸컷
영화 <소주전쟁> 스틸컷㈜쇼박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나 깨나 회사 생각으로 꽉 찬 국보그룹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은 매각 위기의 그룹을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다. 반면, 회사와 인생을 철저히 분리한 채 오로지 수익만을 추구하는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인범(이제훈)은 이번 건을 성공시켜 승진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편, 국보그룹 석진우 회장(손현주)은 무리한 계열사 확장과 안일한 경영방식 등으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70년 전통의 가업이 한순간에 망하게 생겼다. 이에 종록은 최종 부도만은 막아보려 기밀 자료까지 넘기며 솔퀸에 자문하고, 인범은 국보그룹을 제대로 삼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접근한다.

국민의 소주 사랑에 기대 도덕적 해이에 빠진 회장을 돕는 충성심 높은 종록, 일은 일일뿐이라며 성과주의만을 좇는 인범은 각자의 깊은 수렁에 빠져 버린다.

IMF 실화 모티브의 득과 실

 영화 <소주전쟁> 스틸컷
영화 <소주전쟁> 스틸컷㈜쇼박스

<소주전쟁>은 IMF를 배경으로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대결을 그렸다. 자본주의의 텁텁하고 매운맛을 제대로 경험하는 슬픈 과거다. 2005년 골드만삭스에 매각된 진로소주 인수 과정을 모티브로 만들진 영화는 국민 술이자 애환의 소주를 매개로 위기의 시대,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훑는다. 신·구 세대, 자본주의와 충성심, 동·서양의 가치관도 충돌한다.

IMF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뼈아픈 치욕과 교훈을 심어준 잊지 못할 역사다. 국가 경제 위기 속 부도, 실업, 매각 등으로 불리는 단어의 연속은 숱한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국가-회사-가정이 도미노처럼 붕괴하면서 사회의 큰 변화를 촉진했다.

이를 기회 삼아 돈을 버는 사람도 있었다. M&A는 몸 바치며 다니던 직장을 한순간에 잃게 했지만 '선진 금융 기술'이라며 자본주의의 칼을 빼든다.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오너는 회사가 무너지면 곧 국가가 무너진다고 믿는 국민을 이용해 시간을 벌기도 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돈벌이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인범은 신념에 찬 종록을 조롱하듯 내내 비웃는다. 하지만 술에 젖어들듯 종록의 인간미에 영향을 받아 서서히 변한다.

길을 잃어버린 방향성

 영화 <소주전쟁> 스틸컷
영화 <소주전쟁> 스틸컷㈜쇼박스

<소주전쟁>은 30여 년 전 이야기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까닭에 언짢은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기분에 따라 달짝지근하게도, 쓰게도 느껴지는 소주처럼 복잡한 감상이 전해진다.

문제는 이 시기를 다룬 영화와 큰 차별점이 없다는 데 있다. 외환위기를 착실하게 담으면서도 역사가 스포인 상황을 매력적으로 끌고 가지 못한다. IMF 당시의 실화를 담은 <국가부도의 날>, 외환은행 매각 과정을 담은 <블랙머니>와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 중반부까지 실제 상황을 재현하는 데 할애하고, 후반부는 나름의 반전을 넣어 무리한 메시지를 넣는 데 주력할 뿐이다.

이제훈과 유해진의 반대되는 성향은 밸런스와 톤 조절에 실패해 애매한 위치에 놓였다. 철저히 돈과 일에만 매달리던 인범이 종록과 소주를 마시며 친해지고, 믿음을 쌓으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돈이라는 목적만으로 움직이던 자신이 삶에서 처음으로 '가치관'을 떠올리며 깊게 갈등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기에 캐릭터이 설득력을 잃고 만다. 다소 전개가 느리기는 했지만 통쾌한 반전을 기대했다면 맥 빠지는 결말이다. 해결해야 할 이야기가 더 있어 보였지만 갑자기 끝맺으면서 2년 후 에필로그를 들이밀어 당황스럽다.

이제훈은 드라마 <협상의 기술>에서도 M&A 전문가로 분해 이미지가 겹친다. 드라마는 회차를 거듭하며 어려운 경제 관련 용어를 에피소드별로 풀어냈지만 영화는 한정된 러닝타임 탓에 그마저도 실패해 매력을 잃어버렸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스킬을 펼쳐낸다. 원래 제목이었던 '모럴 해저드'가 '소주전쟁' 보다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는 씁쓸한 현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말은 여전히 우리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소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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