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여러모로 훌륭했다. 들여온 몇몇 작품은 전체 영화제의 격을 높였다 느껴질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개막작 <콘티넨탈 '25>가 특히 그러했고,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작 <계엄령의 기억>과 폐막작 <기계의 나라에서>도 상당한 매력을 갖췄다고 하겠다.
이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목소리가 무척 많았다. 그를 마주하지 않고서야 한국이 고립된 섬나라가 아니라고 어떻게 떳떳이 말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말하자면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의 고립을 풀고 세상과 잇는 역할을 감사하게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단 얘기다.
마땅히 언급해야 하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 다큐멘터리 부문 2등을 수상한 영화, <폐허에서 파쿠르>다. 파노라마는 주력인 경쟁부문은 아니지만, 뛰어난 작품을 상영하는 인기 섹션이다. 영화제가 직접 작품을 선별해 시상하는 대신 관객이 직접 투표를 통해 인상적 작품을 가려낸다. 이 와중에서 가능성 있는 작가와 작품이 가려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베를린 파노라마 부문에선 유독 훌륭한 다큐가 초청되는 경우가 잦다. <폐허에서 파쿠르>가 꼭 그런 사례다.
▲폐허에서 파쿠르스틸컷
JIFF
오늘의 한국이 반드시 접해야 하는 이야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들여온 기대작 중 하나가 <폐허에서 파쿠르>였다. 올 2월 베를린에서 화제가 된 작품을 불과 3개월 여 만에 전주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꽤나 발빠른 노력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1980년 생 중년 여성감독 아리브 주아이테르의 장편영화로, 프론트라인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프론트라인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섹션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도발적이고 독립적이며, 안방에 들어앉아 TV만 보고서는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을 모아 상영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프론트라인 섹션에 열편의 작품을 공식 초청했다고 발표했는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여파를 다룬 작품군이 그중 가장 주된 흐름을 이루었다.
<폐허에서 파쿠르>를 포함, 다큐멘터리 <그라운드 제로로부터>, 극영화 <낯선 곳을 향해>까지 세 편의 작품으로, 필자는 이 모두를 '씨네만세'를 통해 전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터다. 해당 작품이 다루는 이야기가 오늘의 한국에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고 여기는 때문인데, 불행히도 영화제의 제한된 환경과 이후 배급이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큰 탓에 기록으로 남겨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세 편의 영화는 하나하나가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의미 있는 작품이다. 다큐는 다큐대로, 극은 극대로 저만의 의미와 멋, 그리고 이따금씩의 아름다움을 이루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폐허에서 파쿠르>를 가장 특별하게 기억한다.
▲폐허에서 파쿠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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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가자를 잇는 90분의 원격통화
90분 짜리 장편영화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리브 주아이테르 감독이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파쿠르 팀에 연락해 이 팀의 멤버인 아흐메드와 나눈 일련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 워싱턴 D.C.를 주된 무대로 활동해온 주아이테르는 흔히 다국적 영화감독이라고 소개되곤 하는데,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팔레스타인에서 떠나 레바논에서 자랐고, 이후 미국에 터를 잡은 때문이다.
시민권과 체류허가, 여권상 국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을 다국적이라는 세 글자 안에 우겨넣는 것이 어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주아이테르와 한 번도 가자를 벗어난 일 없던 아흐메드의 대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들 안에 동일한 정체성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끔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네 살 때 처음 가자 지구에 방문해 바다를 본 기억을 가진 감독이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유리판 위에 가자의 바다를 그리며 소일하는 감독의 모습은 영화 가운데 중간중간 반복돼 삽입된다. 팔레스타인 사람인 어머니가 죽고 저와 팔레스타인의 연결고리가 끊겼는지를 의심하던 그녀 앞에 가자지구 해변을 배경으로 파쿠르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타난 건 운명이었을까. 아흐메드는 감독에게 저들의 팀이 해냈던 파쿠르 영상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가자의 가장 오랜 건축물과 폐허가 된 공항, 낡은 쇼핑센터, 그야말로 온갖 곳에서 이들은 몸을 던져 떨어지고 구르고 뛰어넘는다.
▲폐허에서 파쿠르스틸컷
JIFF
어디 취미라고만 할 수 있을까
도대체 파쿠르를 왜 하는 거야? 그런 물음 따위는 무용하다. 그들 위에 떨어지는 폭탄도, 무너지는 건물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생명들에도 이유는 없었으니까. 파쿠르는 그저 뛰고 넘어서고 구르고 떨어지는 일만이 아니다. 가자지구의 파쿠르팀에게 파쿠르는 저항이며 삶이 된다.
가자에선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는 닫힌 현실 속에서 희망 없는 삶을 감내하며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 말고 다른 일은 무엇도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파쿠르는, 절벽을 굴러 떨어지는 일만은 다른 것처럼도 보인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느낄 수는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폐허에서 파쿠르>에 대하여 "황폐한 가자 지구의 건물들 잔해에서 유일한 취미인 파쿠르를 하는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에 대한 씁쓸한 보고서"란 단평을 남겼다. 그러나 어디 그것뿐일까. 수십 미터 건물 외벽을 타다 떨어져 온 몸이 부서지고 동작을 연습하다 수시로 정신을 잃는 이들의 행위가 어찌 그저 취미일 수만 있을까.
▲전주국제영화제포스터JIFF
마음이 가는 그대로, 놓아두고 싶어진다
영화는 팔레스타인이 처한 현실, 이스라엘의 부당한 압제를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그저 아흐메드의 입과 그가 보내온 영상을 통해 이들이 파쿠르를 하는 광경을 보고 그에 얽힌 사연을 들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잃어버린 꿈과 삶과 일들이, 희망과 청춘과 열망이, 가족과 친구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드러날 뿐이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비판이 있을 수 있을까. 이보다 더 파괴적인 선언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주아이테르의 카메라는 직접 아흐메드를 찍지 못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넓은 바다와 대지를 건너온 영상과 음성을 이어붙일 뿐이다. 그 사이로 제가 그리는 바다의 물결과 일어나는 포말을 보일 뿐이다. 그것이 잃어버린 가자의 바다라는 걸 모두가 알지만, 그 바다는 끝끝내 그녀의 카메라 안에 담기지 못한다.
<폐허에서 파쿠르>를 나는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건 이 영화가 선명한 고통 위에 일어난 열정을, 재앙 위에 움트는 삶을 현실적이면서도 기적적으로 보이는 때문이다. 희망을 짓밟지 않으면서도 낙관 없이 그려내는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난 뒤, 그 고통에 죄스럽게도 좋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건 모두가 감독의 이 같은 자세 덕분이라 여긴다. 영화가 끝나고 마음이 움직이는 그대로 놓아두고 싶어진다. 그 마음의 방향이 옳다고 믿어서다.
요컨대 <폐허에서 파쿠르>는 관객이 옳음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끈다. 그런 영화는 정말이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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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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