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 않겠으나, 악인에게도 서사가 있다. 악인이라 딱 잘라 구분 짓고자 하는 편한 태도 너머엔 악인이 아닌 악행만이 존재할 뿐이란 진실이 자리한다. 그렇다. 선인과 악인이 아닌, 선행과 악행만이 존재한다. 선과 악은 선택의 순간에야 비로소 저를 드러낸다. 선하다 믿었던 이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떤 악인도 저를 악당이라고만 여기진 않는다.

흔히 악인이라고들 믿는 이의 서사를 응시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한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기까지 세상의 책임은 없는가를 돌아봄으로써 인간을 몰락하도록 하는 문제를 짚어내기 위해서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론트라인 초청작 <낯선 곳을 향해>는 팔레스타인 난민 차틸라(마흐무드 바크리 분)와 레다(아람 사바그 분)의 이야기다. 사촌 사이인 둘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다른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뒤섞여 지낸지 한참이다. 차틸라의 처자식과 레다의 어머니는 아직 레바논 난민촌에 남아 있는 모양으로, 이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서 남겨진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최종 목적지는 독일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먼저 정착한 독일 거리에 카페를 차려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겠단 게 이들의 목표다.

낯선 곳을 향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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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난민 누아르의 효시

현실은 만만찮다. 어떻게든 아테네까지 오긴 했는데, 독일까지 넘어가기가 여간 만만찮은 게 아니다. 합법적 경로는 꿈도 꿀 수 없고 불법으로라도 입국을 해 불법체류 상태에서 가족을 불러올 돈부터 마련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다. 그러자면 위조여권이 있어야 하는데, 마땅한 직업 없이 불법체류자인 이들에게 그 비용을 마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낯선 곳을 향해>는 팔레스타인계 덴마크인 감독 마흐디 플레이펠의 장편 데뷔작이다. 13년 전 처음 만든 단편 <우리 것이 아닌 세상>으로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순도 높게 전할 수 있는 창작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 그다. 첫 장편이란 게 믿기지 않는 완성도의 작품은 제목 그대로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을 꿈꾸는 두 팔레스타인 젊은이가 저들의 의도와 달리 가고자 한 적 없는 '낯선 곳'으로 표류하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담았다.

나는 <낯선 곳을 향해>를 이 시대 난민 누아르의 처음 쏜 살, 이른바 효시라 명명한다. 장르가 정립된 지 70여년이 지났음에도 오늘날까지 누아르란 무엇이라 확정적으로 규정짓는 의견은 나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모호한 경계 가운데도 드넓은 영토를 포괄하는 공통된 특질이 있는 것으로, 나는 그것을 통상적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해 관객을 설득하는 장르라 여겨온 터다.

낯선 곳을 향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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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에게도 서사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대부> 시리즈는 사람 목숨을 개보다 가볍게 여기는 이탈리아 마피아 보스 꼴리오네 패밀리의 대서사시로, 세 편의 영화 가운데 건실한 청년이던 마이클(알 파치노 분)이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 보스가 되어가는지를 관객 앞에 납득시키고야 마는 것이다. 한국 대표적 누아르인 <친구>며 <달콤한 인생>에서도 관객은 건달 출신으로 마약쟁이로 전락한 준석(유오성 분)이며 폭력조직 행동대장격인 선우(이병헌 분)의 대의랑은 전혀 관련없는 싸움에 마음을 준다. 말하자면 누아르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선 흔히 악당이라 구분지어질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서사를 살핀다. 누아르 가운데엔 우리가 귀담아 듣지 않았던 그들의 이유가, 사연이, 심지어는 꿈까지도 자리한다. 그리하여 누아르는 그 폭력과 범법 가운데서도 차라리 자애롭다.

106분짜리 장편은 난민을 주인공 삼은, 난민 청년들의 드라마를 정면에서 응시한 영화에선 일찍이 시도된 적 없는(적어도 나는 본 적이 없는) 누아르적 연출을 감행한다. 차틸라와 레다는 그들이 등장하는 첫 순간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법과 제도, 질서와 같은 공동체의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다. 처음 이들은 아테네 공원 귀퉁이에서 시간이나 죽이는 한량처럼 등장한다. 영화는 이내 이들의 의도를 드러내는데, 어느 중년여인이 공원 벤치에 앉아 쉬려 들 때다. 차틸라가 레다에게 신호를 주고, 레다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여성 앞으로 다가가 눈에 띄게 엎어지는 것이다. 그녀가 레다에게 신경이 쏠린 틈을 타 차틸라는 벤치 뒤에서 나타나 여자의 핸드백을 낚아채고 내달려 도망친다. 2인1조 절도단, 그리스 치안을 어지럽히는 난민 범죄단이 아닌가.

이대로 난민 범죄단을 소탕하는 그리스 경찰들의 활약을 잡아낼 수도 있겠다. <범죄도시>의 마석도(마동석 분)가 조선족 범죄자들을 호쾌하게 때려잡듯, 그들의 잔학함을 부각할 뿐 사연엔 귀를 기울이지 않듯이, 차틸라와 레다를 그렇게 그릴 수도 있었겠다. 이들이 훔친 가방에 기껏해야 푼돈 얼마와 약이, 그러니까 빼앗긴 여인의 안쓰러운 사정을 짐작할 만한 물건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다. 이스라엘으로부터 고향에서 내몰려 열악한 레바논 정착촌에서 일생을 마치는, 혹은 난민을 받아주지 않는 유럽 국가들을 목숨을 걸고 오가는 이들의 고난을 감동적으로 엮어내는 방법이다. 파도에 뒤집혀 빠져죽거나 표류하다 굶어죽는,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고 수용소며 거리에서 희망 없는 삶을 연명하는 모습을 찍어낼 수 있겠다.

낯선 곳을 향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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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

그러나 플레이펠은 쉬운 길을 걷지 않는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방패삼아 이들에게 불쌍한 난민이란 틀을 씌우길 거부한다. 이들을 그저 장르영화의 수단쯤으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먼 타국에서 이들이 저지르는 악행들을 비추고, 그와 같은 악이 그들 앞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인다. 그 과정에서 가난과 희망 없음으로 고통 받는 그리스의 상황과, 겨우 초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생사의 기로를 건너 홀로 먼 여정을 떠나도록 하는 현실을 비춘다.

위조여권을 구하는 건 차틸라와 레다에게 당면한 과제다. 그저 저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레바논 수용소에서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 남겨진 가족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에서 위조여권을 만드는 게 법을 어기는 일이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저기 마석도 같은 이라도 입장을 바꾸어 차틸라와 레다의 상황에 서면 기꺼이 위조여권을 사려 들 것이다. 어쩌면 그 비용을 마련하려 가엾은 중년여인의 가방을 털고, 여행자에게 칼을 들이댈지 모를 일이다. 아, 이건 아니다. 마석도에겐 칼까진 필요가 없을 테다.

무튼 영화는 차틸라와 레다가 도둑질과 강도질을 일삼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중엔 아예 밀입국 브로커가 되고, 또 그 이상의 범죄까지 획책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 불법을 반기는 건 아니다. 철저하게 공통의 목적, 독일로 가 가족들을 불러오기 위한 일들을 해낼 뿐이다. 각 나라의 법이며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 따윈 중요치 않다. 가만히 이들의 삶을 따르다보면 이들이 그저 나쁜 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말 그대로 나라면 달랐을까 되묻게 되는 것이다. 우리 중 죄 없는 자, 아니 죄 없을 자 돌을 던지라!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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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감히 쉽게 말할 수 없으리라

이는 레다가 마약에 손을 대는 장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레다가 마약을 하자 차틸라는 불같이 화를 낸다. 같은 범법행위지만 강도질과 마약은 다르다. 레다가 그리스 사내들에게 몸을 파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차틸라와 레다가 처한 상황을 여기 지구 반대편 안온한 나라의 카페 발코니에 앉아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무심하고 무식할 뿐 아니라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이처럼 영화는 차틸라와 레다의 상황을, 그들의 선택을, 그에 따른 결과까지를 관객 앞에 사실적으로 내보인다. 그로부터 관객이 전에는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을 알도록 한다. 공감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이해하도록 한다. 누아르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조건, 악인의 서사를 알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악인이라 단정했던 이가 실은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깨닫도록 한다. 그렇다. 장첸(윤계상 분)에게도, 장이수(박지환 분)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 마이클 꼴레오네와 마석도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우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소실된 무엇이 있다. 어쩌면 그건 생각보다 값질지도 모른다.

영화의 끝에서 나는 묻게 된다. 차틸라는 악당인가. 레다는 또 어떤가. 그들은 어째서 죄악에 이르렀나. 동포를, 저와 같은 이들을, 간절한 사람들을 등치는 악당에겐 어떤 사연이 자리하고 있나. <낯선 곳을 향해>는 오늘의 인류가 외면해선 안 될 악인의 서사 한 줄기를 충분히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실패의 최종책임이 선택을 한 본인에게 귀속된다 할지라도, 영화를 본 누구도 그에게 너는 악인이라고 단정짓지 못하리라. 그를 가능케 하는 것, 이 영화가 가진 최대의 미덕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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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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