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로부터스틸컷
JIFF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전해온 22개의 풍경
글을 쓰는 입장에서 오 헨리의 이 같은 자세가 얼마나 모범적인가를 자주 생각한다. 다양성만 떠받들고 수준이란 없는 양 구는 오늘의 행태에 염증을 느낄 때도 없지 않지만, 작가가 귀를 기울일 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소리란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정말이지 모두에게 사연이 있다. 철학이며 사상까진 이르지 못했더라도 그가 이곳에 이르기까지의 이유는 있는 것이다. 모두에겐 저마다의 시야가, 세계관이 있다. 그중 무엇이 옳고 다른 무엇은 틀렸다고 아무도 쉽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론트라인 초청작 <그라운드 제로로부터>가 그를 증명한다. 영화는 22명의 감독이 합작해 찍은 것으로, 감독 각자가 찍은 약 6분 내외의 단편을 이어 붙였다. 공통점이라면 이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으로 전쟁 뒤 이곳에서의 뒤바뀐 삶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는 사실이겠다.
가자지구에서 찍은 짤막한 영화라 해서 천편일률일 거라 여긴다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400만 명이 있다면 400만 개의 이야기가 있다는 말처럼, 22명의 감독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부터 내용까지가 모두 제각각이다. 간단한 다큐멘터리부터 극영화와 애니메이션까지 종류도 다양하며, 주제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전쟁의 비극성을 부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비극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사랑 등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까지 있을 정도다. 참극에 주목한대도 그 접근법이며 소재까지가 다양하여서 관객은 한 편 영화로 가자지구의 삶을 폭넓게 이해하는 귀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프로젝트를 주관한 제작자 라시드 마샤라위를 필두로, 리마 마흐무드, 무함마드 알 샤리프, 아메드 하수나, 이슬람 알 제리, 무스타파 콜랍, 니달 다모, 카미스 마샤라비, 바샤르 아 발비시, 타메르 니짐, 아메드 알 다나프, 알라 이슬람 아요브, 카림 사툼, 알라 다모, 어스 알 반나, 라밥 카미스, 에티마드 와샤, 무스타파 알 나비, 하나 와지 엘리와, 위삼 무사, 바셀 엘 마쿠시, 니다 아부 하스나, 마흐디 크레이라까지가 작업했다. 그 기량부터 경력, 상황 등이 모두 제각각인 이들이지만, 도리어 그래서 <그라운드 제로로부터>의 특별함이 부각된다.
▲그라운드 제로로부터스틸컷
JIFF
전면적 붕괴 마주한 가자지구의 삶
왜 아닐까. 가자지구의 삶은 그야말로 전면적으로 붕괴했다. 지난 수십 년 간 가자지구에 대해 고립정책을, 서안지구에 대해선 이주정책을 지속해왔던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하마스 테러를 계기로 가자지구에 전격 침공했다. 그 뒤 전쟁과 일시 정전을 반복했던 전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 휴전을 중재한 뒤인 지난 3월부터 전면적 봉쇄정책으로 전환된 상태다. 두 달간의 봉쇄로 가자지구는 식량과 식수, 의약품 등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완전히 단절돼 고사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이달 2일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다시금 군사행동을 확대하겠다 밝히며 위기가 증폭될 전망이다.
말 그대로 전면적 붕괴다. 직접적인 폭격, 사살은 물론이다. 식량이 없어 굶주림을 겪고, 물이 없어 갈증은 물론이고 위생 문제도 부각된다. 의약품이 없어 간단한 질병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희망이 소실되어 우울과 절망이 확산된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등으로 건강한 삶이 깃들 공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학교가 무너져 미래세대를 길러낼 여력이 없고, 병원과 경찰, 소방력까지 소실돼 치안이 유지되기 어렵다. 팔레스타인 사회는 공공과 가정, 개인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면적 비상상태와 마주했다.
선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 또한 바뀌는 법이다. 63빌딩 전망대에 선 이가 개미의 생태를 관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다 아래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천문을 연구할 수도 없다. 22명의 감독은 제각각 삶의 현장에서 귀한 이야기를 길어올렸다. 여기 한국 편안한 도시에 앉아서는 도무지 접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를 전주시 편안한 객석에서 접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하고 미안한 일인가.
인상적인 작품이 많다. '와니싸 택시'란 작품이 있다. 와니싸는 당나귀로, 한 남자가 와니싸가 끄는 짐마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간다. 그가 고삐를 잡고 다른 사내가 마차에 걸터앉아 물건을 싣고 내린다. 마차가 천천히 굴러가는 동안 저기 하늘 위에선 굉음을 내며 이스라엘의 정찰드론이 날아간다.
'와니싸 택시'는 극영화다. 감독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사내가 드론의 폭격으로 죽고 당나귀 홀로 빈 마차를 끌고 돌아오는 이야기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영화는 마쳐지지 못한다. 중반 쯤 갑자기 전환된 화면 앞에 감독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제 조카가 며칠 전 폭격으로 죽었다며, 더는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신 무엇을 찍으려 했는지를 말하기로 했다며 위의 이야기를 읊어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그 자체로 영화적 수법인지, 아니면 정말이지 그녀의 말대로인지를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둘의 차이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라운드 제로로부터스틸컷
JIFF
전쟁이 파괴한 건 '삶', 그 당연한 진실
'리사이클링'은 기발한 단편이다. 직역하면 재활용이란 말대로, 영화는 가자지구에서 물이 쓰이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처음 플라스틱 양동이 가득 물을 배급받아온 중년의 여자가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가 뼈대가 그대로 노출된 아파트 위로 그 물을 겨우겨우 옮겨간다. 한참을 쉬고 몇 발자국을 걷고, 다시 또 그러기를 반복하여 제 집으로 물을 옮겨온 그녀가 컵에 물을 따라 목을 축인 뒤 어린 제 딸에게 컵을 건넨다. 남은 물을 양동이에 붓고 그릇을 씻고 제 아이를 씻기고 빨래를 하고 남은 구정물을 용변을 본 뒤 변기를 씻어 내리는 용도로 쓰는 것으로 영화가 끝을 맺는다. 말 그대로 가자지구에서의 물의 연대기다. 관객은 그저 그 쓰임을 보는 것만으로 가자지구에서의 삶이 어떤 지경인지를 감각한다.
전쟁 전엔 삶이 있었다고, 영화를 찍는 저희와 영화를 보는 너희 사이에 얼마 다르지 않은 인생이 있었다고 말하는 작품도 여럿이다. 폰카메라로 어수선하게 찍은 첫 작품은 3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의 현재와 과거를 잇달아 내보인다. 현재는 무너진 폐허 속에서 삶을 지탱하기에도 벅찬 꼴이지만, 한때는 그녀에게도 인스타그램에 셀카를 찍어 사진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 방을 예쁘게 가꾸어주고 집안일을 즐기며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나날이, 그런 행복이 제게도 있었단 것이다. 그 모두가 이제는 시멘트 가루 날리는 폐허 아래 잠겼다.
'선생님' 또한 마찬가지다. 한 중년 사내가 쓸 만한 걸 구해오겠다며 가자지구 곳곳을 터덜터덜 걸어다니며 마주하는 풍경들을 다룬 이야기다. 다분히 만듦새가 떨어지는 극영화이지만, 수준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뭐 하나 쓸 만한 걸 구하지 못한 사내의 앞에서 누군가 그를 알아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청년은 사내를 향해 선생님이라 부르며 제가 그의 제자였다고 말한다. 학교도, 학생도 사라진 선생이란 얼마나 무력한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의 삶이 꼭 그러하지 않은가. 이 영화가 말하는 게 그렇다.
▲전주국제영화제포스터JIFF
폐허로부터도 일어나는 게 삶이라고
시신용비닐백을 제 천막으로 가져와서는 그 안에서 추위를 피해 눈을 붙이는 청년의 이야기 '지옥 속의 천국'은 가자지구의 절망을 노골적으로 보인다. 한국 최전방에서 군생활하는 청년들이나 공감할 절망이 이들에겐 전역이란 기약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마주해 청년은 시신처럼 눈을 감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오버버든'이다. 피난에 앞서 이고지고 갈 수 있는 짐을 챙겨야 했던 여인, 그녀가 제가 아끼던 서재 책장 앞에 서 무엇을 들고갈지를 고민했다고 전한다. 이 책을 가져갈까, 저 책을 가져갈까, 너무 무겁지는 않을까, 매만지고 들었다가 내려놓은 끝에 그녀는 무엇도 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슬픔의 무게보다 무거운 책이 있을까, 그와 같은 독백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책 없이 떠나온 여정에서 그녀는 살아남았으나 미처 챙기지 못한 책을 어떻게든 가져왔어야 했던 게 아닐까 독백한다. 그 목소리, 문장들을 듣고 있자면, 그녀와 같은 여인을 그런 상황에 놓아두는 것이 얼마만큼 비인간적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영화의 제목에 쓰인 '그라운드 제로'는 폐허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폭발이 일어난 곳, 핵탄두를 맞은 땅, 대지진의 진앙지며 쓰나미에 쓸려나간 폐허를 말한다. 가자의 상황이 꼭 그와 같다고, 인간성이, 삶이, 아름다움이 죄다 무너진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라운드 제로'를 넘어 피워내는 무엇들을 비추려는 노력이 이 안에 담겼다. '로부터', 즉 'From'은 그저 그곳에서 전해져온 이야기란 걸 가리킬 뿐이 아니다. 이 땅에서 다시금 일어나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일이다. 나는 그를 응원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시신용비닐백에서 추위 피하는 청년, 카메라에 담긴 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