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사진
국립극단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가 돌아왔다. 2012년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에서 주인공 헤다를 연기한 지 13년 만이다. 당해 이혜영은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 연기상,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로써 이혜영은 동아연극상을 총 세 번 수상한 배우가 됐다. 이전까지 동아연극상을 세 차례 수상한 배우는 신구·박정자 등 한국 연극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배우들이었다. 그렇게 이혜영은 거장들의 이름 옆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최근 이혜영의 인기는 김성철과 함께 출연한 영화 <파과>를 통해 배가됐다. 인기 덕분에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가 공연되는 명동예술극장은 높은 객석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나날이 전석 매진 기록도 세우는 중이다.
헤다는 어떤 인물인가
<헤다 가블러>는 '현대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이다. 가블러 장군의 딸이었던 헤다 가블러는 젊은 학자 예르겐 테스만과 결혼해 헤다 테스만으로 살아가게 된다. 연극은 헤다가 예르겐과 긴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집에서 36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작품 속에서 헤다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다. 여성인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비롯해 다양한 구조적 억압에 직면한다. 헤다는 자유를 원하지만 정작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극중에서 헤다가 강조하는 해방, 아름다움 등은 자유와 맥락을 같이 한다.
헤다는 주변 인물들도 탐탁지 않아 한다. 중세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 예르겐은 현재가 과거를 위해 자질구레한 일들을 할 뿐이다. 그런 예르겐 옆에서 헤다는 권태를 강하게 느낀다. 뿐만 아니라 예르겐의 고모인 리나는 병세가 악화되어 죽게 되는데, 그렇게 헤다 주변에는 과거와 죽음만이 도사린다.
"나, 인생에 한 번쯤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을 갖고 싶어."
심한 권태에 사로잡힌 헤다가 갈망하는 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특히 전 연인이자 남편 예르겐과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 뢰브보르그를 자신의 뜻대로 바꿔놓으려 한다. 이때 헤다가 말하는 영향력이 마냥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 누군가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영향력이다.
이런 헤다를 두고 신경증적으로 해석하는 비평도 다수 있었다. 각종 억압이 헤다를 신경증적으로 만들어 이런 기행을 하게 한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헤다의 욕구를 소심한 반항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헤다는 자유, 해방 따위를 추구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한다. "난 지독한 겁쟁이지"라는 헤다의 대사가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헤다가 타인을 자극해 체제에서 이탈하게 하는 것을 일종의 소극적 반항 또는 저항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한편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그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을 전통적 가치를 파괴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명명했다(신화에 등장하는 그 디오니소스가 맞다). 연극에는 실제로 디오니소스를 은유하는 대사가 다수 등장한다. 헤다는 이런 디오니소스적 가치를 타인에게 적용해보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선택, 그 이유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사진
국립극단
이러한 해석 외에도 헤다를 둘러싸고 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만큼 헤다는 의문스럽고, 광기 어린 것 같기도 하며, 무엇보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이런 헤다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그 유명한 헤다의 마지막 선택을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필자가 연극을 관람한 날에는 제작진과 이혜영 배우가 참여한 '예술가와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서 박정희 연출가는 헤다의 자살을 디오니소스적으로 해석하는 데 힘을 실었다.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한 조만수 충북대 교수는 "이곳을 떠나는 게 헤다에게 아름다움, 자유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헤다는 뢰브보르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원하는 그림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불만이 있었다. 또 헤다의 집을 계속 들락날락하던 검사 브라크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 놓이자, 이 역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헤다가 바라던 누군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상황에 헤다가 객체로 놓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우에 따라 헤다를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고자 하는 인물,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인물, 반사회적이거나 신경증적인 인물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어떤 관점을 택할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때로는 헤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역시 연극의 매력이다. 작품의 윤색을 맡은 황정은 작가는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도 심정으로 이해하는 스며듦이 필요하다"며 자신 역시 이와 같은 태도로 헤다에게 다가갔다고 고백했다.
한편 이혜영이 출연하는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이영애가 출연하는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와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 같은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는 것이 이례적인 만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국립극단이 제작한 이혜영의 연극은 6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고, 이영애의 연극은 6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다.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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