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Dogs in the Sun > 스틸컷
영화 < Dogs in the Sun > 스틸컷JIFF

[기사수정 : 29일 오전 11시 5분]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선한 이들이 있다. 이들의 시선엔 남의 눈엔 좀처럼 닿지 않는 불편이 보인다. 마음이 쓰인다. 남들은 느끼지 않는 불편을 굳이 찾아 느끼고, 남들에겐 그려지지 않는 비극을 구태여 떠올린다. 그 다정하고 고마운 마음을, 그러나 때로는 피로하게 여긴 일도 없지가 않다.

알고 지내는 소설가가 있다. 어느 날인가. 그가 제 일터에서 개 한 마리를 입양해왔다고 했다. 본래 버려진 개였다고 했던가. 그 개에게 마음을 주고, 이름을 주고, 가족이 된 건 자연스런 일처럼도 보였다.

회사를 나오며 그 개를 제 집으로 데려왔다던 그다. 언젠가 한 번은 고대했던 약속이 개 때문에 깨지기도 했는데, 익숙지 않게 큰 개를 키우다가 줄에 걸려 넘어지며 뼈가 부러진 때문이라 했다. 곤란한 게 어디 그것뿐일까. 먹이고 씻기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을 나가야하는 일상의 수고로움부터 내키는 대로 나다닐 수 없는 문제까지 걸리는 게 한둘은 아니었을 테다. 말하자면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그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는 일이란 이야기다.

그가 최근 고민을 털어놨다. 듣자하니 기르는 개와 친해진 다른 개 한 마리가 생겼는데, 동네를 아무렇게나 다니는 들개라는 것이다. 개발된 지역과 논밭이 그대로 남은 지역이 뒤섞여 있는 그의 동네에서 들개가 뛰어다니는 곳은 비포장된 들판, 그중에서도 어느 과수원 일대를 마구 쏘다닌다고 했다. 소설가는 이따금 산책을 하며 만나는 들개와 제 개를 놓아두고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모양인지라 꽤나 마음이 붙은 듯도 했다. 그러나 어디 모두가 그러할까.

과수원 주인은 들개 때문에 적잖이 심난한 모양이다. 들개가 아무렇게나 오가는 통에 나무며 시설물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들개를 처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이야긴데, 작가는 그게 그렇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구청에 신고를 하고 관계단체가 나오면 들개가 그대로 잡혀 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질 운명이어서다. 그 뒤가 어떠한지를 아는 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그의 비극이, 제 반려동물의 친구가 마주할 운명이 제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묶인 < Dogs in the Sun >을 보며 위 작가의 고민이 떠오른 건 자연스런 일이다. 영화는 나라면 별 관심 없이 지나쳤을 풍경을 전혀 다른 시선에서 보여준다. 신동민 감독의 29분짜리 단편은 색이 빠진 흑백의 화면 위에 개들의 모습을 무심히 잡아낸다. 'Dogs in the Sun', 직역하자면 '태양 아래 개들'이란 얘기 그대로 햇빛 아래 있는 개들의 모습을 가만히 비춘다. 영화 속엔 사람이 없다. 개들만 있다. 묶인 개, 태양 아래 묶여 있는 개들이다.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윤리

 영화 < Dogs in the Sun > 스틸컷
영화 < Dogs in the Sun > 스틸컷JIFF

이번 영화제에 걸린 < 잠#2 >와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제임스 배닝의 < L. 코헨 >이 그러했듯, < Dogs in the Sun >은 한 자리에 가만히 카메라를 놓아두고서 특정한 장소를 가만히 비춘다.

다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곳을 비추는 두 영화와 달리 한 마리, 한 마리 씩 가만히 들여다본 뒤 다음으로 넘어간단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 Dogs in the Sun >은 < 잠#2 >며 < L. 코헨 >과 같은 시도를 수평적으로 이어붙인 작업일 뿐인가. 나는 그렇지가 않다고 본다. 독자적인 이야기, 겨냥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단 점에서 그러하다.

영화는 햇빛에 노출된 개들을 가만히 비춘다. 개들은 묶여 있고 피할 곳이 없다. 작열하는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르면 개들에게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개들이 견디는 시간 그대로를 관객 앞에 떼어다 옮겨놓음으로써 함께 견디도록 한다. 처음엔 영화의 의미를 알지도 못한 채 지루함을 느끼던 관객들이, 차츰 화면 속 개들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된다. 그 더위를, 그 지루함을, 그 고통을 말이다.

관객은 알게 된다. 제목의 'Sun'이 그저 태양이며 햇살 정도로 번역돼선 안 된다는 사실을. 영화는 '뙤약볕 아래 묶인 개들' 정도로 표현돼야 마땅하다. 갈수록 사라져가는 그늘을 따르다 마침내는 포기하고 견뎌내는 개들과 그들에게 머물러 닿지 않는 시선, 아예 오가는 이 없는 상황을 영화는 관객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저 하루 몇 번 밥을 줄 때 말고는 개의 입장을 들여다본 적 없는 인간의 무심함을 이 정적인 영화가 거세게 질타한다. 흑백으로, 뙤약볕의 맹렬함이 깎여나간 이 화면 안에서 개들의 고통이 도드라지는 건 왜일까.

< Dogs in the Sun > 속 개들의 고통이 그저 뙤약볕만은 아닐 테다. 줄에 묶인 개들은 인간이 편의적으로 허용한 꼭 그만큼의 세계 안에서 끝없는 시간을 버텨낸다. 온종일 찾는 이 없는 개의 모습을 비추던 카메라가 마침내 한 순간 회전할 때 관객은 비로소 깨닫는다. 변치 않는 닫힌 세계, 그 지루하고 단단한 프레임 속 비좁은 개의 삶을 말이다.

이 영화와 함께 '코리안시네마 단편5'로 묶여 상영된 <목인>의 김가을 프로듀서에게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김 PD는 "끔찍한 더위 아래, 목에 족쇄처럼 묶여있는 목줄 하나로 정해진 생활반경에서만 생활을 하는 강아지들이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인간의 이기심이 한심하다"면서 "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지켜보기만 해야 했을 감독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과연 그러하다. 더위와 감금, 감옥소 독방이나 다를 바 없는 환경 가운데 개를 묶어둔 채로 그 처지를 돌아본 일 없는 인간의 악의 없는 무심함을 이 영화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JIFF

불편함은 윤리의 씨앗일까

앞에 소개한 소설가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들개의 암담한 운명과 마주하여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말했다. 저로선 지금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관계 맺은 또 다른 개의 운명을 모른 척 하는 것도 괴롭다는 이야기다. 주변인에게 입양 의사를 묻고 관련단체를 수소문해보았으나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제가 더 입양할 수는 없겠다고 불편해 했다.

나는 그처럼 불편이 이는 마음이 곧 가능성이 되어주지 않는가를 생각한다. 들개를 제 삶 가운데 유의미한 것으로 들이고, 그 운명을 내다보고, 그 비극에 불편한 마음을 갖는 모습이 하나하나 선의 증거가 아닌가를 생각한다. 뙤약볕 아래 묶인 개를 보며 그저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 개가 견디는 시간과 외로움과 더위를 살피는 마음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대단히 지루한 영화 < Dogs in the Sun >의 가치는 적어도 관객이 느끼는 지루함만큼의 고통을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도록 권한다는 점에 있다. 정말이지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선한 이들의 시선을, 괴로운 이들의 처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인간을 마땅한 존재가 되도록 하는 길, 곧 윤리의 씨앗이라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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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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