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Dogs in the Sun > 스틸컷
JIFF
이번 영화제에 걸린 < 잠#2 >와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제임스 배닝의 < L. 코헨 >이 그러했듯, < Dogs in the Sun >은 한 자리에 가만히 카메라를 놓아두고서 특정한 장소를 가만히 비춘다.
다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곳을 비추는 두 영화와 달리 한 마리, 한 마리 씩 가만히 들여다본 뒤 다음으로 넘어간단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 Dogs in the Sun >은 < 잠#2 >며 < L. 코헨 >과 같은 시도를 수평적으로 이어붙인 작업일 뿐인가. 나는 그렇지가 않다고 본다. 독자적인 이야기, 겨냥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단 점에서 그러하다.
영화는 햇빛에 노출된 개들을 가만히 비춘다. 개들은 묶여 있고 피할 곳이 없다. 작열하는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르면 개들에게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개들이 견디는 시간 그대로를 관객 앞에 떼어다 옮겨놓음으로써 함께 견디도록 한다. 처음엔 영화의 의미를 알지도 못한 채 지루함을 느끼던 관객들이, 차츰 화면 속 개들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된다. 그 더위를, 그 지루함을, 그 고통을 말이다.
관객은 알게 된다. 제목의 'Sun'이 그저 태양이며 햇살 정도로 번역돼선 안 된다는 사실을. 영화는 '뙤약볕 아래 묶인 개들' 정도로 표현돼야 마땅하다. 갈수록 사라져가는 그늘을 따르다 마침내는 포기하고 견뎌내는 개들과 그들에게 머물러 닿지 않는 시선, 아예 오가는 이 없는 상황을 영화는 관객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저 하루 몇 번 밥을 줄 때 말고는 개의 입장을 들여다본 적 없는 인간의 무심함을 이 정적인 영화가 거세게 질타한다. 흑백으로, 뙤약볕의 맹렬함이 깎여나간 이 화면 안에서 개들의 고통이 도드라지는 건 왜일까.
< Dogs in the Sun > 속 개들의 고통이 그저 뙤약볕만은 아닐 테다. 줄에 묶인 개들은 인간이 편의적으로 허용한 꼭 그만큼의 세계 안에서 끝없는 시간을 버텨낸다. 온종일 찾는 이 없는 개의 모습을 비추던 카메라가 마침내 한 순간 회전할 때 관객은 비로소 깨닫는다. 변치 않는 닫힌 세계, 그 지루하고 단단한 프레임 속 비좁은 개의 삶을 말이다.
이 영화와 함께 '코리안시네마 단편5'로 묶여 상영된 <목인>의 김가을 프로듀서에게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김 PD는 "끔찍한 더위 아래, 목에 족쇄처럼 묶여있는 목줄 하나로 정해진 생활반경에서만 생활을 하는 강아지들이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인간의 이기심이 한심하다"면서 "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지켜보기만 해야 했을 감독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과연 그러하다. 더위와 감금, 감옥소 독방이나 다를 바 없는 환경 가운데 개를 묶어둔 채로 그 처지를 돌아본 일 없는 인간의 악의 없는 무심함을 이 영화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JIFF
불편함은 윤리의 씨앗일까
앞에 소개한 소설가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들개의 암담한 운명과 마주하여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말했다. 저로선 지금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관계 맺은 또 다른 개의 운명을 모른 척 하는 것도 괴롭다는 이야기다. 주변인에게 입양 의사를 묻고 관련단체를 수소문해보았으나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제가 더 입양할 수는 없겠다고 불편해 했다.
나는 그처럼 불편이 이는 마음이 곧 가능성이 되어주지 않는가를 생각한다. 들개를 제 삶 가운데 유의미한 것으로 들이고, 그 운명을 내다보고, 그 비극에 불편한 마음을 갖는 모습이 하나하나 선의 증거가 아닌가를 생각한다. 뙤약볕 아래 묶인 개를 보며 그저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 개가 견디는 시간과 외로움과 더위를 살피는 마음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대단히 지루한 영화 < Dogs in the Sun >의 가치는 적어도 관객이 느끼는 지루함만큼의 고통을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도록 권한다는 점에 있다. 정말이지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선한 이들의 시선을, 괴로운 이들의 처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인간을 마땅한 존재가 되도록 하는 길, 곧 윤리의 씨앗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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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