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제에서 느끼고 싶었던 걸 이 영화를 보고서 모두 충족했습니다."

라두 주데의 중편 다큐멘터리 < 잠#2 >를 보고난 한 관객의 평이다. 라두 주데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 콘티넨탈 '25 >의 감독으로, 영화제는 그의 작품 두 편을 가져와 서로 다른 섹션에서 상영했다. 앞서 '씨네만세'에서 적었듯, 그다지 큰 기대 없이 보았던 개막작은 그대로 올해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토록 지적인 작품을 나는 <기생충>·<슬픔의 삼각형> 등 세계 최고의 영화제를 휘어잡은 명작을 제하고선 몇 편 떠올릴 수 없는 터였다. 개인적으론 그보다도 큰 만족감이 있었다.

전주에서 반드시 소화해야 할 일정은 모두 마친 때였다. 주말 간 서울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으므로, 이번 영화제는 이쯤에서 마쳐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라두 주데의 또 다른 작품 하나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거다.

< 잠#2 >, 이번이 아니면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영화를 이대로 흘려보내는 게 마땅한 일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숙소에다 식비, 다시 내려오게 되면 불려 다닐 자리까지 생각하자면 여간 귀찮지 않았다. 이렇게 고민될 땐 나보다 먼저 겪은 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현명함이 아닌가. 앞의 한 문장은 그렇게 물은 질문으로부터 얻은 답이다.

잠#2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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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주, 가장 큰 발견

< 콘티넨탈 '25 >는 보기 드문 탁월한 작품이다. 지금껏 수천 편의 작품을 보며, 또 스스로도 나름의 창작을 하며 알게 된 바, 이런 작품은 결코 우연히 빚어지지 않는다. 라두 주데는 이 시대 보기 드문 역량을 지닌 재목이다. 그의 다른 작품이 있다면 아마도 뛰어날 것이다. 하물며 위와 같은 찬사를 받았다면야. 나는 서울에서의 굵직한 일거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전주에서의 나흘을 더하기로 결심했다. 여기까지가 < 잠#2 >에 얽힌 사연이다.

이제 와 말하자면 후회는 없다. 내가 본 것이 내가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감상을 물은 이가 '재밌다', '재미없다'와 같은 흔한 평 대신 '느끼고 싶었던 걸 모두 충족했다'와 같은 답을 내놓은 이유를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그가 아닌 나였대도 이와 비슷하게 답하지 않았을까.

< 잠#2 >는 굳이 따지자면 실험영화라 불러야 마땅하다. 실제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대신에 설치된 라이브캠에서 얻은 고정적 영상을 이어 붙여 영화로 만들었다. 지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제임스 배닝의 < L. 코헨 >처럼 한 자리에 가만히 놓아둔 카메라로 특정한 장소를 가만히 찍어냈단 점은 둘이 꼭 같다. 다른 점이라면 직접 놓아둔 카메라와 지구 반대편에서 조작하는 라이브캠으로 얻은 영상이란 점일까.

잠#2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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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의 묘를 비추는 카메라

한 가지 더 특이점이 있다. < 잠#2 >는 그저 아무런 장소를 찍은 것이 아니다. 라이브캠은 명확하게 누군가의 묘지를 겨냥한다. 카메라엔 두 개의 비석이 앞뒤로 놓였는데, 앞의 것은 'ANDY WARHOL', 뒤엔 'WARHOLA'라 적혔다. 그렇다. 앤디 워홀과 그 가족의 묘다.

영화는 봄·여름·가을·겨울, 한 해 동안 워홀의 묘지를 찾은 참배객의 모습을 담는다. 아마도 지구 반대편 루마니아의 작업실에서 이를 지켜봤을 라두 주데는 촬영날짜와 시간이 적힌 라이브캠 화면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놓았다. 마치 이것이 워홀이 살았을 적 내놓은 작품에 대한 응수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흥미로운 건 참배객들의 모습이다. 각양각색, 저마다의 방식으로 워홀을 추모하는 게 과연 괴짜 예술가의 팬들답다 싶다. 평범하게 묘비를 찍고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까 보이고, 또 다른 누구는 묘비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밤이면 사슴이 찾아와 묘비 근처를 거닐고, 묘지 앞이 허전하여 꽃을 심어두는 이들도 있다. 워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캠벨수프캔 연작을 기념하는 것인 듯, 작품 속 수프캔을 사와선 묘비 위에 두고 가는 이들도 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마침내는 넷이 되는 동안, 봄은 여름이 되고, 다시 가을이 되었다가 겨울을 맞이한다. 32개 연작을 모두 모아 한 세트로 구성한 미술관은 워홀 사후 이를 170억 원이 넘는 돈에 팔아 쏠쏠한 이득을 챙겼다던데, 죽어 묻힌 워홀에겐 관심 없는 이야기일 테다.

잠#2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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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이 멋진 이유

< 잠#2 >는 그 제목이 드러내는 대로 워홀의 두 번째이자 영원한 잠듦이다. "살아있는 것이 멋진 이유는 죽기 때문"이라는 워홀의 말로 시작한 영화는 죽음으로 완성된 그의 삶 너머를 진득하게 관찰한다.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작품이 된 양 집요하게 응시하는 시선 가운데 하나둘 드러나는 워홀스러운 팬들의 등장이 흥미를 자아낸다. < L. 코헨 >의 실험을 나는 실패했다 보았는데, 그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 잠#2 >의 선택을 성공이라 할 밖에 없는 것은 카메라 앞을 무던히도 드나드는 워홀스러운 팬과 역시 워홀스러운 감독의 워홀스러운 방식의 만남 때문이 아닌지. 실제로도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몇 차례의 기대와 몇 차례의 실망, 또 몇 차례의 즐거움을 얻었으니 영화가 제 의도만큼 관객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작품의 제목은 워홀이 제 애인의 잠든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낸 영화 <잠>으로부터 가져온 것처럼도 보인다. 가장 친밀한 것을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촬영한 영화와 아마도 만나본 적 없는 이를 원격이란 말로는 부족한 거리에서 낯설게 응시한 작품으로 이어받는 것, 마치 어느 무협지 속 일류 고수들의 맞춤 대련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실험영화란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취향을 타는 법이다. 이를 좋게 본 관객만큼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전북전주영화모임방 운영진 조성민씨도 그중 하나다. 조씨는 "< 잠#2 >는 앤디 워홀의 <잠>(1963)에 대한 오마주로 기획된 영화로 실험적 성격이 무척 강하다"면서 "워홀의 무덤을 1년간 라이브캠으로 실시간 촬영한 영상을 조합하여 만든 데스크톱 다큐멘터리로 단순한 정적 화면의 반복이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단조로운 전개가 예술적 명상으로 다가오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감시와 관음증적 시선을 탐구하려 했던 듯한데,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무덤 앞에서 계절의 변화, 방문객들의 행동, 자연의 소소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방식은 워홀의 팝아트적 정신을 연상케 한다"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반복을 넘어선 미학적 또는 서사적 의미로 확장되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쯤이면 몹시 궁금해진다. 영화를 본 또 다른 관객들은 만족스런 감상을 얻었을까 아니면 조씨처럼 못마땅한 감정을 느꼈을까. 나는 모처럼 양쪽 모두를 이해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어쩌면 라두 주데도 틀림없이 그러했으리라고, 워홀을 바라보던 주데의 표정을 지어본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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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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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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