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봄과 여름이 만나는 분기점이다. 대학 축제를 열기에도 가장 안성맞춤인 시절이다. 다른 나라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한국 대학 축제만의 풍경이 있다면, 저명한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이 축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일 테다.

올해, 그 무대 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단연 밴드다. 물론 에스파, 아이브 등의 아이돌 그룹이나 빈지노, 다이나믹 듀오 등 대형 래퍼들의 아성도 건재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밴드 음악이 대학 축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MR을 틀고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와 베이스, 드럼, 앰프를 필요로 하는 밴드 음악이다.

대학 축제 라인업 살펴보니...

 전국 대학 축제 무대를 순회 중인 YB.
전국 대학 축제 무대를 순회 중인 YB.윤도현 인스타그램

5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연세대학교 무학대동제의 라인업은 최근의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적·장기하·십센치·실리카겔·카더가든·이승윤·스텔라장·소수빈·정세운·윤마치·리도어 등 페스티벌과 다름없는 라인업으로 화제가 되었다. 출연 아티스트 대부분이 밴드이거나 밴드 기반의 싱어송라이터들이다.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일감호축전'에서는 잔나비와 YB가 무대에 올랐고,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900만 명을 돌파하며 가장 '글로벌한' 한국 밴드로 주목받는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도 캠퍼스를 찾았다. 중앙대학교에서는 졸업생 출신인 쏜애플의 프론트맨 윤성현이 학교 잠바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홍익대학교 축제에서는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에 빛나는 이승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객의 술잔을 들었다. 유다빈밴드, 심아일랜드 등 신예 밴드들도 다양한 캠퍼스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고려대학교 역시 석탑대동제 첫날 라인업을 밴드·인디 뮤지션 중심으로 구성했다. 현재 대학생들에게 있어 아버지뻘인 밴드 역시 축제 무대를 수놓는다. 최근 헤비메탈 앨범을 발표한 베테랑 밴드 YB는 전국 대학 축제 무대를 순회 중이다. 순천향대·성균관대·서경대·한남대 등에서 YB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한때 엠넷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최고 전성기를 누릴 때, 전국의 대학 축제는 래퍼들로 가득 찼다. 일부 인기 밴드를 제외하면 밴드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JYP 출신의 밴드 데이식스는 2015년 데뷔 이후 10년 차에 최전성기를 맞았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HAPPY', 'Welcome To The Show', '녹아내려요' 등의 노래가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크리에이터 김계란이 기획한 QWER 역시 논란이 무색하게 갈수록 더 주가를 높이고 있다. Z세대는 밴드 음악에 전혀 낯설지 않다. 팬데믹 시절 시작된 팝펑크 리바이벌,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20세기 록,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 등에 삽입된 음악 등 다양한 경로가 이들을 밴드 음악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들은 밴드 음악을 '힙한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청춘의 감성을 노래하는 한로로, 유다빈 밴드 같은 아티스트들의 급부상 역시 록을 동세대의 음악으로 여겨지게 하는 데에 공헌했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밴드 붐의 주역이다. 대중적인 음악이라 보기 어려운 실리카겔 역시 실험적인 싸이키델릭과 비쥬얼 아트 등을 결합시키면서 밴드씬의 파이를 확장했다. 'No Pain'과 'Tik Tak Tok'은 록 페스티벌 관객들을 하나로 묶는 송가가 되었다.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고등학교 밴드부 학생들의 영상에서는 실리카겔의 노래를 여러 차례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대학교에 진학하고, 축제 현장에서 밴드에 열광하는 관객이 된다.

유튜브 '머니 코드'에 출연한 싱어송라이터 자이언티는 "주체성 있는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가장 라이브한 형태인 '밴드 음악'에 쏠리게 했다"고 말했다. 차트에 있는 음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음악 팬들이 힙합 대신 밴드 음악을 돌파구로 삼았다. 축제 문화의 변화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지금과 같은 축제의 모습이 한철의 정점일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대중 가요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밴드가 축제 라인업을 채우는 것에 대한 볼멘소리도 작게나마 들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최소한 2025년의 축제에서, 밴드는 과거의 산물이 아닌 현재 시제 그 자체다.

 19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19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연합뉴스


대학축제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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