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누워있을 때>의 한 장면.
시네마달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명백하게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질타를 받고 차별을 받는 상황을 두고 혐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여기 철저하게 누군가의 혐오의 대상이 됐던 세 여성이 있다. 사내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동급생 친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는 이유로, 혹은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후 끝내 사산하게 됐다는 이유로 말이다.
영화 <내가 누워있을 때>는 그간 끈질기게 위기에 몰린 여성들을 다뤄온 최정문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그가 영화에서 다루는 선아(정지인), 지수(오우리), 보미(박보림)는 각각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처절하게 차별받거나 미움받는 존재들이다.
이런 세 사람이 모이게 됐다. 일찌감치 부모를 여읜 지수는 사촌 언니인 선아의 집에서 살고 있다. 지수의 절친한 친구 보미는 지수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가는 여정에 직접 차를 몰게 되고, 그 여정에 선아까지 동참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보미의 차가 고장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사산 이후 환청·환각에 시달리는 보미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내고, 시골 카센터의 두 남성은 바가지를 씌우기 위해 온갖 수를 부린다. 결국 차를 맡겨놓고 마을 여관에 머물게 된 세 사람은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된다.
감독은 세 사람이 공통으로 처한 상황에 각 개인의 과거사를 교차 편집하는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전달한다. 사고 원인을 두고 서로 옥신각신하거나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는 선아와 지수는 미처 몰랐던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보미 또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면서 점차 세 여성이 연대로 나아가는 흐름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묘한 동질감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다. 선아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직원이지만 동시에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에 시달리며, 퇴사 위기에 처한다. 지수는 고교생 시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달은 뒤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야 했고, 이윽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보미 또한 과거 사산의 경험에 갇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다가, 지수와 선아를 통해 모종의 결심을 한다.
각자의 개별 경험이고 결코 평범한 일들이 아니지만 관객 입장에서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소재와 상황만 달리했을 뿐 결국 약자 혹은 여성에게 쏟아지는 편견과 차별, 혐오의 시선이 본질이어서다. 그게 얼마나 큰 중력인지를 영화는 세 인물이 서로를 비난하는 과정으로 묘사해놨다. 상처가 있는 이들 스스로도 서로에게 말로 비수를 꽂을 정도로 내재화된 혐오의 정서가 곧 우리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바라보는 거울로 이 영화에서 작용한다.
영화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그 맥락이다. 여성이라서 무조건 지지받고 연대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상처를 직면하고 처절하게 마주한 뒤에야 주변을 보듬게 되는 깨달음의 과정이 세심하게 묘사돼 있다. 성별을 잠시 지워보면, 우리 주변에 가려져 있는 약자들의 면면이 떠오른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례들을 우린 너무도 많이 봐오고 있다.
예리한 시각을 견지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신예 감독의 다음 또한 기대된다. 또한 이 영화는 나이 서른에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가수 박보람의 배우 데뷔작이기도 하다.
한줄평: 개인의 경험에서 공통의 상처를 꺼내 보이는 예리함
평점: ★★★☆(3.5/5)
영화 <내가 누워있을 때> 관련 정보 |
영제: When I Sleep
연출: 최정문
출연: 정지인, 오우리, 박보람
배급 및 제작: 시네마 달
공동제작: 무니필름
상영 시간: 116분
관람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5년 5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