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련 배우
이봉련 배우에이엠엔터테인먼트

tvN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하 언슬전)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다. 의사를 꿈꾸는 전공의 1년 차 4인방의 성장통과 생과 사를 넘나드는 병원생활을 담고 있다.

지난 20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봉련을 만났다. 이봉련은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교수 서정민으로 분했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권 변호사, <폭싹 속았수다>의 간호사 등 전문직을 맡아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또박또박 전문용어를 말하는 딕션 때문에 짧은 분량에도 각인됐다.

<언슬전>에서는 레지던트가 닮고 싶은 롤모델이자 '마귀할멈'이란 별명처럼 이중적인 면모를 보일 뿐만 아니라, 공과 사를 깔끔하게 선 긋는 훌륭한 의사로 시청자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봉련은 인터뷰 중 "정치·사회·문화부 등 언론계 종사자에 도전해 보고 싶다. 모르는 세계를 공부하는 데 관심이 많은데 배우가 그게 가능한 직업이다. 꼭 내 역할이 아니더라도 대본으로 모르는 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 되도록 안 가본 길을 가봐고 싶다. 또 욕심이 생긴다"라며 또 다른 전문직 변신을 기대하게 했다.

다음은 배우 이봉련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참스승 내리사랑

- 열심히 만든 드라마가 전공의 파업 이슈로 1년간 방송이 보류됐다. 그때 심경은 어땠나.
"촬영 막바지였는데 우린 우리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 잘 보냈는데 저는 무대 공연도 하고 바삐 지냈는데 방송 날짜가 잡혔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삼삼오오 모여서 시청자의 반응도 예상해 보고 그랬다. 조심스러웠지만 부디 4회까지만 봐주시고 판단해 주길 바랐다. 청춘 드라마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그 정도 보셨다면 다음 이야기를 지켜봐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제는 그 걱정을 언제 했나 싶을 정도로 종영하게 돼 기쁘다. 시청률도 잘 나와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 신원호 크리에이터와 2013년 드라마 < 응답하라 1994 >를 함께 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성나정(고아라)이 엠티 갈 때 잠시 나왔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감독님을 많이 뵙지 못해서 절 기억할지 몰랐다. <언슬전> 오디션을 볼 때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신원호 감독님 있었다. 기억해 주시냐 물었는데 '당연하다'는 말을 들었다. 떨렸지만 반갑게 알아봐 주셨고 대화를 해가면서 오디션을 봤다. 저를 계속 배역 안에 놓고 봐준 것 같아서 기분 좋았다."

- 연기를 하다 보면 본인의 실제 성격에서 캐릭터를 완성하게 된다. 서정민을 빌드업하는 데 본인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건가.
"의학 쪽은 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일상도 저랑은 너무 달라서 50% 정도다(웃음). 서정민은 의사로서 꼼꼼함이 남다른 친구다. 저도 일할 때는 제 몫을 챙겨가며 꼼꼼하게 하려는 스타일이고 피곤할 정도로 잘 챙기거나 예민한 점이 비슷한 것 같다. 서정민은 대본으로 만났을 때도 멋지다고 생각했고 남달랐던 캐릭터다. 저도 서정민 같은 선배를 만나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서정민 같은 사람이고 싶다."

- 아기를 만나고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행동은 애드리브인가.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선생님이 실제 계셨고 그분의 언어다. 애드리브 같지만 대본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단 한마디의 애드리브도 없었고, 하고 싶어도 잘 몰라서 못 할 정도로 꽉 찬 대본이라 애드리브가 필요가 없었다."

- 의학 용어나 수술 장면도 대사 외에 배우고 익혀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였겠다.
"서정민은 촉망을 넘어선 훌륭한 의료진 중 하나이고 노련한 사람이어야 하니, 당연히 의료 자문 선생님이 있었다. 집요하게 이야기하고 체크하고 확인받고 그랬다. 의사 생활이나 수업하는 모습도 익히기 위해 참관 신청도 했었다. 수술 장면도 이틀씩 찍고 그랬는데, 오래 찍어서 쓸 수 있는 장면이 많지 않았나 싶다."

- 서정민은 오이영(고윤정)의 재능을 알아봤다. 특별히 오이영을 애제자로 삼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어쨌든 의사가 될 사람이고 손기술은 늘게 돼 있다. 하지만 챙기려는 마음 씀씀이는 타고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 거다. 서정민은 인간적인 면모를 잘 알아채고 아낌없이 좋은 점을 이야기해 줄 어른이다. 오이영이 의사로서 계속 지속할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사람이자 참스승인 거다. 오이영의 성정을 알아채고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같이 부딪히면서 자기랑 비슷한 성향임을 알아봤을 것 같다. 대본을 읽다 보면 비슷한 성향의 교수와 주니어끼리 짝지어 놓은 게 보인다. 그걸 캐치하는 게 드라마적인 재미 중 하나다."

- 연장 질문이다. 명은원(김혜인)의 논문 강탈도 아는 눈치다. 교수 임용 결정권자로서 응징하는 모습도 통쾌함을 이끌어 냈다.
"명은원의 훌륭한 능력은 인정하지만 치사한 면이 드러나니까,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도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현장 의견을 취합한 거다. 저도 젠틀하다고 좋아 보였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귀감이 될 사람이라면 비난을 위한 비난을 일삼는 사람은 교수로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완성형이 아닌 성장형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tvN

- 캐릭터 스펙트럼도 넓고, 무대와 카메라를 넘나드는 톤 조절도 탁월한데 노하우가 궁금하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매체 활동보다 무대를 중심으로 연기했고 둘을 다르게 느꼈다. 일단 기술적인 부분이 다르다. 무대는 관객을 모시고 하고, 매체는 카메라를 보면서 연기하기 때문에 소리 전달도 달라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계를 갖지 않으려고, 생각 자체를 지우는 게 도움됐다. 매체가 달라도 연기는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차이만 맞출 습득된 노하우가 있다면 배우로서 하는 일은 같다는 열린 생각을 갖게 됐다. 호환이 잘 되는 배우로 평가해 주셔서 감사하다(웃음)."

- 주연·조연할 것 없이 케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도 따른다. 스스로 생각하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옆에 있을 법한 인물, 어디서 봤을 것 같은 외모가 제 장점 같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배우 한다고 수술이라도 받지 않을까 겁을 내셨다. 늘 '네가 타고난 것을 가지고 네 걸로 배우를 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셨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배우로서 저를 알아봐 주신 거 같고 통찰력 있는 말씀인 것 같았다. 사실 사진 공부를 오래 했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는데 사람 앞에 서는 일을 한다니까 의아해하셨다. 섣부르고 경솔한 선택처럼 보이니까 걱정하셨다."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는데 갑자기 연기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쭉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사람이 뭘 하게 될지는 모르는 것 같다(웃음). 사진을 오래 공부했다. 대학원 수료 과정이었는데 경제적인 부분과 직업적인 부분을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이라 사진작가로는 답이 안 나왔다. 무료하고 시간도 많이 남아서 동네 사회교육원에서 연기를 배우게 됐는데 대학로에서 데뷔하게 됐다. 저도 이렇게 오래 연기할지 몰랐다. 모든 일에는 고통이 따르잖냐. 그 고통을 감수할 만큼 좋으면 좋아하는 그 일을 하는 게 되는 거다. 그게 저에게는 '연기'였다."

- 사진을 전공했던 게 연기에 영향을 주기도 했나.
"학교에서 기록사진을 전공했다. 기록하고 쌓아 두고 직업군을 나열하는 작업인데 배우도 관찰하고 쌓아 놓는 직업이라 공통분모가 있다. 사진 할 때 생긴 습관이 연기에 도움이 됐다. 배우 중에 연출을 겸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우유부단해서 꿈도 꾸지 않는다. 사진 할 때 연출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선택하는 게 힘들었다. 저는 배우의 포지션이 맞는 것 같다(웃음)."

- 20년 동안 연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은 뭘까.
"관객이 제 연기에 박수 쳐주고 재미있었다고, 스트레스 풀렸다고, 코멘트해 주는 게 힘이 되더라.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직업적 소명을 알게 됐고, 책임감도 커졌다. 결국 봐주는 관객·시청자가 없으면 연기에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배우는 혼자 하는 게 아님을 깨달으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협업의 중요성도 느꼈다. 그게 제 원동력이 아닐까(웃음)."

- 1년 차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드라마다. 배우로서 <언슬전>을 통해 성장한 부분,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현장에서 전공의 1년 차들과 만나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잘 모를 거다. 선배, 누나, 언니로서 조언을 해주길 바라겠지만 오히려 제가 조언을 구한 적도 있었다. 조언보다 고민이 저에게도 이어지고, 똑같다는 말, 고민이 계속된다는 건 배우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고민이 중단되고 해소된다면 배우로서 고민도 끝나는 거다. 언젠가 저도 막히면 물어보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햄릿>을 한 지가 벌써 몇 년 전인데 아직도 이슈가 떠나지 않는다. <햄릿>은 저에게 좌절도 주고, 여성 햄릿이라고 의아한 시선과 의심도 받았다. 나중에는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칠까 봐, 스스로 한계점에 도달할까 봐, 걱정하기까지 했다. 그런 것마저도 헤쳐 나가면서 다시 공연을 하는 우여곡절을 지나 지금은 조금 큰 것 같다.

공연이나 드라마나 끝났다고 끝이 아니라는 게,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라는 게 삶과 닮아있다. 드라마가 사랑받으면 캐릭터도 사랑받는데 다음번에 만나는 캐릭터도 공들여 준비해야겠다는 부담과 압박이 든다. 당장 성장치가 보이지 않더라도 성장의 자양분은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언슬전>을 통해 얻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믿고 보는 배우'란 말을 얻고 싶다. 그 말인즉슨, 드라마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새로운 인물을 탐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 흐름 안에 흘러가는 것도 배우의 몫인 거다. 잘 아는 배우가 나온다는 안정감, 믿음을 주는 배우이길 원하면서도 안정감은 때론 본인을 도태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걸 원하면서도 경계해야 할 양가적인 감정이다. 좋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캐릭터를 만나 많이 알아봐 주시는 게 좋기도 하지만, 낯섦이 주는 장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숙제이고 숙명이다.

그렇다고 배우가 항상 변할 수만은 없다. 그래도 주변과 이야기가 바뀌니까 그 힘을 받아서 다른 인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해볼 만한 것 같다. 당장은 이 인기를 좀 즐기고(웃음), 다시 낯선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이봉련 배우
이봉련 배우에이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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