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
tvN
- 캐릭터 스펙트럼도 넓고, 무대와 카메라를 넘나드는 톤 조절도 탁월한데 노하우가 궁금하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매체 활동보다 무대를 중심으로 연기했고 둘을 다르게 느꼈다. 일단 기술적인 부분이 다르다. 무대는 관객을 모시고 하고, 매체는 카메라를 보면서 연기하기 때문에 소리 전달도 달라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계를 갖지 않으려고, 생각 자체를 지우는 게 도움됐다. 매체가 달라도 연기는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차이만 맞출 습득된 노하우가 있다면 배우로서 하는 일은 같다는 열린 생각을 갖게 됐다. 호환이 잘 되는 배우로 평가해 주셔서 감사하다(웃음)."
- 주연·조연할 것 없이 케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도 따른다. 스스로 생각하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옆에 있을 법한 인물, 어디서 봤을 것 같은 외모가 제 장점 같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배우 한다고 수술이라도 받지 않을까 겁을 내셨다. 늘 '네가 타고난 것을 가지고 네 걸로 배우를 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셨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배우로서 저를 알아봐 주신 거 같고 통찰력 있는 말씀인 것 같았다. 사실 사진 공부를 오래 했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는데 사람 앞에 서는 일을 한다니까 의아해하셨다. 섣부르고 경솔한 선택처럼 보이니까 걱정하셨다."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는데 갑자기 연기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쭉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사람이 뭘 하게 될지는 모르는 것 같다(웃음). 사진을 오래 공부했다. 대학원 수료 과정이었는데 경제적인 부분과 직업적인 부분을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이라 사진작가로는 답이 안 나왔다. 무료하고 시간도 많이 남아서 동네 사회교육원에서 연기를 배우게 됐는데 대학로에서 데뷔하게 됐다. 저도 이렇게 오래 연기할지 몰랐다. 모든 일에는 고통이 따르잖냐. 그 고통을 감수할 만큼 좋으면 좋아하는 그 일을 하는 게 되는 거다. 그게 저에게는 '연기'였다."
- 사진을 전공했던 게 연기에 영향을 주기도 했나.
"학교에서 기록사진을 전공했다. 기록하고 쌓아 두고 직업군을 나열하는 작업인데 배우도 관찰하고 쌓아 놓는 직업이라 공통분모가 있다. 사진 할 때 생긴 습관이 연기에 도움이 됐다. 배우 중에 연출을 겸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우유부단해서 꿈도 꾸지 않는다. 사진 할 때 연출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선택하는 게 힘들었다. 저는 배우의 포지션이 맞는 것 같다(웃음)."
- 20년 동안 연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은 뭘까.
"관객이 제 연기에 박수 쳐주고 재미있었다고, 스트레스 풀렸다고, 코멘트해 주는 게 힘이 되더라.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직업적 소명을 알게 됐고, 책임감도 커졌다. 결국 봐주는 관객·시청자가 없으면 연기에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배우는 혼자 하는 게 아님을 깨달으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협업의 중요성도 느꼈다. 그게 제 원동력이 아닐까(웃음)."
- 1년 차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드라마다. 배우로서 <언슬전>을 통해 성장한 부분,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현장에서 전공의 1년 차들과 만나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잘 모를 거다. 선배, 누나, 언니로서 조언을 해주길 바라겠지만 오히려 제가 조언을 구한 적도 있었다. 조언보다 고민이 저에게도 이어지고, 똑같다는 말, 고민이 계속된다는 건 배우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고민이 중단되고 해소된다면 배우로서 고민도 끝나는 거다. 언젠가 저도 막히면 물어보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햄릿>을 한 지가 벌써 몇 년 전인데 아직도 이슈가 떠나지 않는다. <햄릿>은 저에게 좌절도 주고, 여성 햄릿이라고 의아한 시선과 의심도 받았다. 나중에는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칠까 봐, 스스로 한계점에 도달할까 봐, 걱정하기까지 했다. 그런 것마저도 헤쳐 나가면서 다시 공연을 하는 우여곡절을 지나 지금은 조금 큰 것 같다.
공연이나 드라마나 끝났다고 끝이 아니라는 게,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라는 게 삶과 닮아있다. 드라마가 사랑받으면 캐릭터도 사랑받는데 다음번에 만나는 캐릭터도 공들여 준비해야겠다는 부담과 압박이 든다. 당장 성장치가 보이지 않더라도 성장의 자양분은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언슬전>을 통해 얻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믿고 보는 배우'란 말을 얻고 싶다. 그 말인즉슨, 드라마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새로운 인물을 탐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 흐름 안에 흘러가는 것도 배우의 몫인 거다. 잘 아는 배우가 나온다는 안정감, 믿음을 주는 배우이길 원하면서도 안정감은 때론 본인을 도태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걸 원하면서도 경계해야 할 양가적인 감정이다. 좋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캐릭터를 만나 많이 알아봐 주시는 게 좋기도 하지만, 낯섦이 주는 장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숙제이고 숙명이다.
그렇다고 배우가 항상 변할 수만은 없다. 그래도 주변과 이야기가 바뀌니까 그 힘을 받아서 다른 인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해볼 만한 것 같다. 당장은 이 인기를 좀 즐기고(웃음), 다시 낯선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이봉련 배우에이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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