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
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JIFF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 중 아픈 이를 간병하는 청년, 이른바 영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년)는 이제는 더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가 70대에 접어들며 고작 한둘에 불과한 이들의 자제가 아픈 부모의 간병을 떠맡는 일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때문이다. 관련된 언론보도며 책 출판 등이 이어진 가운데, 가족을 간병하는 청년들의 고립과 심리적 불안,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서서히 이뤄지는 추세다.

과거 그저 효자·효부란 도덕적 인식의 틀 아래서, 마땅히 집안 자식이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고 여기던 때가 길었다. 그러나 도덕은 도덕일 뿐, 사회적 지원 없이 개인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일이 어찌 당연하다 하겠는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간병의 부담 앞에 무너지는 청년들이 허다하다. 그러고도 이들은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했단 부담에 짓이겨지기 일쑤니, 그는 그대로 얼마나 폭력적인가.

간병 책임은 오로지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인가. 국가가 그 책임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상 깊게 읽은 적 있는 송명환 박사의 '헌법상 보건권 실현을 위한 사회보장법제 및 보건의료법제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는 이 같은 물음 앞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진다. 논문은 2021년 발생한 한 사건으로부터 문을 연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간병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방치해 숨지게 한 22살 대학생 청년의 사례로, 부작위존속살해로 4년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논문은 수많은 간병살인을 언급한다. 2006년부터 10여 년 간 총 154명에 이르는 간병살인이 있었다는 이야기, 이중 상당수가 주변에서 효자며 효녀라는 평가를 받던 이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내용이다. 논지는 자연히 간병이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만 하는 것이며, 법제도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옮겨간다.

한국영화가 간병에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영화란 결국 시대와 사회, 그 위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 시대 한국사회 사람이 마주하는 모든 문제가 영화의 관심이 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영화 가운데선 지난 몇 년 간 간병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나마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추세다. 아직 주류 상업영화에선 뚜렷한 흐름을 발견하기 어려우나 독립영화에선 적잖은 작품들을 마주한다. 지난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공식 초청된 장재우 감독의 <소용돌이>도 그와 같은 영화였다(관련기사: 간병에 지친 청년, 괴물로 변한 엄마 https://omn.kr/28ozu).

'씨네만세 721'회차로 다룬 이 영화평이 제법 널리 읽혀 비슷한 사정에 놓인 청년과 청년 간병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제법 많은 연락을 받기도 했다. 여전히 이러한 문제를 다룬 기사며 작품이 적다는 방증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한국영화 안으로 들어온 간병

 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
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JIFF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올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선 간병 문제를 다룬 작품이 지난해보다 한층 더 많고 선명해졌다. 이번 영화제에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돼 활동한 배우 겸 감독 이정현의 <꽃놀이 간다>도 가족 간병에 따른 문제를 독특하게 풀어냈다.

28분짜리 영화는 이정현의 연출 데뷔작으로, 그녀가 직접 주연까지 맡아 흡인력 있게 끌고 가는 작품이다.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정식 초청된 영화는 가족 간병의 처절한 현실을 인상적인 캐릭터와 버무려 펼쳐냈다.

주인공 수미(이정현 분)는 엄마(김봉희 분)와 단 둘이 사는 젊은 여성이다. 말이 둘이 사는 거지, 지금은 둘 모두 건강이 좋지 못해 병원에 입원 중이다. 수미야 그래도 거동이 가능하지만 엄마는 사실상 혼수상태, 의식이 없다. 쾌차할 수 있다는 뚜렷한 희망도 없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비만 천정부지로 불어나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의 중간정산이 코앞에 다가오자 수미는 엄마를 데리고 퇴원하기로 결심한다.

말이 퇴원이지 탈출이나 다름없다. 엄마의 병은 병원 밖에선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중한 것이고, 처방이 필요한 약품까지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밀린 입원비를 낼 방도도 마땅찮은데 병원의 퇴원허가까지 받는단 게 보통 각오론 되지 않는 일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해야 하는 일, 수미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원맨쇼를 감행한다. 난동에 가까운 소동을 벌인 끝에야 병원은 겨우 수미를 놓아준다. 모든 책임을 수미가 진다는 각서에 사인을 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수미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수미가 원한 일이기만 할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고, 엄마를 죽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는 수미에게 앞으로 펼쳐지는 일은 도저히 보통 사람들이 감당키 어려운 것들뿐이다.

수미가 처한 상황은 결코 이례적이지만은 않다. 수미는 기초수급자와 같은 복지에서 모두 제외된다. 평가액이 제법 나오는 집이 수미 앞으로 있는 때문이다. 말이 평가액이 나오는 집이지 실상은 도무지 팔리지 않는 부동산으로, 병원비 때문에 내어놓은 지가 벌써 한참이지만 물어오는 이가 아무도 없을 정도다.

수미는 결국 홀로 모든 부담을 감당해야만 하는데, 아픈 엄마를 두고 일을 나간다거나 할 엄두를 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간병인을 쓰자니 그 돈은 또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수미의 고충은 가족 중 누구 한 명 아프면 그대로 몰락할 우려에 처한 우리네 수많은 장삼이사들의 그것과 얼마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간병, 개인의 몫으로 남겨둬도 좋은가

앞서 소개한 송명환 박사의 논문 가운데 수많은 간병살인이 있었다 했다. 확인된 것만 10여 년 간 150여 건, 온 힘을 다해 제 가족을 간병하다 마침내는 살인에 이른 이들의 기록이다. 사회는 그들을 제 때 구조하지 못했다. 손을 내밀지 못하여 효자고 효부였던 이들이 살인자가 되도록 방치했다. 수미의 이야기가 그와 얼마나 다른가를 떠올려보면, 영화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디 간병살인 뿐일까. 나는 기자시절 병원비 쌓이는 병동 앞에서 제 아버지며 어머니가 어서 숨을 멈추기만 바랐다던 이들을 적잖이 만났었다. 예상과 달리 길어지는 연명치료를 제때 그치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고통 받는지를 보다보면 인간성이며 도덕이란 말로는 지탱되지 않는 인간의 또 다른 단면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수미는 온 힘을 다해 엄마를 지탱하려 든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몰락의 속도가 빨라지는 건 어찌할 수 없다. '꽃놀이'라는 희망과 '기도'라는 기둥이 하나하나 박살나는 와중에 사회와 국가, 공공의 영역이 보이지 않는단 건 차라리 현실적이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엔 <꽃놀이 간다> 말고도 가족 간병 문제를 다룬 또 다른 작품이 자리했다. 올해 한국단편경쟁 대상을 받은 <겨우살이>가 바로 그 작품으로, 가족돌봄청년이 처한 위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어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소용돌이>가 장르적으로 포착했던 간병문제를 올해 한국영화가 보다 정면에서 진득하게 응시한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한국영화가 한국사회의 문제에 기민하진 못해도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JI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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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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