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영화라고들 한다. 통상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저만의 스타일을 실험하는 일련의 작품군을 통칭하여 실험영화라고 부른다. 실험이니만큼 개별 작품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그건 그대로 더는 실험일 수 없지 않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매체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세, 오로지 그것만이 실험영화를 묶는 희미한 끈이 된다.

실험영화에 명확한 적, 타도의 대상이 있는 건 아닐 테다. 통상은 실험의 필요도, 여지도 얼마 되지 않는 기성영화, 즉 일반적 극영화며 그 하위분류인 장르영화가 반대된다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영화라고 하여 실험영화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실험영화엔 기준과 경계조차 모호하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흔히 실험영화는 낯설고 불편하다. 주어진 길을 가지 않고 구태여 어려운 길을 걷는 때문이다. 훤히 난 등산로 대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꼴이니 어찌 편할 수가 있을까.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거라면 차라리 괜찮겠다. 태반은 정상에 오르겠다고 땅을 파고 들어가거나, 나무를 골라 오르는 식이다.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 스틸컷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스틸컷JIFF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

실험영화는 경계를 넘나든다. 흔히 영화라 불리는 매체의 경계까지 나아가 그것이 더 넓어질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가능치 않다면 실패한 실험이 되겠으나, 실험이란 본래 실패까지도 껴안는 게 아니냐 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다고, 성공한 실험이 수백, 수천의 실패한 실험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말하자면 실험영화는 그 방식이 같아서 동류로 묶이는 게 아니다. 너의 실패조차 나의 실험을 지탱한다는 자세, 그것이 실험영화를 하나로 묶어내는 주된 가치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공모엔 역대 최다편수가 몰려들었다 했다. 무려 1510편, 이중 고작 30편이 선정됐으니 채 2%가 살아남지 못한 꼴이다. 98%가 넘는 작품, 무려 1480편이 고배를 마셨다. 한국단편경쟁에 든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은 그 높은 문턱을 넘어 경쟁의 자격을 얻은 작품이다. '한국단편경쟁 4'로 묶여 상영된 영화는 '대안'과 '독립'을 기치로 든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격에 꼭 맞는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 스틸컷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스틸컷JIFF

영상예술과 미술, 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1997년생 젊은 감독 송시영의 19분짜리 단편은 그 자체로 영화라기보단 미술관 영상예술 작품이 더 어울리단 인상을 안긴다. 학교에 가는 학생들과 흔히 국민체조라 알려진 체조를 하는 사람들, 영화와 국가, 신체며 기억의 모호한 접점과 경계까지를 혼란스럽게 오간다.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초월적이며 시적이라 불러야 적합할 테다. 흐르는 영화를 자연스레 따르는 방법으로는 작가가 관객을 데려가려 의도하는 귀착지까지 도달할 수 없을 듯 보인다. 어쩌면 관객을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의도조차 있는 것인지가 불명확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불명확함 가운데 작품이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체조의 짤막한 역사라 해도 좋을 서술이며 그것이 초입의 등교하는 학생, 나아가 영화 바깥 감독의 유년시절과 관계 맺는 방식 등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구성돼 있다. 일제가, 또 독재정권이 식민치하며 제 나라 사람들의 신체를 체조라는 방식으로 다루는 과정은 영화 속에서 그래도 논리적인 대목이다.

국민체조는 동시에 모든 사람을 똑같이 움직이도록 한다. 모두가 팔과 다리를 휘저을 때 그건 그의 의지인가, 국가의 의지인가. 영화의 실험적 연출이며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눈앞에 펼쳐진 이미지와 메시지를 한껏 곤두선 채 지적으로 따져보도록 한다. 마침내 만족할 만한 결론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활발해진 사고와 해석을 위한 나름의 시도에 의미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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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낯선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험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여기는 이들과, 실패한 실험엔 가치가 없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이도 있다. 그 사이 정답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영화팬들은 갈라져 종일 싸울 수도 있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제가 이와 같은 물음이며 만남의 장이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만든다는 건 어째서인가, 영화가 담아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방식에 대해서까지 얼마든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무려 1480편의 작품을 떨어뜨리는 선별작업에 대한 변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몹시 당연하게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단편영화를 만드는 실천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재고하게 되었다'며 '출품된 영화들의 경향을 어설프게 진단하기보다는 모종의 강박과 두려움이 발견되는 두 가지 상반된 관계에 주목'한다고 전했다.

심사위원들이 그중 하나로 든 것은 '완성과 미완성의 관계', 갈수록 얼어붙어가는 제작환경 속에서 전문적 스태프와 이름 있는 배우가 단편영화에 참여하는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경향을 이들은 구태여 언급한다. 그로부터 완성도가 올라가고 있으나 반대로 미완성, 그 자체의 수행적 가능성이 소실되는 현상에 대해 짙은 아쉬움을 표한다. 한국영화, 또 영화제에 출품되는 한국 젊은 감독들의 작품이 그 수준에 있어 꾸준히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는 영화팬들 사이의 진단은 적잖이 설득력이 있다. 수는 늘었으나 질은 그렇지 못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대하여 전주국제영화제 측의 고심도 컸을 테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포스터JIFF

전주가 택한 모험적 시도와 만나다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과감히 완성도를 내려놓고 가능성을 택했다고 전한다. 이들은 '단편영화는 해결되지 않는 내러티브, 어설픈 촬영과 조명, 무뚝뚝한 연기와 움직임, 조악한 촬영 환경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만의 방법론과 규칙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의 현장'이라며 '창조적인 문법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기술적 완성도로 눈가림하는 결과물 대신 어색하고 단조로운 완성도일지라도 창의적인 가능성에 영화를 내거는 모험적 시도에 이끌렸다'고 30편의 작품을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어느 때보다 선정된 작품들에 대한 격론 또한 따랐던 듯하다.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견해를 내세우는 것만큼 반(反)영화적인 절차도 없을 것'이라며 '카메라를 든 주체와 세계 사이에서, 완성과 미완성 사이에서 협상하고 타협하고 토론하며 두 가지 방향성을 나란히 포착하고자 한 결과물'이라고 자평했다.

이 같은 평이 고스란히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이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실험의 의도며 효과의 불명확함에도 모험적 시도와 다른 방향성에의 존중이란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이 영화엔 남다른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도 그 자체를 의미 있게 바라보는 이들이 아직 한국 영화계에 남아 있다는 사실도 이로써 확인해볼 수 있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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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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