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궁> 방송화면 갈무리
영화 <귀궁> 방송화면 갈무리SBS

SBS 사극 <귀궁>의 임금인 이정(김지훈 분)은 착한 신하 윤갑(육성재 분)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비밀 임무 중에 정적에게 암살된 윤갑의 육신은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의 차지가 된다. 윤갑의 몸에 들어가 임금 앞에 나타난 이무기는 군신예법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이무기는 인간세계의 임금을 '네놈 네놈' 하며 하대한다.

임금은 처음에는 윤갑이 살해된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윤갑이 기억을 상실했거나 실성했겠거니 생각하고 신하의 행동을 이해하려 애썼다. 윤갑이 이미 죽었으며 이무기가 그 육신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임금은 이무기의 행동을 참아내려고 애썼다. 악귀의 공격으로 시달리는 왕실을 보호하자면 이무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지만, 윤갑의 탈을 쓴 이무기가 내관이나 호위무사들 앞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할 때는 임금이 꽤 난감해진다. 이무기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최측근 내관인 김응순(김인권 분)의 얼굴 표정이 바뀌고, 호위무사들은 칼집에 손을 갖다 댄다.

'물에 빠질 것입니다'... 왕에게 감히 막말한 신하

수양대군으로 훨씬 많이 각인된 조선 세조 임금도 신하들의 무례함에 시달렸다. <귀궁>의 임금은 귀신 씌인 신하 때문에 난처함을 겪지만, 폭군 이미지를 띠는 실제의 세조 임금은 술에 씌인 신하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술자리에서 영의정이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아 곤란함을 겪는 세조의 모습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다.

단종 임금을 몰아내고 1455년에 출범한 세조정권의 초대 영의정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던 대학자 정인지다. 정인지는 1458년 2월 25일(음력 2.12) 임금과의 술자리에서 사고를 쳤다.

세조의 큰아버지인 양녕대군(61세) 등이 참석한 이 술자리에서 세조(38세)는 불경 간행에 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던 정인지(59세)는 반대 의견을 표했다. 그런데 그 태도가 정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조는 화가 났다.

음력으로 세조 4년 2월 13일자(양력 1458년 2월 26일) <세조실록>이 그날의 술자리 대화 내용 일부를 알려준다. 이에 따르면, 정인지는 "하루도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세조에게 했다. 또 "매일 같이 서로 지지 않고 맞서니 조만간 깊은 못에 빠질 것 같습니다"라는 말도 했다.

세조가 유교 사서삼경에 관한 질문을 하자, 정인지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근거로 답변했다. "친히 <중용>과 <대학>에 관해 질문하시자, 한마디 한마디 모두를 승설(僧說)로써 대답했다"고 위 실록은 말한다. 유교 경전의 특정 내용에 상응하는 불경 내용을 그때마다 제시한 것을 보면, 술에 완벽하게 취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불경 간행을 반대한다면서 불경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응수했으니 세조가 화가 났던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정인지는 또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아예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두 살 많은 양녕대군에게 눈짓을 보냈다. 결국 양녕대군이 정인지를 대신해 대답했다. 임금의 질문을 받은 신하가 임금의 큰아버지를 통해 대답한 셈이다.

세조는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일 때문에 콤플렉스가 많았다. 사육신만 세조를 반대한 게 아니었다. 세조정권에 참여한 사람들도 왕의 정통성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정인지의 술자리 태도는 그런 분위기와 연관돼 해석될 여지가 컸다.

분을 삭이지 못한 세조는 다음날 정인지에게 따져물었다. 그런데 조용한 데서 따로 묻지 않고, 왕족들과 대신들이 모인 궁궐 후원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그런데 세조는 정인지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도승지 조석문을 시켜 대신 물었다. 영의정 정인지가 앞에 있는데도 도승지를 통해 대화한 것이다. 전날 밤 정인지가 직접 대답하지 않고 양녕대군에게 눈짓을 보낸 일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세조가 정인지에게 군주의 권위를 각인시키려 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조석문을 통해 세조는 '그동안 내가 사찰을 세우고 불경 베낄 종이를 만들어도 아무 말 하지 않던 경이 어젯밤 취중에 나를 그렇게까지 욕보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정인지는 죄송하다고 답하지 않았다. "취중의 일이라 기억나지 않습니다"가 대답이었다. 정인지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취중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날 밤, 세조는 정인지를 해임했다.

왕권 넘기겠다는 임금에게 내뱉은 엉뚱한 말

정인지는 그해 하반기에 또다시 실수를 범했다. 이때는 술자리에서 임금을 '너'라고 불렀다.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정인지의 후임은 세조보다 15세 많은 정창손(1402~1487)이다.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과 불교 숭상을 반대했다가 파직됐고, 세조정권 출범 뒤에 공신이 되고 단종 복위 음모를 고발한 인물이다. 정창손은 영의정이 되기 싫어 거듭거듭 고사했다. 세조가 '내가 대감의 손과 발이 돼 드릴 테니 제발 맡아달라'고 간청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못해 수락했다가 1년 만에 사임했다.

정창손의 후임으로 임명된 강맹경은 2년 만에 사망했다. 그러자 세조는 정창손을 다시 불러 자기 정권의 제4대 영의정으로 임명했다. 이 일이 있은 다음해인 1462년에 정창손의 술자리 실수가 발생했다.

그해 6월 5일(음력 5월 8일), 경복궁 사정전에서 술자리가 열렸다. 모임이 시작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였다. 이날 상황을 기록한 세조 8년 5월 8일자 <세조실록>에 따르면, 세조는 왕세자의 학문에 관해 정창손과 대화하던 중에 "높은 수준에 도달한 뒤에 국사를 맡기려 한다"는 발언을 했다. 왕권을 넘기겠다는 말을 느닷없이 내뱉은 것이다.

이런 경우에 신하들은 '아니 되옵니다'라고 말하는 게 예의였다. 잘못 말했다가는 역심이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술을 마신 정창손의 입에서 너무도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세조실록>은 그 말을 "윤당(允當)"으로 표기했다.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라고 답했던 것이다. 정창손은 이 일로 인해 퇴임했다.

<귀궁>의 임금은 인간을 무시하는 이무기 요괴에 씌인 신하 윤갑의 무례한 행동 때문에 난처함을 겪는다. 그렇지만 꾹꾹 참는다. 임금이 된 수양대군은 요괴가 아닌 술에 씌인 영의정들 때문에 곤경을 치렀다. 자신의 정통성을 수긍하지 않는 신하들의 취중발언으로 인해 그는 해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귀궁 세조 수양대군 정인지 술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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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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