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하림(자료사진)
가수 하림(자료사진)복건우

"어제부터 여러 곳에서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대선 시기라서 그런지 정치권 뉴스가 되기도 하고요. 사실 제가 하고 싶던 말은 저와 동료 그리고 후배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어떤 무대든 올라가길 바란다는 거였어요."

14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가수 하림이 재차 강조한 건 '예술가의 자유'였다. 하루 전,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촉구 집회 무대에 섰다는 이유로 국가기관 주최 행사에서 갑자기 섭외 취소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개인 SNS에 밝혔다. 이후 글이 화제가 되면서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고 한다. 관련해 어떤 곳이 주관해 행사를 취소한 것인지 묻는 언론사가 많았지만, 당시 그는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게 중요하다"면서 기관을 명시하길 꺼렸다.

"후배들이 비슷한 일 겪지 않기를"

이와 관련해 하림은 "더불어민주당 케이(K)문화강국위원회·문화예술특별위원회 등에서 '블랙리스트' 관련해 입장 발표할 예정이라는 연락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면서 "이런 일은 좌우를 떠나 벌어질 수 있을 텐데, 후배들이 비슷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처럼 예술가들에게 '블랙리스트 사건'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큰 상흔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의 '예술 지원 정치검열'로 불거진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가들에게 불리하게 활용됐기 때문이다. 하림이 참여하기로 한 행사가 출연진을 명시한 포스터까지 나왔음에도 취소된 것을 두고 '제2의 블랙리스트' 아니냐는 언급이 나오는 이유다.

그 역시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는) 블랙리스트 같은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탄핵 콘서트에 참여한 전력 때문에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하림은 "공연 취소를 실무자 선에서 결정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한 중간관리자의 과잉충성이나 눈치 보기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알아서 눈치 보느라 생긴 일 정도로 짐작하고 있다"면서 "조직적인 탄압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두려움의 구조라고 생각한다. 내가 입은 피해가 크다기보다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당 일을 공유했다"고 덧붙였다.

"공연 취소, 침묵하지 않을 것"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대회에서 가수 하림이 유가족 최정주씨(고 최유진씨 아버지)가 작곡한 '별에게'라는 노래를 직접 부르고 있다.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대회에서 가수 하림이 유가족 최정주씨(고 최유진씨 아버지)가 작곡한 '별에게'라는 노래를 직접 부르고 있다.김성욱

하림은 꾸준히 음악의 쓰임을 고민하는 예술가로 그동안 여러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왔다. 2020년 충남 당진의 한 철강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청년 노동자를 기리며 노래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만들었고, 지난해엔 구의역 참사 8주기 시민추모식, 노동절, 5·18 민주화운동, 이태원 참사 등과 관련한 무대에 올랐다. 사회적 메시지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라 생각했기에, 같은 해 12월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이런 활동은 종종 공연이 취소되는 사유로 활용됐다. 하림은 "이번 공연 취소가 처음은 아니다"라면서 "지금까지 제 사회적 활동을 이유로 공연이 취소됐어도 문제 삼지 않았던 건, 통보를 전하는 이들이 대부분 갓 기획 일을 시작한, 책임지기 어려운 위치의 실무자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조용히 넘겨온 일들이 우리 모두의 입을 닫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부연했다.

이번 공연 취소를 공유한 것 역시 자신의 침묵이 누군가의 침묵으로 이어질까 염려해서다. 그는 "함께 노래했던 동료와 후배들도 저와 같은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정리했다. 싸움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다. 다만 앞으로는 침묵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무대에 서지 못하더라도 행사는 취소되지 않기를 바란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관련해 정치적 문제로 확장되는 거 같아 조심스럽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예술가들이 정치적 이유로 무대에 오를 기회를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래는 누군가를 두렵게 하거나 위협하는 수단이 아니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부르려는 건 우리 모두의 자유와 사랑"이라며 "음악가들이 사회적 사건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 꼭 정치적인 활동은 아니다. 많은 음악이 결국 동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이 필요한 노래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림의 공연을 취소해 논란이 된 행사는 통일부가 '북한인권 공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는 28일 개최 예정인 '남북 청년 토크콘서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실무진이 기획사와 행사안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출연자(하림)가 지난해 말 대통령 퇴진 집회의 주요 공연자라는 걸 알게 됐다"며 "행사 예정 시기가 대선 기간이라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섭외를 중단한 것이다. 부처 차원에서 배제 방침이나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다. 다만, 공연은 6월 대선 이후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하림 윤석열 통일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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