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영화제의 계절이다. 따스한 봄이 다가오며 전국 각지에서 영화와 작가, 관객과 업계 종사자들이 만나는 영화축전이 잇따라 개막한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금이 확정된 뒤 공식적인 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다수 영화제가 4, 5월에야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는 건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여기에 더하여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란 계절이 관객을 영화제가 열리는 고장으로 더 많이 이끌 수 있단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테다.

지난 기사에서 적었듯, 영화제는 국내외 작품과 영화사가 만나는 시장으로 기능한다. 한편으로, 영화계 각 직역 종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종 현안을 고민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것만이 영화제의 진면목일까. 다른 무엇보다 영화 본연의 목적,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기적적 순간이 연출되는 곳이 바로 영화제인 것이다. 영화를 즐기는 이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감독이며 배우, 평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 영화제는 그 자체로 영화를 아끼는 모두의 축제가 된다.

문화예술계와 각을 세웠던 윤석열 정부다. 지난 3년 간 영화제 또한 줄어든 지원금이며 크고작은 논란들과 마주해 다사다난한 시절을 보냈다. OTT가 득세한 환경과 진득하니 극장에서 두 시간에 달하는 장편영화를 보는 이들이 죽어가는 상황까지가 모두 영화제가 처한 어려움을 알도록 했다. 지난 1월 노무현재단과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이 주도한 제5회 사람사는세상영화제가 열린 이래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영화제들이 지난 4월부터 하나둘 문을 열고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매년 봄을 알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10일을 끝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들여온 작품 수준은 물론, 상영 뒤 반응이며 영화제를 찾은 관객수, 객석 점유율 등에 이르기까지 역대 최고란 평가가 나왔을 정도였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시작일 뿐, 5월부터는 더욱 다채로운 영화제가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무엇보다 주류영화, 대중문화 등에선 소외되기 쉬운 목소리를 전하는 작지만 매력적인 영화제가 5월 중 포진하고 있어 영화팬들에겐 꽤나 흥미진진한 한 달이 될 테다(관련기사: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역대급'이란 말 나오는 까닭 https://omn.kr/2dhqu).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 포스터
디아스포라영화제포스터디아스포라영화제

"화합·공존·존중의 가치로"

오는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간 열리는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지난 2013년 인천 영화공간주안에서 열린 첫 회로부터 벌써 열세 해 째를 맞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하던 것을 지난 2017년부터 인천시가 이어받아 매년 열고 있는 영화제로, 올해는 인천시민이 아끼는 문화공간인 애관극장과 인천미림극장에서 작품을 상영한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흩어져 전 세계를 떠돌면서도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냈던 유대인의 삶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에선 이산이며 분산 정도의 의미로 축소돼 사용돼 왔다. 영화제 측은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난민, 추방, 실향, 이민 등 다양한 형태의 이주를 경험하는 중'이라며 '이제 디아스포라는 이국' 정취만을 의미하지 않고 다양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한 이산, 이국의 무엇이 아닌 우리 안의 다름을 직시하는 계기로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마련한 것이란 의도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한국 최초의 이민선이 떠난 항구이자 차이나타운 등 한국에 정착한 이주노동자의 터전이자 창구이기도 한 인천에서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만나는 건 색다른 경험이 될 테다.

올해 개막작은 <국도 7호선>으로, 재일교포 출신 전진융 감독의 31분짜리 단편 극영화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을 지나는 한국의 7번 국도와 아오모리현에서 니가타현으로 이어지는 일본 7번 국도가 모두 북한과의 단절된 접점을 가졌단 사실로부터 조선과 한국, 일본 사이의 미묘한 관계성을 짚었다. 그 위에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다뤘다.

영화제 마지막날 저녁 상영되는 폐막작은 영화제 기간 중 관객투표로 상영작 가운데 2편을 선정한다 하니, 영화제를 찾는 이들은 직접 심사위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제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포스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포스터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록으로 저항하라"

오는 23일부터 사흘 간 열리는 제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지난해 서울시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좌초위기에 놓였던 바로 그 영화제다. 이 영화제는 그 시작부터가 '저항'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되고 굴러가는 오늘의 한국사회 가운데 장애인의 자리를 저항을 통해 구축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뒤 시의 석연치 않은 예산 삭감에 결코 순응하지 않고 맞선 일련의 투쟁, 나아가 오늘에 이르는 이야기는 이 영화제가 결코 흘러가는 대로 오늘에 이르지 않았단 걸 증명한다.

'기록으로 저항하라'는 슬로건은 이 영화제의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대로 내보인다. 여전히 지하철 승강장에서, 또 장애인을 시설에 고립시키려는 정책에 맞서, 일반 시민들의 편견에 저항해 싸우는 수많은 장애활동가들의 이야기가 이번 영화제에서도 펼쳐질 예정이다.

영화제 측은 '기록이 만들어낸 광장에서 22년간 저항의 스크린을 밝혔다'고 스스로의 지난 시간을 자평하며 '장애인의 일상과 투쟁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시공간을 넘어 모두에게 닿을 수 있도록, 기록으로 저항하겠다'고 포부를 전한다.

마로니에공원 일원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홀에서 사흘간 열리는 이번 영화제 개막작은 추병진 감독의 37분짜리 단편 <시설 밖, 나로 살기>, 폐막작은 <소란을 부르는 기록>이다. 두 작품 모두 장애인의 탈시설 이야기를 전한다. 오늘날 한국사회 가운데 장애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이라면 마땅히 귀 기울여 들어봄 직한 이야기라 하겠다.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반짝다큐페스티발

"반짝이는 작품들을 함께 보고 싶어"

서울 홍대입구역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반짝다큐페스티발도 빼놓을 수 없는 영화축제다. 오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3일 간 열리는 이 작은 영화제는 한국 중단편 독립 다큐멘터리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과거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코로나19의 위기로 끝내 좌초된 뒤 다큐인 스스로가 모여 그 자리를 메우는 영화제를 만든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정부 지원 없이 홀로 일어선 이 작은 영화제가 3회까지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 이는 채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돈이 되지 않는 독립영화, 그중에서도 중단편 다큐라는 환경을 딛고 작가와 관객의 접점을 자임하고 있는 이 영화제의 오늘이 당차다. 십시일반 후원을 받아 영화제를 꾸려가는 이들의 오늘을 응원하는 영화팬이라면 이제 막 예매가 열린 이 영화제에 관심을 줘도 괜찮을 테다.

개막섹션엔 로렌스 부에렌스, 장 포레스트의 <사월의 마지막 날들>과 테오 파나고풀로스의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를 상영한다. 한국작품이 주를 이뤘던 예년과 달리, 전쟁에 휩싸인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을 초청해 상영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차이를 준비하고 도약을 타진하는 반짝다큐페스티발의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안주하는 자리를 의심하고 경계를 한계라 여기는 태도를 혁파하는 이 영화제가 내일은 보다 나은 위치에 있을 것을 기대하게 된다.

마지막 날인 6월 1일 오전 일곱 번째 섹션은 제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한 추병진 감독의 <시설 밖, 나로 살기>, 최예린 감독의 <숲, 틈>, 배웅진 감독의 <병풍을 찢고서>를 묶어 상영한다. 상영 뒤 감독과의 대화 진행은 필자가 맡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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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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