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 다닌 지 벌써 십수 년 쯤 되었나. 그러나 영화제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까진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영화제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여기 영화제에 대해 적기로 한 건, 더 많은 앎이 더 넓은 이해를 이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제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고 더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해서이기도 하다. 여드레의 일정, 합치면 족히 백 명은 될 이들과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나눈 대화의 결과로 이번 '씨네만세'를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려 한다. 또 앞으로 이따금 개별 영화뿐 아니라 영화제를 비롯한 영화이야기, 또 영화판의 사람들 이야기도 해보겠단 마음이다.
영화제는 무엇인가. 앞의 두 글자 영화는 말 그대로 시네마, 우리가 아는 영화다. 뒤의 제는, 한자어로 행사며, 큰 일, 또 잔치와 축제 등을 포괄하는 제사 제(祭)자다. 말하자면 영화와 관련한 큰 행사란 뜻이겠다.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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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예술 영화의 태동
영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마치 마술처럼 움직이는 사진으로써 무대에서 상영된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들이 19세기 말 등장했다.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지금으로 치자면 뉴스 자료화면이나 유튜브 영상처럼도 보이지만, 당대로서는 그 자체로 실험영화이자 다큐멘터리, 나아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일환이 아니었는가. 그보다도 훨씬 유명한 <열차의 도착>은 그저 영화가 도착하는 장면을 찍었을 뿐이지만 가히 영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명작으로 추앙받는다. 구한말 조선에서 상영돼 관객들을 감탄케 했다는 최초의 영화 또한 바로 이 작품으로 추정된다.
처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찍었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오늘날 주류가 된 극영화가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들지 않았다. 인간이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꿈꾸는 존재이고, 영화 기술은 그 도구로써 최적의 조건을 갖춘 터였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1902년 쥘 베른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지구에서 달에 이르는 모험 <달 세계 여행>을 찍어냈다. 대포를 이용해 달까지 날아간다는 소설의 착상을 차용했으나, 오늘날 상당수 영화예술이 그러하듯 원작을 영화란 형식에 맞게 적극적으로 변주했다.
<달 세계 여행>은 극영화의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확인케 했다. 수많은 작가의 온갖 시행착오가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벌어진 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프레드릭 빌헬름 무르나우,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빅터 플레밍, 알프레드 히치콕, 구로사와 아키라, 스티븐 스필버그, 쥬세페 토르나토레, 켄 로치, 이창동, 크리스토퍼 놀란 등 타 예술분과에 비해 모자람 없는 거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예술은 인간을 움직이고 그로부터 세상을 변화케 했다. 예술을 넘어 산업으로서도 기능해 수많은 직업인의 밥벌이를 가능케 했다.
▲<전주국제영화제>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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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탄생, 축제의 시작
영화제는 예술의 한 분과로 자리한 영화가 가장 기민한 관객과 마주하는 장으로 마련됐다. 마치 미술을 즐기는 이들이 국제미술전을 찾듯, 영화를 아끼는 이들이 영화제를 찾아 최신 경향을 접하고 지적, 이성적, 감성적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획됐다. 처음엔 비엔날레에서 영상미술 상영회쯤으로 자리하던 것이 영화예술의 몸집이 커짐에 따라 별도 영화제로 독립하였다. 최초의 영화제라 불리며, 오늘날 유럽 3대 영화제라 평가받는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시작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지금도 저들의 시작을 193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진행된 상영회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화제가 발 빠른 이들이 최신 경향을 감지하는 장으로만 기능하는 건 아니다. 그 특성상 투자와 제작부터, 상영과 배급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영화는 그저 미술의 축전과는 성격을 달리했다. 국제영화제는 세계 각국의 작가를 불러 모아 교류하고 작품을 각 나라 배급사들이 수입해 제 나라에 배급할 수 있는 시장으로 기능했다. 배급사가 직접 전 세계 작가들과 접촉해 협상하고 배급까지 하는 수고를 덜어주어 영화예술의 보다 효과적인 성장을 돕도록 했다.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유럽 내에서도 칸과 베니스, 베를린까지 세 개의 영화제는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다. 유럽 내, 20세기 후반부터는 전 세계 방방곡곡의 작품들이 모여들었다. 관객에게 작품을 보이고, 심사위원과 평론가들이 그 경향성과 완성도, 혁신성이며 예술성까지를 평가해 상을 주고 언론지상에 소개하는 일까지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중심엔 언제나 시장이 있었다. 시장성이 없는 곳에 구태여 작품을 내려는 작가도 없었을뿐더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유력 영화제는 서로 프리미어, 즉 독자적 최초 상영을 요구한 탓이다. 영화제는 작품이 최초로 선보이는 고리로 기능했고, 관객들은 더 새롭고 훌륭한 작품을 한시라도 일찍 보고자 국경을 넘어 이들 영화제를 찾았다.
시간이 지나며 영화제는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멀리 유럽까지 찾아갈 여력이 없는 이들의 필요에 따라서, 그와 같은 시장을 제 고장에 열고픈 열망에 의지해, 기성 영화제가 품지 못한 다양성을 챙기고자, 서로 다르거나 같은 이유를 품고서 수많은 영화제가 일어났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날 한국 3대 영화제라 불리는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그것이다. 이들 세 영화제는 영화제의 핵이라 해도 좋을 시장의 기능을 얼마간 유지하며 전 세계 작품들이 아시아권 극장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일부 수행한다. 이들 영화제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한국의 일면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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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영화제, 그리고 전주
시장을 넘어 축제, 그 자체에 집중해 특화하는데 성공한 영화제도 있다. 무주산골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등이다. 또 다양한 작은 목소리가 소외되기 쉬운 현실 가운데, 작가와 관객을 잇는 서울독립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반짝다큐페스티발 등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들 영화제를 통해 관객은 영화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혹은 다른 곳에선 마주할 수 없는 귀한 목소리를 접한다.
'씨네만세'에선 오늘부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정준호 집행위원장 임명부터 잡음이 일었던 이 영화제는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외연과 내실 모두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렸다. 옳고 그름을 집요하게 따지는 비판자들 중에서도 분명한 업적만큼은 상찬해야 한다는 이들이 생겨났을 정도다. 정부의 지원 삭감과 결코 쉽지 않은 외부환경 가운데서도 영화제는 더 새로운 시각, 더 나은 작품, 더 많은 관객을 껴안는 데 얼마간 성공했다. 이번 영화제가 과거보다 못한 게 있다면 오로지 어찌할 수 없는 근래 한국 작가들의 뚜렷한 기량 저하 정도다. 그러나 이 영화제가 그러했듯, 한국 영화 또한 비상과 부흥의 순간은 오고야 말리라고 믿어볼 뿐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몇 있다. 다른 나라 작가들의 낯설고 품격 있는 시선을 접할 수 있는 드문 장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기실 한국을 세계 속에 모든 정보가 자유로이 드나드는 나라라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가 외면하는 진실은 그와는 영 딴판이다. 언론이 전하는 뉴스부터가 서방, 그것도 영미권에 편중돼 있고, 서적을 포함한 출판물 또한 갈수록 입지가 줄어들어 소위 베스트셀러 말고는 얼마 소개되지 못한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 전 세계 영화의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은 미국과 유럽 외 국가 작품의 급부상으로, 걸출한 작가들이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다. 동유럽과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지가 그러하다. 한국 배급사가 이들 지역 작품을 수입하지 않고, 국내에 유통되지도 못해 관객은 이 지역의 영화를 만날 수 없다.
▲개막작 < 콘티넨탈 '25 > 주연배우 에스테르 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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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화제를 봐야 하는 이유
그러나 이들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오늘의 한국에 필요하다. 오로지 주류의 창 너머로는 보이지 않는 귀하고 가치 있는, 심지어 더는 작지 않은 담론들이 담겨 있는 탓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전쟁에 대한 시각은 물론이고, 양극화와 빈민, 정의와 윤리, AI와 환경에 있어 독자적 해석과 해법을 모색하는 작품이 여럿이다. 이토록 낯설고 수준 높은 작품을 우리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제가 예년 대비 더욱 걸출한 작품을 수급하려 각고의 노력을 하였고, 또 얼마간 성과를 거두어 그를 우리 앞에 펼쳐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에 닿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민망하고 참담하다.
전주국제영화제와 같은 규모 있는 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에게 꿀팁 하나를 알린다. 그건 영화제에서 익숙한 작품, 또 한국영화보다도 해외영화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한국영화는 어떻게든 다시 마주할 방도가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그 작가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여 볼 기회 정도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 작품은 어떤가. 이번에 상영한 작품 가운데 수입될 것은 백 중 한둘에 불과할 테다. 어쩌면 그조차도 없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영화제가 마지막 기회, 다른 영화제가 그를 들여와 다시 틀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전주국제영화제 등 한국 국제영화제들은 시상식을 일정의 끝이 아닌 중간에 갖는다. 그건 해외 초청작과 관계자들의 체류비용을 줄이고 중간까지만 일정을 소화하도록 한 뒤 귀국도록 하는 현실적 문제 때문일 테다. 이 때문에 전반은 해외, 후반은 한국 작품이 상영의 주를 이룬다. 영화제를 찾는 이는 이를 감안하고 일정을 짜보는 게 어떨까. 한국의 소소한 소리를 남보다 먼저 듣는 일과 다시는 듣지 못할 경계 바깥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 그 둘 사이를 적절히 오가면서.
영화제는 말 그대로 영화축제이기도 하다. 축제는 그저 영화와 그를 보는 관객 사이의 일방향 정보전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영화인들 사이, 또 영화팬들 사이, 그 둘 사이를 잇는 장 또한 열려 있다. 이를 아는 이는 영화제를 훨씬 폭넓게 즐길 수 있단 걸 구태여 더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 구체적 방법은 언젠가 다시 적을 일이 있을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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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역대급'이란 말 나오는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