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건즈 앤 로지스의 내한 공연
Guns N' Roses
전세계의 많은 록 팬과 마찬가지로, 건즈 앤 로지스의 노래를 좋아한다. 슬래쉬가 빚어내는 명징한 기타 리프, 액슬 로즈의 시원한 쇳소리가 좋다. 운동을 할 때는 'Sweet Child O'Mine'을 듣고, 비가 오는 밤에는 'November Rain'을 듣는다.
지난 1일, 건즈 앤 로지스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내한 공연했다. 웬만한 공연은 빼놓지 않고 보는 나지만, 공연을 며칠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단순한 왕년의 밴드가 아니라 20세기를 상징하는 위대한 록스타의 내한이었다. 보컬 액슬 로즈를 빼면 원년 멤버가 없었던 2009년과 달리 반쪽짜리 내한도 아니었다. 액슬 로즈(보컬)와 슬래쉬(기타), 더프 맥케이건(베이스)이 모두 있었다. 음악 활동을 중단한 이지 스트래들린과 스티브 애들러를 제외하면 모든 전성기 멤버가 무대에 오르는 것이니, '완전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고민했던 이유가 있다면, 액슬 로즈의 보컬이었다. 전성기에 과하게 혹사당했으며, 방탕한 삶 속에서 자기 관리를 게을리했던 그의 목소리를 믿기 힘들었다. 2016년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과 AC·DC 공연을 통해 경이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이내 심각한 기복을 보였다. 팬들은 액슬 로즈의 힘이 빠진 목소리를 두고 '미키 마우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콜드플레이의 내한 공연에서 현재진행형 슈퍼스타의 멋을 느끼고 왔기에, 고민은 더욱 커졌다. 노쇠한 록스타의 공연을 보고 실망하느니, 가장 찬란하던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다. 공연 당일까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공연장에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인들과 메시지를 나누면서 공연장 현장의 상황에 신경을 집중했다.
전설의 건재함
▲지난 5월 1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건즈 앤 로지스의 내한 공연Guns N' Roses
예정된 시작 시간은 오후 7시였는데, 38분이 지나도록 건즈 앤 로지스가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는 소식을 커뮤니티에서 전해 듣고 "그러면 그렇지. 안 가길 잘 했다"고 씨익 웃었다. 건즈 앤 로지스는 2009년 첫 내한 당시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 20분 늦게 공연을 시작했던 바 있다. 그리고 이 알량한 감정은 이윽고 짙은 후회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건즈 앤 로지스가 불후의 명곡 'Welcome To The Jungle'을 연주하며 무대 위에 등장하는 영상을 보는 순간 "이 공연에 가지 않은 것은 큰 실수"임을 깨달았다.
트레이드 마크인 긴 중절모와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한 슬래쉬는 블루지한 기타 연주로 좌중을 압도했다. 중후한 모습으로 등장한 액슬 로즈는 2시간 20분 내내 고군분투했다. 예전의 힘과는 비할 수 없으나, 날카로움을 간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따금 80년대로 돌아간 듯한 금속성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으며, 무대 매너 역시 정열적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대곡 'November Rain'을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비바람이 지나간 날씨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건즈 앤 로지스의 공연을 여러 차례 본 지인들 역시 "지난 10년간 액슬 로즈가 들려준 최고의 라이브"라는 찬사를 거듭했다. 액슬 로즈가 힘에 부칠 때마다 슬래쉬가 화려한 연주로 공연을 끌어나가는 콤비 플레이 역시 압권이었다. 슬래쉬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높은 수준의 기술을 연마한 기타리스트다.
중년 팬부터 10대 팬까지, 다양한 세대의 록 팬으로 채워진 관객들은 이들이 연주하는 전설적인 레퍼토리에 열광하고 기타 리프를 따라 불렀으며 '슬램'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공연이 열린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은 매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부지이기도 하다.) 밥 딜런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버전인 'Knockin' On Heaven's Door'를 연주할땐 관객들이 스마트폰 플래쉬라이트로 별빛의 바다를 만들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 리프로 유명한 'Sweet Child O' Mine', 그리고 'Nighttrain', 엔딩곡 'Paradise City'의 감동과 함께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전성기를 떠나보낸 환갑 록스타의 무기력함이 아니라, 젊음을 간직한 전설의 품격을 영상으로나마 확인했다. 팬데믹의 종식 이후 '밴드 붐'이 일고 있는 지금, 공룡 밴드의 공연은 역사 교과서와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 '건즈'의 시대를 지나온 중년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며, MZ 음악 팬들에게는 겪어본 적 없는 시대의 편린을 선사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인천에서 전해져 온 친구들의 환희를 접하면서 느낀 나름의 교훈을 전한다. 갈까 말까 주저가 될 때는 일단 가기를 추천한다. 가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실망을 경험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건즈 앤 로지스를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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