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 모임 하던 지인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인연이다. 이중 아직 중학생인 늦둥이 아들을 둔 엄마가 있는데, "요즘 00의 눈빛이 불온해졌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문득 보긴 봤는데 영 찜찜하고 착잡했던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생각나 추천했다.

그로부터 한두 주 지났나. 지인이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며, 어이없음과 충격과 혼란을 호소했다. 남자애들이 지들끼리 궁시렁대는 여자애들 불평 정도인 줄 알았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며, "뭐라도 해야지 않냐"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는 이 드라마 속 문제 소년의 아버지의 대사처럼 너무 늦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만연한 여성 혐오... 그들은 더이상 아이가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의 시간>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의 시간> 포스터.넷플릭스

이미 비틀린 여성 혐오가 남자애들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약 십여 년 전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책 모임에서는 청소년 아이들을 다룬 책도 읽었다. 그중 아이들의 성을 다룬 책도 있었는데, 엄마들 특히 남자아이를 둔 엄마들의 반응은 너무 과하고 불쾌하고 부담스럽다는 평이었다. "아직 애기인데"라던 한 엄마의 항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N번방'이 터졌을 때, '아직 애기'라던 그 엄마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문득 궁금했다. 애기라던 남자아이들은 과거도 지금도 전혀 애기가 아니다. 당시 그 남자아이들은 교실에서 상당한 여성 혐오를 자행하고 있었다. 포르노(성착취물일 가능성이 농후한)를 돌려보고, 성행위를 흉내 내는 몸짓을 여급우 앞에서 버젓이 자행했다. '패드립', 여학생에게 포르노 사진 보내기, 교내 성희롱, 학교 내 여학생 '얼평'은 기본이었다.

그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전해 들은 한 사건은 심각했다. 한 여자아이가 한 남자아이와 합의해 성관계를 가졌는데 남자아이가 소문을 냈다. 여자아이는 순식간에 '창녀', '걸레'로 회자되면서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때 부모(주로는 엄마)들이 보인 반응은 예상하다시피다. 남자애가 안됐네, 여자애가 몸을 함부로 굴렸네, 여자애가 먼저 꼬리쳤네... 등이었다. 명백히 가해자는 남자아이인데 피해자로 둔갑하는 부정의가 어른들의 비호 속에서 자라났다.

남자아이를 '애기'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사실 이 드라마를 보고도 문제가 뭔지 감 잡을 수 없을지 모른다. 13살 소년이 스스로를 '인셀'로 자처하고, 80대20의 구도를 고착화시킨다고 믿는 여자아이를 처단하는 게 시대적 소명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자아이의 편견과 변덕으로 루저 남성성이라는 피해자가 되었으므로 살인은 정당하다는 인셀 신화를 해석할 능력이 있을까.

아들을 둔 엄마뿐 아니라 제도화된 여성 혐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드라마 속 베스컴 형사처럼 사건을 좇다 미로에서 헤맬 것이다. 베스컴 형사의 헤맴은 바로 애기 운운하는 부모의 우매함이나 여성 혐오는 없다고 단언하는 엘리트 집단의 허위를 밈처럼 반복하는 우리 사회의 무지 무능과 맥을 같이 한다.

경찰 아빠가 하도 헤매니 속이 터진 중학생 아들이 그게(원한이나 치정) 아니고 이거(페미사이드)라고 알려줘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 혐오 범죄를 다룸에 있어, 여성 피해자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가해자 남성을 감싸고도는 한국 경찰의 태도 역시 베스컴 형사의 무지와 결국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무지로는 그 '애기'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배양하고 생산해낸 캐릭터를 마침내 현실의 공간으로 이전해 여혐과 살인으로 실행함으로써 반 페미니즘의 기치를 높이 쳐들고 있다는 현상을 포착하지 못한다.

본질에 가닿지 못하는 무능으로 남의 다리를 긁고 있으니 내 몸의 가려움증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시청자는 '그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재차 묻게 된다. 원테이크로 찍힌 상황으로만 폭력의 본질을 찾아내라는 드라마적 명령과 이를 전혀 해독할 능력이 없는 무능함은 남자학생들 간의 위계나 루저화된 심리를 전혀 이해도 대처도 못하는 우리 사회 아니 글로벌적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일탈인가 폭력의 내재화인가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관련 이미지.넷플릭스

십여 년 전 이미 교실에서 수위 높은 성적 일탈과 여성 혐오를 과감히 실행하던 중학생들은 지금 남초 커뮤니티 인터넷 공간이나 SNS에서 맹활약 중이다. 글로벌 넘버 원 디지털 성착취 국가의 상징인 'N번방'은 그냥 터진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가공할 성폭력을 양산한 딥페이크가 가시화되었을 때 중고등학교 남자들이 장난으로 벌인 여성 혐오 범죄 또한 우연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같은 반 여학생에게 보인 관심의 거절을 곧장 인셀 낙인으로 내면화하고 여자아이의 죄값을 살해로 치르게 한다는 소년 제이미의 현현이 바로 당신들의 '애기'일 수 있다면 확대해석인가.

한국 사회에서 남자아이들이 비틀린 남성성을 학습하는 최적의 장소는 게임 공간이다. 성애화된 여성 캐릭터를 짓밟고 희화화하고, 게임 내내 여성 혐오를 거름 삼아 반 페미니즘 남성 문화를 내면화 외연화한다. 이를 통해 기량을 키운 남성 동맹은 반 페미니즘의 자경단을 꾸려 페미 감시를 벌이고 여성 노동자의 밥줄을 끊어 매장시킨다.

있지도 않은 공공의 적으로 여성을 상정하고 남성성 확장의 매개물로 여성 혐오를 동원한다. 정작 '남자들의 방'에서 돈 쓰며 잘나가는 '알파' 형님의 능력엔 굴종하면서, 남성 간 차이를 키우는 위계와 계급의 불공정함엔 입을 닫는다.

데이트 폭력, 교제 살인. 스토킹 등, 여성 혐오 범죄가 나날이 기승을 부려도 솜방망이 처벌이 만연하다.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서로서로 공유하며, 단 한 번도 제대로 남성 공동이 키워낸 여성 혐오 범죄의 실체를 성찰하지 못한다. 이미 위기의 여자들이 죽어가며 여성 혐오 범죄의 경고음을 수없이 날렸지만 수신자가 없다. 드라마 속 소녀의 죽음처럼 페미사이드는 그저 가족의 불운이 되고 피해는 개인화된다.

드라마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나누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보겠다는 지인의 다짐은 다행이고 희망적이지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지인의 의지처럼 할 수 있는 건 해보겠다는 결심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의 결론이길 바란다. '아직 애기'라고 미루지 말고, 그저 방구석 게임러려니 외면하지 말고, 남자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하자.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넷플릭스드라마소년의시간 인셀문화 80대20법칙 여성혐오 페미사이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