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다룬 여러 다큐멘터리가 있었고, 몇 편의 극영화가 있었다. 전자가 그날의 진실을 밝히거나 유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마중물 역할로 기능했다면, 후자는 아무래도 그 상처를 직접 말하기엔 조심스러울 밖에 없다. 자칫 섣부른 극화로 예기치 않은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정윤철 감독의 <바다 호랑이>가 특별한 이유는 우선 그 참사의 상흔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 즉 선한 마음을 품고 바다로 달려간 잠수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조망해서다.
고 김관홍 잠수사·공우영 잠수사 등 민간인 봉사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상하면서까지 실종자 수색에 헌신했다. 하지만 일부 극우 보수 매체 등에서 퍼져 나간 이른바 보상금 이야기에 유가족들은 마음마저 크게 다친 채 지냈다. 그 상처를 과감하면서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영화 <바다호랑이>는 이번 전주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투자 난항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영화 <바다호랑이>의 한 장면.
영화사침, 굿프로덕션
김탁환 작가의 르포 소설 <거짓말이다>(2016)를 원작으로 한 해당 작품은 2021년 4·16 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됐다. 처음엔 100억 원 규모의 상업영화로 기획됐다가 투자 난항이 이어졌고, 그대로 묻어둘 수 없었던 정윤철 감독은 일종의 실험을 했다. 지난 1일 오후 전주시 완산구 영화의거리 인근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을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촬영이 어려울 당시 그는 서울 사당 부근 60평 규모의 연습실을 빌리며 자기만의 실험을 시작했다. 테스트 촬영에서 배우들의 대본 리딩과 마임 연기만으로도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을 확인한 정 감독은 무대에 세트 여러 개를 분리해 놓은 채 수중 수색, 법정 공방, 군중 시위 장면을 찍었다.
"시나리오를 보신 분들은 다들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투자는 안 되겠다더라. 고민하다가 초저예산으로 가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새로운 형식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다루고,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담자는 생각이었다. 김관홍 잠수사 유가족에게도 꼭 영화로 보여드리겠다 약속했었던 만큼,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그 무렵 대본 리딩 공연을 봤는데 그것만으로 실제 연극 같은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됐다. 영화로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시나리오의 힘과 배우들 연기의 힘을 믿고 해보자고 결심했지."
그렇게 해서 잠수사 나경수(이지훈)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아이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돈벌이를 위해 나섰다는 세간의 비난에 괴로워하던 주인공의 진심이 배우들의 연기에 오롯이 묻어났다. 지난 3일까지 세 차례 상영된 영화는 전석 매진됐다. 특히 3일 오전 10시 30분 상영엔 고인의 아내, 자녀들이 극장을 찾았다.
아내 김혜연씨는 "이지훈씨가 연기한 말투나 행동이 실제로 (남편과) 비슷했던 점들이 많아 마음이 힘들었다. 그때 남편을 왜 더 공감해 주지 못했는지 미련이 남는다"며 "마음에 이끌려 현장으로 간 사람을 향해 돈 때문이라고 비난한 사람들 때문에 많이 괴로웠는데 그의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해왔다.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사이에선 훌쩍임을 넘어 오열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십시일반 힘 보탠 배우들
▲영화 <바다호랑이>의 한 장면.
영화사침, 굿프로덕션
실제 수중 촬영이나 대규모 군중 장면, 극적인 연출 없이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던 건 정윤철 감독이 새롭게 시도한 방식 덕분이다. 초기 제작비 1천만 원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사운드 효과를 십분 활용해 실제 공간감을 더했다.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과 비교하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초기촬영과 보충촬영을 합하면 총 8회차 촬영으로 영화를 완성했고 총 7천만 원의 예산이 들었다. <말아톤>(2005),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 <대립군>(2017) 등 대형 상업영화를 찍어오던 정윤철 감독에게도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배우들을 제외하고 전문 스태프가 7, 8명 정도에 두 대의 카메라로 찍었다. 이번 작업으로 영화의 본질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 사실 보충촬영 때 나름 큰돈 들여 바지선 세트와 보트 등을 만들어 찍기도 했는데 영화가 아닌 연극 같아지더라. 그 경계를 지키는 게 중요했다. 무엇보다 사운드가 영화에서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빈공간에 새로운 존재감을 준달까. <우주전쟁> 각본으로 유명한 오손 웰즈도 라디오 드라마를 하다가 스타가 된 거지 않나. 훌륭한 감독일수록 사운드를 잘 쓴다는 건 봉준호, 박찬욱 감독 작품에서도 알 수 있다.
잠수복에도 물안경과 여러 장비를 달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실제 장비가 아니라면 쓰지 말고 배우들 얼굴이 다 보이게 하자고 결정했다. 연극적 방식을 택하기보단 감정의 현실감과 연기적 힘을 보이는 게 중요했거든. 연극을 염두에 뒀다면 보다 세트나 미술에 신경 썼을 거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정 전달이 중요했기에 소품이나 의상 등은 최소한으로 가는 게 맞다 싶었다. 미술로 치면 추상화시켜버린 것이지. 그렇게 하니 배우들 연기가 더 잘 보이고 관객들이 활발하게 상상하며 우리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우시더라."
정윤철 감독은 이번 영화에 기꺼이 참여한 배우 이지훈을 비롯, 여러 배우들의 능력을 새삼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간 코미디 연기로 조연 역할을 많이 해온 이지훈은 <바다호랑이>에서 무게감을 단단히 잡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예전에 광고를 같이 찍은 인연이 있는 배우인데, 영화 주연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라며 정 감독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많이 작업해봤지만, 그렇게 깊은 감정을 꺼내 이야길 끌어가는 배우가 많지 않다"고 극찬했다. 김관홍 잠수사 유가족도 이지훈의 연기를 보고 실제 남편이자 아빠의 말투와 많이 닮았다며 공감했다.
"배우에게 자기 확인이 있고 없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실제로 배우가 믿으면 그게 고스란히 전달되더라. 마임 연기로 시나리오에 담긴 감정을 표현한다고? 이지훈 배우도 처음엔 의심하고 힘들어했지. 일단 테스트 촬영을 해보자며 수중 탐사 장면을 찍어봤다. 잠수복도 안 입고 그냥 일상복 입고 찍었는데 그것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배우 본인도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결과물을 보고 한시름 놨다."
<바다호랑이>는 오는 8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마지막 상영을 마치고 오는 6월 25일 개봉할 예정이다. 정윤철 감독은 "이 영화가 10만 명만 보아도 한국영화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시도로 많은 걸 배웠고, 이후 확장판을 만들지 여부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소재지만 그 현장으로 달려간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보편성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일을 제치고 현장에 간 분들이 겪는 트라우마엔 다들 관심이 없었다. <바다호랑이>는 그걸 다룬 최초의 영화다. 국가에서 그런 조력자를 방치하고 오히려 상처 주고 있다. 실제로 잠수사분들은 그 현장에서 쫓겨나면서 더 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트라우마를 겪게 되기도 했다. 선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정서적 교감과 유대가 필요하다."
▲지난 3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다호랑이> 현장,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 중인 정윤철 감독과 출연배우들.영화사침, 굿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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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영화를 왜 연극처럼 찍었냐고요?" 투자 난항에 감독이 내린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