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넷째 날인 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기자회견에서 배창호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넷째 날인 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기자회견에서 배창호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대기업 무역회사 직원에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원로가 되기까지 배창호 감독의 영화 여정은 대중과 작가주의 사이 어느 지점에 있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주요작과 함께 신작 다큐 <배창호의 클로즈업>이 한창 상영 중인 와중 3일 오전 전주시 완산구 중부비전센터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미 지난 2022년 데뷔 40주년 특별전을 치른 배창호 감독은 전주영화제에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황진이>(1986), <꿈>(1990), 그리고 <배창호의 클로즈업>을 소개하는 심경부터 전했다.

"<그해 겨울 따뜻했네>는 한국 전쟁 때 이산가족의 굴곡진 삶을 다룬다. 제 영화 중 가장 많이 울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황진이>는 시대극이지만 이야기는 압축하고 내면적인 것에 치중한 작품이다. <꿈>은 앞선 두 영화를 합친 작품이랄까. 이미지와 서사가 어우러진 작품이라 소개할 수 있겠다."

"자연 소중히 여기고 잘 표현해야 좋은 영화"

<여행>(2009) 이후 1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자전적 다큐멘터리 성격의 <배창호의 클로즈업>은 자신을 다루는 다큐 작업 제안을 수차례 거부한 뒤 어렵게 수락해 탄생한 작품. 배창호 연구로 학위를 받은 박장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인물 다큐가 해당 인물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물이 아닌 배창호 감독 영화 18편에 담긴 공간을 찾아다니는 영화를 만들자는 데 설득됐다고 한다.

배 감독은 "공간 또한 하나의 캐릭터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어왔다"며 치열하게 해당 지역과 공간을 탐미했음을 강조했다.

"언제부턴가 확 달라진 한국의 정경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특히 강원도 설경이 많이 없어졌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강원도를 찾는 촬영 팀들이 항상 있었는데 아름다운 하얀 벌판이 많이 사라졌다. 이번 작품으로 미국 데스벨리를 다시 찾게 됐는데 46년 전 <깊고 푸른 밤>을 찍었던 그곳은 그대로 보전돼 있더라. 지금이야 해외 로케를 가면 100명 규모의 스태프들이 가지만 그땐 외화를 아끼기 위해 12명이서만 갔다.

요즘의 많은 영화들은 배경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용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 먼곳까지 가서 찍을 필요가 있었나 싶은 경우가 있더라. 자연도 하나의 출연자고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자연 없이 살 수 없듯 말이다.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라는 영화는 지금도 회자되잖나. 보는 순간 사막 풍경에 압도된다. 아무리 영화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잘 표현해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작업을 15년 넘게 쉬는 와중이지만 배 감독은 여전한 연출 의지와 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개막식 파티에서도 세대가 한 번 더 바뀌었음을 느꼈는데 한 후배가 제 영화를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하더라"며 "저 또한 관객을 의식하며 작업하는데, 동시대 관객뿐만 아니라 몇십년 후 관객을 염두에 두며 일한다. 그게 영화의 생명력이자 가치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안톤 체호프가 그랬다. 소재는 무궁무진하고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저도 15년간 쉬고 있는데 시도를 왜 안 했겠나. 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불행히도 영화는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 그래서 이 시대엔 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졌다. 제가 개인 돈을 들여 찍은 작품도 있지만 이제 그럴 여유는 없고, 갈수록 대기업 및 투자자들과 타협점 찾기가 쉽지 않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도 창의성을 보장받는 게 어렵더라. 그 시스템에 적응은 했지만 순응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도 굳이 나보단 젊은 다른 감독들이 많으니 택하는 것이겠지."

최근까지 울주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며 전국 영화제를 다닐 정도로 건강이 양호하다. 배창호 감독은 "새 영화를 찍기 위해선 녹슬지 않는 이성과 감성이 중요하고, 체력 관리 또한 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간 배 감독의 영화 상당수는 소설가 고 최인호가 각본을 쓰고, 배우 안성기가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세 사람을 트로이카로 표현하는 기사 문구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최인호 작가님은 제 삶의 선배기도 하지만 제 대중성을 확보해주신 분이다 제 영화 18편 중 13편을 안성기씨와 했더라.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 속마음을 알 정도로 오랜 사이다. 이번에 (건강 문제로) 영화제에 참석 못 하신 걸 아쉽게 생각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상업성은 필요, 건전한 방식인지가 관건"

특별전 부제기도 한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배 감독은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지은 것인데 솔직히 영화로 실험했다는 생각은 안 하고 다만 새로운 시도는 하려는 편"이라며 "투자자들도 돈을 회수해야 하니 어느 정도 상업성은 필요하다. 다만 건전한 방식인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영화는 생수와 같다'. 배창호 감독의 평소 지론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선 해롭지 않다면 약간의 감미료는 필요하다는 데까지 왔다"며 그는 "시나리오 속 주인공을 내가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기에 감독직을 진지하게 여겨왔고, 막힐 때마다 사랑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다시 쓰곤 했다"고 전했다.

이어 "나의 결정에 운명이 정해지니 그만큼 중요한 자리잖나. 그래서 정답이 없기도 하고. 나도 영화 볼 때마다 우는 게 사랑 장면"이라며 "그 사랑에 반대되는 인간의 욕망을 넣어 사건 사고를 만드는 것 같다"라고 나름 분석했다.






배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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