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한 <너의 연애>의 홍보 사진.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한 <너의 연애>의 홍보 사진.웨이브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한 <너의 연애> 출연자 김리원씨가 '벗방' BJ 이력으로 온라인 괴롭힘을 당한 데 대해 5064개 개인·단체서 "사이버불링과 혐오 폭력에 맞서 김리원씨에게 연대한다"는 내용의 연서명을 발표했다.

해당 연서명은 지난 1일 한 개인이 제안해 시작됐는데, 단체가 아닌 개인이 시작한 연서명에 하루만에 5064명이 동의를 표한 건 굉장히 이례적이다. 연서명을 제안한 책 <퀴어돌로지>의 저자 연혜원씨는 2일 <오마이뉴스>에 연서명을 제안한 배경을 두고 "리원님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도 성노동을 했다는 이유로 낙인찍히고 사회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김리원씨는 지난 4월 29일 개인 인스타그램에 과거 자신이 "부적절한 방송"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사과했다. 그러나 김씨가 사과문을 게시하고도 김씨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괴롭힘은 계속 됐다. 김씨가 과거 '벗방'이라는 인터넷 성인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성적 지향을 의심하고 프로그램 하차와 통편집을 요구했다. 또한 당시 김씨가 진행한 '벗방' 영상이 온라인 상에 유포돼 또 다른 피해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괴롭힘은 김씨와 다른 출연자 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게 만들었다. 이에 <너의 연애> 제작사인 디스플레이컴퍼니는 1일 입장문을 통해 "(김리원씨와 관련해 온라인 상에서 제기되는) 사안은 현재까지 정황상 추측 이외의 명확히 입증된 바 없는 내용으로 제작진은 이로 인해 부정적 여론이 확대되길 바라지 않는다"라며 "당초 2일 (공개되기로 했던) 3, 4회 방송을 휴방하고 재정비 시간을 갖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김씨에 연대하겠다고 나선 이들은 연서명을 통해 "리원님은 과거 벗방BJ로 일했던 경험을 이유로 악의적인 폭로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동의 없이 이를 들춰내 영상이 불법적으로 유포되는 2차 가해로 이어졌다"라며 "이 사태는 단지 개인에 대한 호기심이나 '알 권리'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을 성적 도덕성의 잣대로 판단하고 통제해온 오랜 구조, 그리고 성노동자와 퀴어에게 가해지는 중첩된 낙인과 혐오의 연장선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에 성노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금의 삶이나 선택이 의심받거나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누가 타인의 삶을 들춰내 수치심을 들이대고, 존재의 자격을 판단할 수 있나?"라며 "리원님을 향한 사이버불링은 여성혐오, 성노동혐오, 그리고 퀴어혐오가 결합된 복합적 폭력이다. 우리는 이 폭력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여성-퀴어단체도 긴급 성명으로 대응 나서

여성인권 단체인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또한 2일 김씨와 관련한 온라인 괴롭힘에 성명서를 내고 대응에 나섰다. 한사성은 "지난 며칠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비롯한 공간에서 <너의 연애> 출연자를 겨냥한 집단적 공격이 격화되고 있다.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출연자가 '벗방' BJ였다는 경력이 이용되고 있다"라며 "'벗방'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그의 정체성과 사랑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그의 존재는 여성에게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사성은 이어 "시청자들은 실시간 후원금과 채팅으로 BJ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주문하고 평가하면서 '벗방'을 만들어간다. 이런 맥락에서 '벗방'은 '벗는 방송'이라기보다 '벗기는 방송'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라면서 "최근의 '벗방' 산업은 이 일이 여성의 오롯한 자유 의지로 선택됐다는 것을 계약서 등으로 증명해 자신의 무결함을 주장한다. 이로써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일은 여성의 몫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그가 '벗방' BJ를 했으므로, 그의 방송 영상을 공유하고 돌려보는 행위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지금의 무감각과 맞닿는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촬영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촬영했다고 하더라도, 동의 없이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한 폭력이다"라고 설명했다.

더해 "'벗방'을 한 여성이 아니라 '벗방'이 흥행하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문제 삼아야 한다. 성적 촬영물 자체의 소멸이 아니라 성을 기준으로 여성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여성혐오의 소멸을 바라야 한다. 여성의 위계를 증명하는 자료로서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그를 공격하는 행위를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1일 "'진짜' 레즈비언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존엄하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너의 연애>와 김리원씨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김씨가 현재 겪는 곤란을 설명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여성 성소수자들에게 '진정한 레즈비언이 맞느냐'는 식의 검증이 역설적으로 가해지곤 한다. 과거의 이성 교제 경험, 외모나 성적 표현, 직업 등을 근거로 정체성을 의심받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라며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일은 개인의 정체성이 항상 탐색의 과정 위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여성 성소수자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는 또다른 형태의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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