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어떨까. 뮤지컬 <이매지너리>는 바로 이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준'은 원하는 기억을 찾아 삭제하는 프로그램 '이매지너리'를 개발하고,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동생 '카이'는 형 앞에 나타나 이매지너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준은 고심 끝에 카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그렇게 이매지너리가 시작된다. 이후 카이의 기억 속을 돌아다니며 형제의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이매지너리>의 주된 내용이다.

2023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공연계의 주목을 받았고, 2024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를 거쳐 올해 정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공연계에서 흔치 않은 SF 장르의 뮤지컬로도 주목을 받았다.

이매지너리를 개발한 '준 베이커'로 강찬·임준혁·윤승우·조훈, 동생 '카이 베이커'로 동현·황민수·이휘종, 카이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리아' 역으로 방진의·이수빈·김주안이 분해 <이매지너리> 초연을 펼친다. 공연은 7월 6일까지 대학로의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3관에서 진행된다.

 뮤지컬 <이매지너리> 공연사진
뮤지컬 <이매지너리> 공연사진(주)이비컴퍼니

형제가 발견한 문제 해결의 퍼즐

"기억을 지워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준의 대사를 한참 동안 곱씹었다. 너무 아프거나 슬픈 기억, 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탓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그 일례일 것이다. 준이 개발한 '이매지너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카이는 이매지너리를 이용하기 위해 준을 찾아오지만, 처음에 준은 카이의 부탁을 거절한다. 이매지너리를 이용하고자 하는 대기자가 벌써 136명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만큼 극중에도 심적 고통이 큰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게다. 오늘날 사회에 대한 은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형이 좀처럼 이매지너리를 허락하지 않자, 동생 카이는 자신이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음을 밝힌다. 카이 역시 심적으로 큰 고통을 지닌 채 살아온 것이다. 이후 여러 일을 거쳐 결국 준은 카이에게 이매지너리를 허락한다.

'퍼즐'은 작품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다. 이매지너리를 통해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기억이 바로 퍼즐인데, 준과 카이는 바로 그 퍼즐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퍼즐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고, 그러던 중 '리아'라는 의문의 존재가 형제 앞에 나타난다. 아직 제거해야 할 기억을 확신하지 못하는 가운데 리아는 유력한 퍼즐로 여겨진다.

 뮤지컬 <이매지너리> 공연사진
뮤지컬 <이매지너리> 공연사진(주)이비컴퍼니

하지만 카이는 리아를 퍼즐로 여겨 제거하길 거부한다. 리아와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어가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기억 속을 유영한다. 그 끝에 카이는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형제는 서로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여기서 문제 해결 방식을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이전의 이매지너리 이용자들은 퍼즐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반면, 카이는 자칫 제거될 뻔한 퍼즐을 이용해 과거를 대면하고 진심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전자가 근시안적 해법이라면, 후자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퍼즐을 제거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퍼즐을 더 어울리는 자리에 맞추려는 노력이 바람직한 해법이다. 전체적인 퍼즐의 완성을 위해서도, 그리고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쯤에서 필자는, 그리고 우리가 퍼즐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비단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공동체적 문제에서도 말이다.

한편 <이매지너리>는 영상과 조명을 통해 SF 세계관을 그려낸다. 인물의 기억을 마치 우주처럼 표현한 기법이 특히 인상적이다. SF 장르의 영화들도 언급되곤 하는데, 평소 SF 장르에 친숙한 관객이라면 공연을 보다 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이매지너리> 공연사진
뮤지컬 <이매지너리> 공연사진(주)이비컴퍼니
공연 뮤지컬 이매지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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