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블 페이즈 5의 마지막 영화 <썬더볼츠*>가 4월 30일 공개되었다. 마블 시리즈는 지난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인기의 최고점을 찍은 바 있다. 당시 기준 장장 10년을 이어왔던 거대한 프로젝트 소위 인피니티 사가(페이즈 3)의 마무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디즈니 마블은 다음 장기 프로젝트로 '멀티 유니버스'를 선택했으나 이게 독이 됐다. 다중 우주라는 소재 자체가 제법 복잡한 개념인 데다가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은 이를 극복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어벤져스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마블은 꾸준히 새로운 캐릭터와 영화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이어가지 못하였다. 페이즈 4와 페이즈 5 영화들의 흥행성적은 저조하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원래 인기가 있었던 스파이더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데드풀 정도가 간신히 체면을 지켜냈다.
마블 전성기를 이끌었던 시리즈들 마저 이러한 형편인데 그에 비해 훨씬 인지도가 떨어지는 캐릭터들로 구성된 썬더볼츠*가 개봉한다니. 마블의 골수팬을 자처하는 나이지만 차마 기대를 할 수 없었다. 의리반, 의무감 반으로 예매를 하고 개봉일에 극장을 찾았다.
수십 번 본 오프닝, 뭔가 이상하다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익숙한 영화의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오고 마블의 로고가 떴다. 수십 번 보아온 오프닝 장면인데 뭔가 이상하다. 컬러감이 전혀 없는 흑백로고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썬더볼츠를 이루는 멤버들은 옐레나, 윈터솔져, 레드 가디언, 존워커, 고스트 그리고 밥(센트리). 이들 대부분이 과거 암살을 일삼던 비밀 요원이었거나 빌런이었다. 정의로운 영웅과는 거리가 먼 안티 히어로다.
그래서 굳이 기존의 마블 심벌과도 같은 붉은 로고가 아닌 흑백 로고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검은 혹은 짙은 어두운 회색은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극 중 배우들의 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공허'(보이드)와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어벤져스 멤버들과는 달리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능력치 또한 어벤져스에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각자 내면 깊은 곳에 회복되기 힘든 상처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내면 깊은 곳의 공허함은 썬더볼츠 멤버들의 공통분모였다. 옐레나는 암살자로 길러지느라 어린 나이에 살인을 경험했고, 윈터솔저와 레드 가디언은 인간 병기로 개조되느라 인체 실험을 당해야 했다. 고스트는 양자터널 사고로 인해 불치병에 걸려 고통 받았으며 존 워커는 차기 캡틴 아메리카가 되길 원했지만 열등감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우발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다.
가해자로 살아온 그들의 과거가 하나같이 피해자라는 흥미로운 설정. 이 부분은 이들과 대립점에 서게 되는 밥 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역시 트라우마의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겪은 심한 가정 폭력은 그를 약물 중독으로 내몰았다. 망가진 인생을 살아오다 우연한 기회에 센트리 프로젝트의 실험 대상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어두운 내면이 극대화되어 센트리, 더 나아가 보이드로 흑화하고 말았다.
센트리(밥)가 가진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비유하자면 옆동네 DC코믹스의 간판 히어로인 슈퍼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초능력을 사용하며 말도 안 되는 파워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영화라도 밸런스 파괴다.
썬더볼츠 멤버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영화 <썬더볼츠*> 스틸 이미지.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둠의 편에 서서 살아온 썬더볼츠 멤버들이 더 큰 어두움을 마주하게 된 상황. 이들은 절망 속에 빠져 다시금 각자의 트라우마에 괴로워한다. 비꼬기만 할 뿐, 서로를 별로 도울 생각이 없었던 그들. 어두움과 공허의 결정체와도 같은 막강한 센트리의 힘 앞에서 마침내 함께 연대하기에 이른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껴안으며 몸을 던진다. 사람을 죽이는 게 익숙했던 이들은 어느새 몸을 던져 센트리의 공격으로부터 시민들을 구해내기 시작했다. 영웅의 제일 조건은 겉으로 보이는 힘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듯했다.
진짜 영웅은 내면의 어둠이 아닌 빛을 선택할 때 탄생됨을 증명하는 영화다. 더불어 상처와 트라우마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도 짚어주고 있었다. 비인기 캐릭터들을 모아 어벤져스 못지 않은 감동과 재미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의 수작이다.
세상에 상처 없이 존재하는 인간은 없다. 모두가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필연적으로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 어둠의 보이드를 만들어내고 만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너무나 커져서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삶이 무너지기도 한다.
혼자서 깊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텅 빈 마음, 짙은 절망 가운데서 탈출할 수 유일한 방법은 내가 아닌 '우리'일 때만 가능하다. 영화 속 썬더볼츠 멤버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힘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실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일상을 살아가면서 의지할 것은 오직 '우리'라 부를 수 있는 공동체 뿐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결국 '함께'라는 빛이다. 공허함은 공동체만이 깨뜨릴 수 있다고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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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못지 않은 재미·감동, 마블 골수팬이 보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