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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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람들은 뭄바이를 가리켜 꿈의 도시라고 말한다 했다. 희망 없이 옛 방식으로 삶을 꾸리는 지방에서 청년들이 죄다 대도시로 올라와 성공을 꿈꾼다고 했다. 이촌향도, 등록하지 않고 뭄바이며 그 외곽일대에 사는 인구가 2000만 명을 훌쩍 넘는 뭄바이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도시로, 어마어마한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여 판자촌이며 쪽방 같은 온갖 허술한 거주형태가 다라비를 포함해 수개의 빈민촌에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인도 정부가 수십 년 간 수조원을 들여 진행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더 나은 주거형태를 보급하는 개선사업은 판판이 실패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 결과가 안틸리아와 다라비의 가깝고도 먼 이색적 공존이다.
수년이 흘러 항해사를 거쳐 다시 기자가 됐을 때 뭄바이를 비롯해 인도 서안의 항구도시들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좁은 땅에 바글바글 밀집해 살아가던 다라비 등 빈민촌에서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을 막아낼 순 없었을 터다. 통제는 완전히 실패했고 인도에선 하루 확진자만 30여만 명이 넘게 나왔다.
그때 인도를 들어가는 배들이 있었다. 선진국 배와 항해사들이 모두 기피하는 이곳을 한국 회사가 해외 선주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배와 그 배에 탄 한국인 뱃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나는 입항 뒤 감염돼 다른 어느 항구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바다 위에 방치된 뱃사람들의 고난이며, 심지어 죽음에 이르고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냉동고에 든 시신의 이야기를 수차례에 걸쳐 다루었다.
당시 내게 연락을 취해온 항해사들은 뭄바이를 비롯한 인도 항만의 상황 또한 생생히 전해줬는데, 뭄바이를 비롯해 세계 곳곳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본 일이 없었다면 도저히 믿기 어려웠을 이야기였다. 생전 처음 보는 질병,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 속에서도 업무에 투입되는 가난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 어떻게 표출되는지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도 제 나라 뱃사람을 그런 곳에 들여보내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원망도 함께.
내게 뭄바이는 그런 도시다. 2조 원을 훌쩍 넘는 주택에 한 가족이 살고, 그곳에서 내다보이는 거리에 펼쳐진 세계 최대의 빈민촌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장실과 수도 등 기초적 설비조차 미비한 가운데 살아가는 곳. 금융과 무역, 문화와 관광이 활발한 도시로, 누군가는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하고 다른 누구는 가난을 모른 채 살아가는 곳. 총 든 경비원이 지키는 스타벅스에서 잘 차려입은 이들이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창 바깥에선 열댓살이나 먹은 아이가 삼백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
사람들은 뭄바이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희망은 신기루처럼 부서져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위와 같은 풍경이었다.
뭄바이의 세 여성, 그들 앞에 펼쳐진 풍경
빛이 말하는 건 명확하다. 뭄바이가 상징하는 꿈과 희망 같은 것들. 그러나 그는 상상일 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던 것들이, 심지어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빛이 아니었다는 이야기. 영화의 제목이 곧 이 영화의 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는 뭄바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 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동료 간호사인 아누(디브야 프라바 분)와 함께 사는 그녀는 고향 어른들이 맺어준 남편과 결혼했으나 사실상 신혼도 보내지 못하고 뭄바이에서 지낸지 한참이다. 어느 날 집에서 불러 고향으로 가보니 날짜가 잡혀 있고 그대로 결혼식까지 올렸다는 것. 남편은 그대로 독일로 떠나 돈을 벌고 있다는데, 프라바는 뭄바이에 남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처음엔 전화도 얼마쯤 오갔으나 서로 서먹한 사이고 보니 차츰 줄어들어 연락두절 상태에 이르렀다고.
그리하여 프라바는 매일 열심히 환자를 돌보고 퇴근해 저녁을 먹고 쉬다가는 다시 출근하는 삶을 반복한다. 말 그대로 성실한 삶이지만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 건지 공허하기 짝이 없다. 간호사라는 안정된 직업에도 뭄바이에서의 노동임금은 그녀의 삶을 바꿔줄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 동료와 집세를 나누어 감당하기도 빠듯하니 하루하루를 버티며 약간의 잔고를 쌓는 정도에 만족할 뿐.
프라바에게 은근히 호감을 표하는 의사가 있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으니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 그럼에도 다정한 그에게 조금씩 마음이 가는 건 독수공방하는 젊은 여자의 입장에서 참작할 사유가 될 수가 있지 않을까.
영화는 프라바의 주변에 있는 다른 여성들의 삶 또한 조금씩 내보인다. 아누는 연애에 온 정신이 팔려 있다. 한창의 나이에 연애를 하는 거야 문제될 일이 아니지만, 다른 간호사들은 프라바에게 아누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전한다. 아누가 만나는 사내가 이슬람교를 믿는데, 그녀가 그를 감추고 남몰래 데이트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이 과연 그러해서 아누는 병원에서 멀찍이 떨어져 남자를 만나고 그와 데이트하는 데 적잖은 돈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이지 서로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사랑을 나눌 마땅한 장소가 없다. 왜 아닐까. 뭄바이에선 지난 수십 년 동안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폭력적으로 표출돼 왔다. 극단주의자들이 서로의 사원에 테러를 저질러 지금껏 수천 명이 사망했을 정도이니, 두 종교를 믿는 이들 사이의 감정도 좋지 않을 밖에 없다. 아누와 그 애인이 떳떳하게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숨어다니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자리한다.
남편이 죽으니 살던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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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조리사 파르바티(차야 카담 분)의 상황 또한 쉽지 않다. 그녀는 얼마 전 남편이 죽고 난 뒤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공식문서로 제 주거사실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데, 인도에선 공문서에 여성의 이름이 적히지 않기 때문이란다. 강제퇴거될 위기에 처한 파르바티를 프라바가 도우려하지만, 변호사까지도 손을 내저어 쉽지가 않다. 결국 거주이력을 증명할 수 없게 된 파르바티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뭄바이를 떠나기로 한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뭄바이에서 살아가던 세 여자가 마침내 뭄바이를 떠나게 되는 이야기다. 뭄바이에서 희망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마침내 그곳을 떠나서야 희망을 보는 이야기다. 프라바는 남편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결혼을 했다. 아누는 애인과의 관계를 주변에 감춰야만 한다. 파르바티는 제 터전마저 강제로 빼앗긴다.
그러나 이 모든 부당함이 어디 여성들만의 것이랴.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의 빠뜨릴 수 없는 미덕은 여성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편협하지 않은 시선으로 뭄바이의 여러 사람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너그럽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프라바를 좋아하는 의사는 힌디어를 하지 못한다. 뭄바이는 주로 힌디어를 쓰지만, 이 도시가 속한 마하슈트라주의 주 언어는 마라띠어다. 말하자면 주도와 주의 언어가 다른 난감한 상황인데, 경상북도와 대구의 표준어가 다른 꼴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테다. 때문에 이 의사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계약만 마친 뒤 뭄바이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말이 결정이지 반쯤은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그가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정 붙인 이가 프라바인데, 그녀 또한 원하지는 않았던(물론 거부하지도 않았던) 결혼으로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누의 애인도 꼭 아누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자기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가 나고 자라온 저의 온 세상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아누에게도 그런 결정을 강요할 수 없는 탓으로, 이들은 도망치고 숨을 뿐이다.
영화 막판 뭄바이를 떠나 마주하는 이들은 또 어떠한가. 마을에 제대로 된 의사는커녕, 의학과 보건지식이 있는 간호인력조차 마땅찮다. 경제와 문화, 제도 모두가 낙후된 곳에서 서서히 늙고 낡아가는 이들. 그러나 영화는 차라리 이들 사이에서 빛을 보고 희망을 말하기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그건 뭄바이의 실패가 아닌가.
영화가 충분히 그리지 못하는 풍경이 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데 앞서 내가 겪은 뭄바이, 긴 서론을 둔 것은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뭄바이는 커다란 도시이고, 2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터전이다. 한국 또한 산업적 견지에서 상시로 교통하는 요지다. 그를 통해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부, 그에 따르는 힘을 이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2025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해소되지 않은 빈민가의 문제, 가난과 범죄, 기초적인 인프라의 부족, 주변 도시의 역량을 빨아들이는 불균형과 불평등, 뿌리 깊은 종교와 민족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쉽게 해소할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파얄 카파디아는 첫 작품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으로 지난해 제77회 칸영화제에서 2등상 격인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를 수상했다. 칸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동시 석권한 션 베이커의 <아노라>가 지극히 부유한 이와 극명히 대비되는 가난 사이를 기발하게 오갔다면,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에선 부의 흔적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불과 10km가 되지 않는 거리에 극한의 부와 빈을 대비하고 있는 이 도시에서 나은 것을 배제한 채 못한 것을 내보인 선택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빛이 빛이 아님을, 10km의 거리는 끝내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이란 걸 이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내가 앉아 있던 뭄바이 스타벅스 안으로 저 바깥 넘쳐나는 가난한 이들이 감히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듯.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포스터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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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사랑 나눌 장소도 없는 곳... 여성들은 왜 그 도시를 탈출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