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스틸컷
M&M 인터내셔널
일하고 먹고 마시며 대화하고 산책하다 아버지가 사는 시골집을 찾아가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 나오는 배경 또한 일상적 공간이지 극적 공간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관객은 영화의 예고된 둠스데이, 즉 이별파티가 열리는 9월 22일의 결말을 궁금해하고 걱정하며 바라보게 된다. 알레와 알렉스, 이름마저 꼭 비슷한 이 커플이 서로 헤어져 맞지 않는 상대와 불행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으리라고, 아마도 틀림없이 그러하리라고, 그런 걱정들을 주제넘게 해보기도 할 테다.
말하자면 이들이 겪는 진통은 그 세부적 모습이 얼마쯤은 다를 지라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들에게까지 소구력이 있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세상을 사는 누구나 관계를 맺는다. 그 양상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저마다 삶 가운데 가장 가까운 이를 동반자로 두기를 꿈꾼다. 그와 같은 관계는 곧 삶을 대하는 자세, 철학과도 긴밀히 닿아 있는 것이어서 영화는 그저 어느 커플의 괴상한 행사를 넘어서는 의미에 마침내 다다른다. 대단한 철학은 아닐지라도 삶의 이정표가 되는 깨달음, 또 그를 향해 다가서는 사색의 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 얼마나 매력적인가. 보는 이를 사고하도록 한다는 게 말이다.
흔히 트루에바의 영화에서 거듭 엿보이는 자세, 극적 연출보다는 카메라를 멈춰두고 사람들의 일상 속 대화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가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에서도 두드러진다. 특별한 사건 대신 자연스레 변화하는 모습에 집중한다거나, 어느 순간 전환적인 결말로써 분위기를 환기하며 끝을 맺는 구성 또한 여전하다. 이 작품 또한 다분히 트루에바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영화의 각본을 두 주연배우 앗사소 아리나, 비토 산즈와 함께 집필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서로 다른 개성과 해석으로 저만의 캐릭터를 창조한 두 배우를 동등한 작가로 인정하며 군림하지 않고 평등한 지위에서 작품을 연출한다. 대화는 끝까지 이어진다. 그것이 본 줄기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을 때조차 카메라는 진득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응시한다.
세심한 관찰력은 곧 관객 앞에 서로 다른 살아 있는 인물은 물론, 공간과 온도, 소리까지 그대로 옮겨 펼쳐낸다. 그 안에서 느리지만 분명히 변화하는 인물들의 감상이, 그들이 빚어내는 관계의 형태가 이 영화의 독자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구석이 많은 영화이지만, 한국으로 들여오며 다소 무리한 번역을 거쳤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원제인 'Volveréis'는 스페인어로 '돌아올 거야'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테고, 영어제목인 'The Other Way Around'도 '반대로'란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국제목은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여서 두 제목보다도 이야기의 결말을 노골적으로 내보인다. 앞의 둘은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반면, 한국어 제목은 그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사색적 분위기의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포스터M&M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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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