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배우
NEW, 수필름
이혜영과 액션, 미묘한 관계성
-<파과>의 개봉 소감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액션 연기의 갈증이 있었을 때 마침 <파과>를 만났다. 평소에도 몸 쓰는 걸 좋아해 거리낌 없이 선택했다. 아마 감독님이 제 뮤지컬 공연을 보셨고 그때 액션 리듬감이 있다고 판단하신 거 같다. 액션의 경우 레퍼런스 영상이 있었고, 기초 트레이닝하고 합을 몇 번 맞췄는데 긍정적인 소리를 들어서 안심됐다. 투우 장면은 대부분 롱테이크로 촬영했고 대역 없이 다 제가 감당했다."
-둘의 독특한 설정, 이혜영과 호흡, 여성 원탑 장르 등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장르나 분량보다 '인물'이 중요하다. 조각이 60대 남성 킬러였어도 재미있게 촬영했을 거 같다. 둘의 관계는 케미스트리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미묘한 에너지가 흐르길 바랐다. 한 프레임 안에 잡혔을 때 둘이 외모를 떠나 품고 있던 에너지가 부딪히길 바랐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상대방에 맞춰 나갔을 뿐이다. 조각이 맨 처음 지하철 방역을 마치고 일지 쓰고 찰리 채플린 나오는 영화를 보는 표정, 제스처를 좋아한다. 흔히 아는 이혜영의 이미지, 카리스마 넘치고 결단력 있을 것 같은 성격, 지금까지의 세월이 응축된 1분이다. 그 짧은 순간의 힘에서 많은 걸 배웠다."
-액션 합도 맞춰야 했다. 또래가 아닌 대선배와 호흡이 쉽지 않았겠다.
"선배님과 어디선가 만날 수는 있겠지만 상대역으로 마주하는 건 상상했던 날 중에는 없었다. 보물 같은 존재이자 경외심이 드는 분과 깊고 길게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만 선배님의 액션 연기는 어떤 정보가 없으니까 감이 안 왔다. 액션 스쿨에서 합도 맞춰 봤지만 감정이 들어가면 또 달라져서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촬영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제가 리드하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 폐건물에서 촬영이 중요했다. 조각은 부상을 당한 상태고 투우는 완전한 상태니 컨트롤하면서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 특히 액션은 나보다 상대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연기하게 된다. 감정 연기는 정신적인 문제고 액션 연기는 신체적인 문제인데 <파과>는 둘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한여름 더위와도 싸워야 했지, 땀에 피 칠갑도 해야 했지, 아역 배우와 선생님 둘 사이에서 케어도 해야 했지, 액션도 해야 했지. 힘들기는 했다. (웃음)"
-조각을 향한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 인물 '투우'를 어떻게 해석했나.
"투우는 목표는 없는데 목적은 있다. 삶의 이유가 조각이다. 엄마의 부재, 아빠의 폭력, 학대도 당해 마더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로 보일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해 무언가에 집착하는 인물로 생각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지 보다, 조각을 찾겠다는 의지만 있는 인물이다. 주변도 못 보게 되고 살인의 죄책감도 없다. 킬러가 되고 조각을 만나기까지 25년 동안 스스로를 달래며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속내를 알 수 없는 투우를 빌드업했던 과정도 궁금하다.
"투우는 마지막 장면을 위해 2시간을 달려야 했다. 어떤 일을 하든 기초, 기본을 중요시하는데 투우는 기둥이 탄탄하고 좋은 품질의 콘크리트로 구축한 인물이고 싶었다. 특히 조각을 향한 감정을 숨겨야 했다. 관객의 물음표를 지속적으로 유발해야 했다. 그렇다고 호기심만 있으면 재미없으니까,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생각한 투우는 첫째, 변장이나 연기도 능숙한 타입이다. 오프닝에서 어리숙해 보이는 대학생을 연기하는 것도 임팩트를 주면서 등장하려는 의도였다. 이렇게 관객을 속이고 투우만의 감정을 끌고 가야 했다. 그래서 투우와 조각이 처음 만날 때 행동, 언어, 말투의 톤 앤 매너를 조절하며 접근했다. 최종적으로는 편집되었지만. 조각이 자리를 떠났을 때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도 서글프게 우는 장면, 주저앉는 장면 여러 버전으로 준비했었다."
-강 선생(연우진)을 만나는 장면에서 숨겼던 투우의 감정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순한 질투는 아니다. 투우는 25년 동안 조각과 마주했을 때를 상상했을 거다. 거듭 '못 알아보면 어떻게'라며 걱정했을 텐데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니 감정이 들끓는 거다. 타인에게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는데 사실은 아니라는 걸 안 거다. 강 선생을 향한 조각의 행동, 속내를 애써 확인하려 든다. 투우 입장에서 보면 강 선생은 평범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데 대체 무슨 이유로 조각이 신경 쓰나 싶었을 거다. 자기 회환도 있었을 테고, 자길 봐주지 않고 강 선생에게 관심 주는 조각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많이 고민했다."
-민규동 감독의 현장은 어땠나.
"감독님이 원하는 투우와 분위기를 맞추는 작업을 해나갔다. 조각과 처음 신성 방영에서 만났을 때의 반응을 관객에게 20%만 알려주자고 하셨다. (웃음) 저는 연기 기술자니까 20%만 알려주라는 디렉팅에 눈썹을 올려보기도 하고, 눈동자를 굴려보기도 했다. (웃음) 25년 동안 쫓았던 인물을 처음 마주하는 거니까 신중하게 연기했다. 감독님이 가끔 생각에 빠져 컷을 안 할 때가 있다. 창작하는 것도 즐기는데 늘 새로운 장면, 신선함을 찾고 계시더라. 그런 점이 저랑도 잘 맞았고 생경한 단어로 말씀하셔서 바로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는데 그 부분도 신기했다."
-영화 속에서는 조각의 전사만 있지 투우 전사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투우는 25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을지 상상해 봤나.
"투우의 전사가 여러 버전이 있었다. 정신 병원에서 3-4년 갇혀 있다가 탈출한, 미쳐 버린 상태로 설정했다. 그 일 이후 어디론가 입양을 갔는데 가족과 트러블이 생겨서 다 죽여 버리고 도망갔다가 미국 특수부대에 들어가서 격투 기술을 배웠을 거다. 용병 생활하다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설정 등이 있었다."
"영화관으로 관객 돌아올 거라 믿어"
▲김성철 배우NEW, 수필름
-<지옥> 인터뷰 때 배우로서 장르적 쓰임새를 찾고 싶다고 했다. <댓글부대>, <지옥>,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에 이어 <파과>에서도 어둡고 짙은 배역을 연이어 하게 됐다.
"대학 다닐 때부터 그랬다. 저 친구는 왜 꼬여 있을까. 왜 저럴까 궁금증이 드는 캐릭터를 좋아했다. 어릴 때 연기 학원에 갔었는데 첫 대사에 제 안의 모든 화와 울분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놀라움이었다. 사랑받고 잘 자랐는데 내면에서 무언가가 나오더라. (웃음) 선천적으로 감정이 많은 타입이라 그런지 결핍 많은 인물은 연기해 내는 게 재미있다. 그런 친구들은 일단 감정선이 깊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칠흑을 걷는 기분인 거다. 하지만 배우는 캐릭터에 따라 이미지가 결정되기도 하니까. 계속 폐쇄적인 캐릭터만 추구하지는 않을 거고 선하고 재미있는 것도 계속하고 싶다."
-영화, 드라마, 시리즈, 뮤지컬을 넘나들며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각자 어떤 식으로 에너지를 쓰나.
"매체마다 매력이 있다. 3시간 동안 라이브로 에너지를 쭉 쓸 수 있는 공연은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만나는 기회라 행복하다. 시리즈는 촬영 기간이 길어서 함께한 스태프와 친구, 가족처럼 지내게 되니 좋다. 또 매주 혹은 한 번에 풀리는 회차 때문에 기다리는 즐거움이 크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연기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또 스태프나 감독님과 대화할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아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계가 힘든 상황이다. 한국 영화, 극장의 애정이 남아 있는 관객에게 <파과>를 어필한다면.
"영화계가 어렵다는 건 이제 대중도 다 알고 있어서인지 약간의 연민이 생기는 거 같다. 1, 2년 전만 해도 관객은 영화계가 힘들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다. 영화 볼 플랫폼이 여럿 생기니까 크게 와닿지 않았던 거 같다. 이제는 개봉하는 영화도 줄었고 크게 흥행하는 영화도 없으니 체감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영화를 살리자는 의식을 갖게 될 것 같아 희망을 품고 있다. 영화가 오래된 미디어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 데이트 코스도 무조건 영화관이던 시절이 있었잖냐. 다시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그래서 <파과>는 꼭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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