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기대했다. '내란', 두 글자가 붙은 첫 영화가 아닌가. 언제나 그렇듯 처음은 의미 있는 법이다. 윤석열의 12·3 내란사태를 일부나마 다룬 작품으로, 지난 몇 년 간 한국사 주요한 지점을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꾸준히 발표해온 '뉴스타파'가 만들었단 점에서 기대가 컸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 이야기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또 윤석열 정부와 유독 인연이 깊다. 어쩌면 그의 등장부터 패망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임기 중 특정한 시점까지는 가장 깊이 엮인 언론이라 보아도 좋을 테다. 문재인 정권 검찰총장 후보자로 검찰개혁의 사명을 띠고 청문회 자리에 섰던 윤석열이다. 이 자리에서 과거 있었던 '변호사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거짓말 검증 보도로 뉴스타파는 그와 첫 관계를 맺었다.
부장검사 시절이던 2012년,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법을 어겨가며 대검 중수부 출신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사건이다. 청문회 자리에서 윤석열은 이 사실을 부인했으나 한상진 기자와 과거 나눈 통화에서 이를 인정했던 녹음파일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법질서를 수호하고 검찰을 개혁해야 할 중임을 맡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후보자가 법을 어긴 건 물론 검증자리에서 거짓말을 한 사실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논란을 딛고 임명을 강행했다.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됐다. 민주적 질서는 훼손됐다. 정치는 극단적으로 분열돼 민생을 돌아보지 않았다. 외교는 편향돼 국익을 팽개쳤다. 경제는 퇴보했고 시장을 활력을 잃었으며 산업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거부권을 남용해 국회, 나아가 국민과 대립했다. 방송통신위원회 파행운영 등 가뜩이나 망가져 있던 언론을 더욱 비루하게 만들었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포스터
영화로운 형제
비판 언론사와 전쟁 벌인 윤석열 정부
'뉴스타파'는 윤석열 정권 들어 탄압받은 대표적 언론이다. 전술한 변호사법 위반부터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소속으로 부산저축은행의 대장동 불법대출 사건을 주임검사로 수사하며 사실상 고의로 수사를 망쳤다는 의혹 등을 꾸준히 추가 보도했다. 전자는 '신동아' 출신 한상진이 뉴스타파에서 한 것이고, 후자는 'JTBC' 출신 봉지욱이 전 회사에서 보도한 것을 뉴스타파에 합류한 뒤 이어서 진행한 것이다.
어리석은 자일수록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윤석열이 꼭 그러했다. 소위 '바이든-날리면' 사건으로 'MBC'에 추잡한 보복을 한 정부는 검찰을 동원해, JTBC와 연이은 비판보도로 눈에 가시가 된 뉴스타파를 동시에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한상진, 봉지욱 기자의 집까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돼 충격을 던졌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보도한 '더탐사'도 8개월 간 15차례나 압수수색을 받았다. 비판보도를 한 언론사에 압수수색으로 대응하는 정부라니, 공개된 보도의 성질을 감안할 때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가 전두환 신군부 시절로 퇴행하는 꼴이 아닌가 말이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이 겨냥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대통령 파면으로 퇴보하던 3년여의 시간을 어떻게든 멈춰 세우는 데 성공한 오늘, 가장 큰 위기였던 12·3 내란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파행으로 치닫던 국정운영이 내란 모의와 부당한 계엄령 발동, 국회에서의 저지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뉴스타파 기자들의 입을 통해 증언한다. 전술한 김용진 전 대표와 한상진, 봉지욱 기자가 그들로, 영화는 윤석열 정부로부터 탄압받은 이들 세 명의 언론인을 카메라 앞에 세워 그들이 건너온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스틸컷
영화로운 형제
내란으로 시작해 압수수색에 이르는 길
내란은 내란이고, 압수수색은 압수수색이다. 기실 내란은 영화를 보는 관객, 나아가 잠재적 관객인 다수 대중에게 관심이 큰 현재적 주제다. 반면 압수수색, 그것도 전체 언론 중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뉴스타파에 대한 압수수색은 일반 관객에겐 큰 관심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둘 사이엔 발생한 시기부터 주체와 객체, 직접적 관련성 등 많은 부분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메우고 연결 짓고자 한다. 영화의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압수수색을 내란의 시작점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약일 수 있겠다. 내란 가운데 언론, 그것도 뉴스타파에 대한 압수수색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윤석열이 내란에 이르기까지의 심경과 그에 영향을 미친 정보 또한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은 여전히 법원에서 적법성을 다투고 있는 법률에 따른 절차이고, 내란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란 결정을 받아낸 별도의 사안이기도 하다. 영화가 내란과 압수수색 사이를 메우고자 한다면 그 사이의 관련성을 입증하거나 적어도 독자적으로 합리적인 논리를 전개해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그 쉽지 않은 과제를 영화는 111분의 러닝타임 동안 병렬적 인터뷰 연결을 통해 시도한다.
영화 전반부는 윤석열과 뉴스타파가 어떻게 관련 맺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전술한 두 가지 보도와 그 파급, 정권의 대응까지가 하나하나 상세히 재구성된다. 다른 언론은 배제하고 뉴스타파, 그중에서도 위 세 명의 언론인에 집중하여 이들이 겪은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스틸컷
영화로운 형제
잔뜩 공들인 연출, 그러나 멋이 없다
중반은 뉴스타파에 이뤄진 압수수색을 내보이는 것이다. 언론사는 물론, 개별 기자의 자택을 대상으로 발부된 영장과 집행을 당시 찍은 영상을 통해 내보인다. 당시 언론인이 느낀 심경 또한 인터뷰로 덧붙는다. 한상진 기자는 눈물까지 보인다. 압수수색에서 그치지 않고 검찰에 출두해 받은 조사 또한 이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된다. 개중에선 검찰조사의 부당함과 폭력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 또한 상당하다.
이를테면 한상진 기자가 지인과 사적으로 나눈 문자를 두고서 실랑이를 벌였다는 대목, 수 시간 동안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진을 뺀 뒤 검찰을 나와 빗속에서 우산조차 들 힘이 없어 우산을 놓고 층계에 주저앉아버렸다는 이야기는 그 생생한 표정과 목소리로 감정적으로 전달된다.
물론 이와 같은 소수 인물들의 인터뷰를 횡적으로 연결한 구성, 또 뉴스타파 스스로가 저들 자신의 이야기를 지극히 감정적인 인터뷰를 묶어가며 다큐로 제작한 점 등에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후반부 다분히 카메라를 의식하며 쏟아낸 듯한 잔뜩 힘 들어간 대사들은 어느 정도는 유쾌하게 받아넘기더라도 너무 많아서 민망하기만 하다. 세 기자를 마치 활극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묘사하는 연출도 그렇다. 나와 같이 뉴스타파 보도를 꾸준히 접하고 그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러했으니 그렇지 않은 이에겐 더할 것이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스틸컷영화로운 형제
'뉴스타파'가 말하는 '뉴스타파' 이야기
영화 속 새로운 이야기가 얼마 없다는 점도 문제다. 기 뉴스타파 보도, 또 일련의 관련 보도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온 이들에겐 새로운 사실이 거의 없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느린 템포로 오랫동안 전개돼 지루하게 느껴질 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압수수색과 내란이라는 서로 다른 두 문제를 무리하게 엮는 데서 오는 구조적 결함이다. 내란을 포기하지 못한 탓으로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이 가진 문제에 본질적이고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다큐는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다.
주역인 세 인물을 제하고 서로 다른 문제로 탄압당한 다른 언론사의 사정을 조명했다면 어떠했을까. 이들 외 뉴스타파 구성원의 목소리를 더 담았다면 어땠을까. 당사자성을 벗어나 치우친 시각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는 고민이 있었다면 또 어떠했을까.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엔 그와 같은 고민은커녕 의문점마저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지난 시간을 관심을 갖고 지켜봤고, 심정적으로도 상당히 지지해온 내가 이 영화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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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윤석열 언론탄압 조명한 '뉴스타파', 이건 불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