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관련 소식을 듣기 어려우나 글 쓰는 벗들 사이에서 뜨거운 소식 하나가 있다. 에르베 르 텔리에가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소설창작 대결을 벌인 것과 관련한 내용이다. 프랑스 잡지 '누벨옵스(Le Nouvel Obs)'를 통해 벌인 이 대결은 3000자 분량 짤막한 단편소설을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정해진 상태에서 각자 쓰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AI 전문가가 챗GPT와 클로드를 활용해 정교한 프롬프트로 제작한 작품 두 편이 제출됐고, 에르베 르 텔리에 또한 제 작품을 썼다.
에르베 르 텔리에가 무너지는 일은 물론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사전에 예상한 수준을 상회하는 작품이 나왔단 건 놀랄 만한 일이다. 에르베 르 텔리에는 "작가들이 앞으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면 '양말 짜서 나오는 물' 같은 글이 아니라 정말 잘 써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프랑스 최고의 소설가, 아무리 낮게 잡아도 당대 최고 수준의 작가라 불러야 할 에르베 르 텔리에다. 그가 감탄할 정도 되는 작품을 인공지능이 내놓기 시작한 사실은 글 쓰는 이들 사이에서 그 자체로 충격이다. 수초 만에 이미지생성 AI인 Dall·E가 내놓는 지브리 색채 그림을 바라보는 애니메이터들의 감상을 우리 글쟁이들이 느낄 때가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이다.
문단에선 인간다운 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학적 멋이 있는 문장을 알아보는 독자는 꾸준히 줄어들어 채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서사는 소설 가운데 인간이 AI에게 가장 쉽게 따라잡힐 수 있는 항목이 아닌가. 에르베 르 텔리에를 비롯하여 작가들은 클리셰를 벗어난 표현과 철학이 담긴 주제의식 등에서 차이를 발굴하려 하지만, 그들조차도 인간 작가 상당수가 뼈와 살로 이뤄진 물리적 인간이란 점 말고는 AI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량을 갖추지 못했단 걸 안다.
▲라르고 윈치: 프라이스 오브 머니포스터
풍경소리
할리우드에 대항하는 프랑스 블록버스터
어디 문단 만이랴. 이야기로 승부하는 건 영화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사건이 벌어지고 그에 휘말린 인간들의 좌충우돌 볼 만한 이야기를 다루는 건 오늘의 상업영화, 가장 보통의 전개라 해도 좋다. 뻔한 이야기, 즉 클리셰의 반복을 피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감동을 느끼도록 하는 일에 오늘의 영화 창작자들 또한 매달리고 있는 일이다.
문학이, 또 다른 많은 예술 분과에서 그러하듯, 영화 또한 소수의 걸작과 대다수의 범작, 또 그만큼 많은 졸작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다. 개중에선 에르베 르 텔리에가 말한 것처럼 '양말 짜서 나오는 물' 같은 이야기를 억지로 짜내 영상화한 것들도 부지기수다. AI가 써낸 것과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구성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라르고 윈치: 프라이스 오브 머니>는 2009년부터 제작된 <라르고 윈치> 시리즈 세 번째 영화다. 프랑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시리즈는 앞선 두 편을 감독한 제로미 셀레에 이어 올리비에 마세-드파스에게 감독직을 맡기고 야심찬 반전을 도모한다. 성공한 프랑스 만화를 바탕으로 2000년 드라마가 제작됐고, 실사영화로도 세 편째 나왔으니 성공했구나 싶을 수도 있겠다. 실상은 딴판으로 첫 편만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뿐,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참담한 실패와 마주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영화계가 <라르고 윈치> 시리즈에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할리우드 대자본이 든 블록버스터 앞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프랑스 영화계가 21세기 초 야심차게 제작한 프랑스식 블록버스터가 연달아 침몰한 뒤 오랜만에 등장한 독자적 액션 블록버스터인 탓이겠다.
▲라르고 윈치: 프라이스 오브 머니스틸컷
풍경소리
프랑스판 '배트맨', 반전을 도모하다
뱅상 카셀을 앞세운 <늑대의 후예들>과 <크림슨 리버>가 남긴 상처를 프랑스 영화계는 선명히 기억한다. 이들 작품에서 프랑스는 할리우드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격차를 내보였다. 더욱 상심하게 하는 것은 그 격차가 비단 기술력에 한정되지 않았단 점이었다. 이야기, 창작극을 지탱하는 플롯과 구성, 주제의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프랑스 영화는 할리우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라르고 윈치> 시리즈는 프랑스 영화계가 반전을 도모하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드라마와 코미디, 각종 소극 뿐, 할리우드에 대항할 만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프랑스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바탕으로 영화화가 이뤄졌으니 잘 키워 장기적 프로젝트로 만들겠단 욕구가 생길 밖에 없다.
가만 보면 구성이 어딘지 <배트맨> 시리즈와도 닮아 있는 듯하다. 거친 세계를 전전하던 사나이 라르고가 굴지의 기업인 W그룹 총수의 양자로 입양되고 후계자 수업을 받아 훌륭한 기업인이 되고자 하지만 온갖 음모가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양아버지의 비극적 죽음과 그에 대한 상처를 감당해야 하는 라르고의 이야기, 나아가 그 죽음을 초래한 이가 훗날의 악역이 된다는 점에서 어딘지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선한 재벌과 악한 소시민의 대립구도부터, 겉으로는 경영자이지만 실제로는 격투에 특화된 인물이란 점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같은 만화 기반 영화이고 확고한 팬층도 있었던 만큼, <라르고 윈치>가 <배트맨> 시리즈 같은 작품이 되어주길 바란 건 결코 욕심만은 아니었을 테다.
▲라르고 윈치: 프라이스 오브 머니스틸컷
풍경소리
CG에 기댄 액션... 격투도 진심도 없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할 뿐이다. 투입한 자본부터 제임스 프랭코 같은 유명 배우를 악역으로 기용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거의 전면적으로 조악한 만듦새를 드러낸다. 추격전부터 단순 격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액션신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를 주도적이며 창의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기량을 영화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채택한 것이 컴퓨터그래픽(CG)인데, 활용빈도가 너무 잦은 나머지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데 비해 과도한 액션을 삽입한 결과는 독으로 작용한다. CG기술로 점철된 장면의 연결은 CG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긍정적 감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추격은 긴박하지 않고 액션은 파괴적이지 않다. 영화 속 벌어지는 일이 진짜가 아니란 걸, 진짜를 진짜 흉내 내지 않고 꾸며냈을 뿐이란 것을 관객이 아는 탓이다.
영화는 필요한 일을 죄다 쉽게만 풀어간다. 합과 동선을 맞추어 인물들이 격투를 벌이는 대신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간단히 승패를 낸다. 이기고 지는 과정 대신 이기고 진 결과를 보여주었으니 되지 않았냐는 식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전기충격기는 이 인물, 저 인물을 옮겨가며 동선과 액션연출이 곤란해질 때마다 등장해 문제를 단박에 해소한다. 전기충격기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때로는 도구가, 때로는 인물이 쉬운 선택지가 된다. 비슷한 방식이 되풀이되는 동안 관객은 가장 빠르고 간편한 방식으로 <라르고 윈치: 프라이스 오브 머니>를 섭취한 듯한 기분과 마주한다.
실망스런 건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액션영화의 일반적인 구조를 그대로 채택한다. 소위 클리셰의 향연이 펼쳐진다. 음모가 드러나고 배신이 이어지고 악당의 사연이 펼쳐지며 마침내는 반전에 도달하는 일련의 이야기가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수없이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을 일으킨다.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는 장면부터 도움을 줄 인연을 만나는 것, 배신을 당하고 위기를 겪는 내용까지 하나하나 다른 작품에서 원형을 길어올릴 수 있을 정도다. 아들을 납치당해 범인을 쫓는다는 설정은 <테이큰> 류의 영화에서 흔히 마주한 것이고, 내부자와 결탁해 기업을 탈취하려는 시도며 안심할 수 있는 벗들을 찾아 동남아 어느 수중가옥에 드는 것까지가 여기저기서 자주 만나본 것들이다.
▲라르고 윈치: 프라이스 오브 머니스틸컷풍경소리
인간 작가가 나아갈 길... 클리셰로부터 벗어나야
전형적 구조를 채택한 영화는 필연적 귀결로 내달린다. 배우들이 슬퍼하고 화를 내며 기뻐하고 감동하는 장면은 하나같이 정말 그러해서가 아닌 그래야만 해서인 듯 느껴진다. 예고된 결말로 내달리기 위해 배우들이 웃고 눈물짓고 괴로움에 얼굴을 찌푸리는 동안 관객은 그를 무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관객에게 납득시키지도 공감하게 하지도 못한 채로 배우들은 필요한 희로애락을 하나둘 겪어낸 뒤 예고된 결말까지 나아간다.
<라르고 윈치: 프라이스 오브 머니>는 쉽게 쓴 글, 편히 만든 영화가 갖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노정한다. 인물과 인물 간 격투의 합과 동선을 짜는 일부터 추격하는 이들을 촬영하는 방식, 각 캐릭터가 오늘의 선택에 이른 나름의 이유 등 하나하나 고민이 드는 문제를 간편히 해결하려 든다. 영화를 만들어야 해서 영화를 만들었고, 액션을 찍기로 해서 액션을 넣었으며, 적당히 필요해서 드라마를 삽입했단 것 말고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뵈는 선택이 반복된다.
에르베 르 텔리에는 AI가 쓴 글을 마주한 뒤 '양말 짜서 나오는 물' 같은 글로는 승산이 없다고 말했다. 진짜 잘 써야만 한다고 했다. 기계와 다른 고심, 끝없이 회의하고 고민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려 발버둥치는 태도가 인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그런 태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AI가 창작에 있어 흔히 드러내는 문제는 클리셰를 고심 없이 받아들인단 거다. 그와 같은 문제가 에르베 르 텔리에와의 경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했다. 클리셰는 곧 쉬운 선택의 증거다. 예정된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남이 수없이 반복한 선택을 그대로 따르는 것, 고민 없는 선택의 발자국이 곧 클리셰다.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정수가 아닌, 양말 짜서 나오는 물 같은 무엇이다. AI 창작자들과 경쟁해야 할 오늘의 인간 작가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클리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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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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