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척스카이돔 전광판.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키움히어로즈
야구는 이제 단순한 경기가 아니다. 종합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시구, 시타, 중계 카메라 연출, 팬 이벤트, SNS 콘텐츠 제작까지 모두 '패키지'로 묶여 하나의 상품으로 판매된다.
그러나 이 화려한 패키지의 제작자는 대부분 외부 인력이다. '야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야구장 바깥에서 소모되고 있다. 구단은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브랜드를 지탱하는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은 팬들에게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이름은 없다. 그들의 노동은 공식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구단 전광판 오퍼레이팅을 담당했던 C씨는 필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구단은 우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했다. 전문지식과 정확성이 필요하지만 계약직이어서 경력을 쌓지 못하고 고용 불안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
C씨는 "전광판을 담당하는 이들은 한국야구위원회(KBO) 기록위원과 합을 잘 맞춰야 하고, 경기 규칙, 선수 이름 등 야구에 관한 많은 것도 알아야 한다"라며 "우리 모두가 담당하는 팀에 애정이 있어서 박봉임에도 공부도 따로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계약기간 2년이 다 되어 갈 때면 불안해진다. 씁쓸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들을 '비정규', '하청'으로만 관리하는 한, 산업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낮은 처우, 불안정한 고용, 책임 회피 구조는 결국 팬 경험의 질과 경기 산업 전체의 신뢰성을 갉아먹는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일부 직무에 대해 직접 고용을 하고 있다. 오타니 쇼헤이가 뛰고 있는 'LA다저스'의 경우, '블루 크루'라는 명칭으로 경기장 내 이벤트 진행, 팬과의 교감, 사진 촬영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구단 마케팅 부서로 직접 고용된다. 또 일부 해외 구단은 직접 고용 대신, 하청업체에 대해 최소한의 근로기준 준수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을 삽입하고 있다. '책임의 외주화'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해 한 프로야구단 관계자는 기자에게 "리그의 규모 차이 아닐까 싶다. 미국 같은 경우는 규모가 워낙 크지 않나. 반면, 우리나라 작은 리그들은 여전히 구단 직원 한 명이 운영도 담당하고, 경기 중엔 전광판도 돌리고, 조명도 켠다"라고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규모가 MLB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뜻이다.
이어 "프로야구의 경우, 경기가 아무리 길어봤자 3월부터 10월까지만이지 않나. 이들 모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면 경기가 열리지 않는 4달 간의 비시즌 동안 월급 지급 부담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한국 프로야구 역시 질문하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 야구를 만드는 사람들을 '하청'에만 맡겨도 좋은가. 팬이 경기를 소비하는 이유는 '구단'에 대한 사랑과 신뢰 때문이다. 그 신뢰를 진정 지키려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동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프로야구는 팬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구단이 '팬 경험'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경험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야구를 사랑한다면, 야구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도 존중해야 한다. '하청'만으로는 프로야구의 미래를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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