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 PD로그 >의 한 장면.
EBS
- 완도 용암리로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어느 날 우연히 기사 하나를 보게 됐어요. 평균 연령 69세의 작은 어촌 마을에 20대 여자 이장이 있다는 내용이었죠.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마을 어르신들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그 이야기를 꼭 직접 만나 듣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쳅터별로 나눠 이야기를 구성했던데.
"이장의 삶을 단순히 '하루 일과'처럼 나열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장의 일상은 시간 단위로 구분되기보다 감정과 관계, 상황의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거든요. 어떤 날은 긴급한 민원으로 시작되고, 또 어떤 날은 행정 회의, 또는 마을 잔치 준비로 하루가 가요.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시청자분들도 '아, 이장의 삶은 이렇게 촘촘하고 다층적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골 마을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공간이에요. 그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않고, 각각의 챕터에 중심을 두고 구성하고 싶었어요. 결국 저는 '이장의 하루'가 아닌 '이장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 처음 용암리 갔을 때 어땠나요?
"가장 먼저 마을 어르신들께 '면접'을 봤습니다. 이장 역할을 맡기 전에 마을 공동체의 동의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순간 당황도 했지만, 그 모습마저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마치 마을 가족으로 들어가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었달까요. 다행히 '합격'을 받고 명예 이장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시골이라 어르신이 거의 대부분인데, 어렵진 않았나요?
"처음엔 솔직히 긴장을 많이 했어요. 어르신들과 깊이 소통해 본 경험도 많지 않았고, 처음 뵙는 분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제 모습을 꾸미게 되더라고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오히려 벽이 된 거죠. 그날 저녁, 유솔 이장님께 제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자꾸 꾸며진 모습으로 어르신들을 대하게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꾸며진 모습으로 다가가면, 어르신들도 그렇게 응대하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드려야 진짜 관계가 생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이후부터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가가 보려 했어요. 카메라가 꺼진 순간에도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불편한 건 없는지 살피기도 했죠. 유솔 이장님이 '경로당에서 밥을 먹어야 진짜 친해질 수 있다'고 해서 경로당에서 매 끼니를 함께 했어요. 물론 설거지는 제 몫이었지만요. 그렇게 함께 밥을 먹고, 웃고, 설거지까지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게 느껴졌어요."
- 완도 이장 회의에도 참석하셨더라고요.
"'유솔 이장님,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50대부터 80대까지 쟁쟁한 이장님들 사이에서 유일한 20대. 그 안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마을 대표로서 지원 사업 내용부터 예산 항목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챙기고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 내용들을 다시 마을에 전달하고, 해당 사업에 맞는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설명하고 도와드리는 모습에서 '이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진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참고로 이장님의 월급은 이번에 인상돼서도 40만 원이에요. 주말, 평일 가릴 것 없이 마을을 챙기고, 늘 대기 상태로 움직여야 하는 이 역할을 그 돈으로 감당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인지 유솔 이장님을 보면 책임감이나 봉사 정신, 그리고 마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최현선 PD.EBS홍보부
-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청산도로 나들이도 가셨더라고요.
"정말 부담이 컸습니다. 사실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가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더 책임감이 큰 일이더라고요. 단순히 이동을 돕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들의 안전과 편안함, 더 나아가 그날 하루가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어르신들이 체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실까 봐 걱정도 되었고, 특히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청산도가 언덕도 많고, 길도 험한 곳이 많아서 이동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챙겨야 했어요.
특히 어르신 대부분이 '청산도는 처음 가본다'고 하셨을 때 더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배로 50분 정도 걸리는 섬이라 사실 자주 가실 법도 한데 팔십 평생 완도에 사시면서 청산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분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그날 나들이가 끝나고 돌아오셔서 자녀분들에게 자랑하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 일주일 용암리 이장직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나요?
"유솔 이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이장은 마을의 난간 같은 존재다'라는 말이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고요. 마을 곳곳에는 난간이 굉장히 많거든요. 대부분 집은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있고, 어르신들은 난간 없이는 이동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런 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힘든 길에 기대어 걸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장이라는 말이었죠. 그 말씀을 들은 후, 마을을 걸을 때마다 난간이 단순한 보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주는 소중한 구조물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이장님은 그 난간과 같은 존재였고, 저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을의 삶에 깊이 들어가 보고, 함께 숨 쉬어 본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이장은 난간이라는 걸, 저는 용암리에서 배웠습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청산도 나들이,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음식 만든 것, 트로트 한 소절, 난간 수리 민원 접수하고 해결한 일 등 모든 것이 기억에 남아요. 사실 시간 관계상 방송에는 못 나간 내용이 훨씬 많거든요. 한글 학교 도우미로 활약했던 일, 경로당 잔치에 못 오신 어르신들께 음식을 배달한 일, 마을 지원 사업 신청하러 어머니와 함께 읍사무소에 갔던 일 등이요. 특히 그 전날, 마을을 순찰하며 만난 어르신께 닭볶음탕을 가져다드린 일이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그냥 반찬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그 어르신께서 너무 고마워하시며 오열하셨어요. 다리가 불편한 자신을 찾아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도 정말 울컥했습니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어르신이 그렇게 감사하게 여겨주셔서 한편으로는 죄송스럽기도 했어요. '또 올게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하면 거짓말이잖아요. 저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더 죄송했어요. 나아가 어르신 분들은 청춘을 바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주신 분들인데 그 감사한 마음을 잊고 지내진 않았나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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