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해외에서 특정 영화의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메일이 폭주하면서 영화제 측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전쟁을 치른 나라에 대한 감정이 작품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전주영화제는 '상영에 대한 걱정과 우려는 이해한다'면서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항의를 받는 영화는 미국 태생의 여성감독인 에밀리 므크르티치안 감독이 연출한 <사라진 공화국>으로 예레반 황금살구영화제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발발하면서 긴박하고 처절하게 삶을 이어가는 네 여성을 조명한다. 전쟁의 여파와 또 다른 위협에 직면해 있는 미승인 국가 아르차흐 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하지만 전주영화제 상영 소식이 알려지면서 하루 수백 통의 항의메일이 사무국으로 쏟아지는 중이라고 한다. 전주영화제 측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발송된 메일로 똑같은 내용의 메일을 여러 아이디로 보내고 있다"며 "이런 식의 항의를 받은 게 처음이라 적응이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영화의 소재는 아르차흐 공화국
▲26회 전주국영화제 상영작 <사라진 공화국>
전주영화제 제공
영화의 소재가 된 아르차흐 공화국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위치하며 1991년부터 2023년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구소련 해체 이후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국민의 95%가 아르메니아인이어서 아르메니아 괴뢰 국가로 인식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지난 2020년 아르메니아는 앙숙 관계인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공화국은 해체되었고, 국민 대다수는 아르메니아로 탈출했다.
전주영화제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아르메니아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반영했다는 한계가 있긴 하다"고 지적했으나, "혼란한 상황을 이겨나가는 네 여성의 모습은 진하게 각인된다"고 평가했다. <사라진 공화국>은 '프론트라인' 섹션으로 선정됐는데, 도발적이고, 독립적이며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란 평가다.
이와 관련 전주영화제 측은 영화 상영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영화의 해방구 성격을 갖는 영화제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의 압력이나 우려로 상영을 중단하는 것은 드물다.
전주영화제 민성욱 집행위원장은 "아제르바이잔 국민 여러분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한 만큼 여러분들의 대사관과 잘 조율 할테니 제발 이메일 폭탄은 멈춰달라"면서 자제를 호소했다. 이어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만든 영화를 상영한다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여러 분쟁 지역의 영화를 상영할 때도 상대국에서 이처럼 행동했던 적은 없었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한편, <사라진 공화국>은 1일과 5일, 9일 상영이 예정돼 있는데, 한 회차는 예매가 매진된 상태다.
▲26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전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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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해외 항의메일 폭주에 '당혹'... 무슨 일 있었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