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해탈'을 현존의 자유라 말한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더는 그 어떤 집착과 애욕을 가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불교의 구원은 죽음 이후의 극락이나 지옥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말한다. 하지만 삶이 어디 그럴까.
삶의 애욕과 집착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 바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아닐까. 젊고 늙어가는 삶의 파고를 겪어내며 우리는 그로 비롯되는 삶의 '고해(苦解)에서 허우적거린다. 4월 19일 첫 선을 보인 jtbc의 드라마<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서도, '레테의 강'(망각의 강)으로 이승의 기억을 씻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젊어진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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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해숙(김혜자 분)은 이제 막 천국에 도착했다. 젊은 날 남편이 다리를 다쳐 그때부터 가장이 되었던 해숙은 시장통에서 '일수'를 찍으며 모질게 살아왔다. 죽은 이의 상가에 가서 못 받은 돈을 받으려고도 했다. 그런 지독함으로 인해 욕을 먹었다. 그녀가 늘 들고 다니는 우산은 비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시로 쏟아지는 구정물과 오물을 막기 위한 용도가 됐다.
그래서 해숙은 당연히 죽어서 지옥에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천국 역에 도착한다. 입국 절차 과정에서 몇 살의 나이로 살고 싶냐는 물음에 해숙은 자신의 전성기를 떠올려 본다. 스무 살, 스물 다섯? 그러다 문득 여전히 늙어서도 자신을 보고 아름답다 했던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은 말했다. 살면 살수록 그 삶의 무게가 얹혀 더 이쁘다고. 그래서 천국 센터 직원의 뜨악한 반문에도 해숙은 80대 지금의 모습으로 천국에 입소한다.
천국에 남편이 먼저 도착해 있다는 말을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웬걸 자신에게 늙어도, 아니 늙어서 더 아름답다 했던 남편은 팔팔한 삼십 대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부터 해숙의 천국은 지옥이 되었다.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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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죽어 다시 만난 부부 이해숙과 고낙준의 웃지 못할 천국 해프닝을 그려간다. 천국에 들어온 모두가 싱그러운 젊음이 흐드러진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유일하게 80대의 모습으로 남은 해숙의 존재는 그 자체로 '비극'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 '비극'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해숙의 외양, 아니면 해숙에게는 이쁘다 해놓고 젊음에 천착한 낙준의 배신? 그도 아니면 해숙의 마음?
우선 첫 번째, 천국 오리엔테이션에서 해숙은 묘한 인물들을 만난다. 보이기는 사람인데 하는 행동이 영 수상하다. 해숙을 보고도 말을 건네는 대신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는 식이다. 안내 방송과 함께 우르르 몰려 나간 이들, 저만치서 그들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등장하자 변신한다. 사람의 모습으로 천국에 머물렀었지만 그들은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너와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던 애완동물들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야 천국에 온 주인들은 자신을 기다렸던 애완동물을 알아보고 목놓아 부르며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제야 비로소 애완동물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들, 시간과 존재의 간극을 넘어서 그들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이 두 번째 이야기는 어떨까? 자신을 기다렸던 남편이라지만 그의 젊은 모습에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던 해숙,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낙준을 찾아 한 여성이 온다. 천국의 우편배달부로 일하는 낙준이 지옥으로 가려던 그 여성을 구해주었단다. "낙준씨"라 부르며 해숙의 남편을 부둥켜안는 그 여성을 보고 해숙의 질투심이 폭발한다.
결국 스스로 못 견딘 해숙은 오랜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어린 해숙을 두고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던 어머니가 세월의 터널을 넘어 1950년대의 한 마을에 살고 계시단다.
해숙이 기억하는 그 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 살고 계신 어머니. 해숙이 그녀를 부르자 '해숙아' 라며 반가이 맞아주신다. 해숙은 의아하다. 남들이 보면 거꾸로 모녀 지간이라고 해도 어울릴 모습인데 80대의 해숙을 어머니는 마치 어제 본 듯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해하지 못하는 해숙에게 어머니는 내 딸인데, 엄마가 딸을 못 알아 볼 리가 있겠냐고. 그러면서 어머니는 80 노파가 된 딸을 어린 딸처럼 쓰다듬고 품에 안는다.
해숙이 펼쳐 보일 퍼즐의 조각들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한 장면.jtbc
사람처럼 보였어도 한눈에 자신의 애완동물을 알아보는 주인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의 딸을 한눈에 알아보는 어머니. 이 에피소드를 통해 비로소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80대의 모습으로 천국에 온 해숙이라는 퍼즐의 조각을 조금씩 펼쳐내 보인다.
드러난 모습과 살아온 시간들, 그것만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여전히 80대라는 자신의 모습에 갇힌 해숙은 자신을 어린 딸의 모습으로 보아주는 어머니의 진심은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낙준의 진심은 버겁다. 해숙은 80대라는 자신의 겉모습을 넘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향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여전히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지옥이 어울리겠다는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될까.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김석윤 감독과 이남규·김수진 작가, 김혜자 배우가 함께 한 두 번째 작품이다. 앞서 JTBC <눈이 부시게>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년의 여성을 통해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 경의를 표했던 제작진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 80대의 모습으로 천국의 이방인이 된 이해숙의 앞으로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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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몸으로 천국 간 김혜자, 제작진 이번에도 작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