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MBC 월화 드라마 <허준>은 64.8%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아직도 깨지지 않은 역대 사극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MBC에서는 <허준>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2001년 이병훈 감독과 최완규 작가 콤비가 다시 뭉친 이재룡, 김현주, 정보석 주연의 새 월화 드라마 <상도>를 선보였다. <상도> 역시 흥미로운 스토리와 배우들의 좋은 연기로 20% 안팎의 좋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이병훈 감독의 전작 <허준>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동 시간대에 SBS의 <여인천하>와 KBS의 <겨울연가>라는 '거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준신화'가 시청자들에게 서서히 잊히기 시작하던 2003년, 이병훈 감독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신예 여성 작가와 함께 신작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허준>에 이어 역대 사극 시청률 2위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국내는 물론이고 방송 후 10년 동안 세계 87개국에 수출되며 1000억 원이 넘는 경제적 이윤을 남긴 전설의 한류 드라마 <대장금>이었다.
▲<대장금>은 방송 후 10년 동안 87개국에 수출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한류 드라마였다.
<대장금> 홈페이지
'산소 같은 여자'에서 '한류 여신'으로
1990년 초콜릿 CF에서 홍콩스타 유덕화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며 데뷔한 이영애는 데뷔 초까지만 해도 배우보다는 CF스타로 더 유명했다. 20년 넘게 이영애를 상징하던 애칭 '산소 같은 여자' 역시 화장품 광고를 통해 얻은 별명이었다.
이영애의 전성기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한국계 스위스 소령 소피 장을 연기한 이영애는 2001년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 먹을래요?"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겼다. <봄날은 간다> 이후 1년 넘게 작품 활동이 없었던 이영애는 2003년 9월 <허준>을 연출한 이병훈 감독의 신작 <대장금>으로 컴백했다.
이영애는 <대장금>에서 수라간 상궁 나인에서 관비로 쫓겨났다가 의녀로 돌아와 임금의 주치의가 되는 서장금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잘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대장금>은 이영애의 열연에 힘입어 역대 사극 2위에 해당하는 57.8%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영애는 2003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대장금>은 현재까지도 이영애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영애는 2005년 박찬욱 감독과 재회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를 끝으로 오랜 공백을 가졌고 2009년 결혼 후 2011년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공백기는 더욱 길어졌다. 이영애는 2017년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를 통해 12년 만에 컴백했지만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19년 1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나를 찾아줘>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박함을 잘 표현하며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영애는 2021년 jtbc 드라마 <구경이>에서 형사 출신의 은둔형 외톨이를 연기했다. 이영애는 2023년 프랑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마에스트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차세음 역을 맡아 또 한 번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1000억 경제 효과' 안긴 레전드 한류 드라마
▲이영애는 수라간 나인에서 임금의 주치의가 되는 장금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잘 표현하며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MBC 화면캡처
많은 사극 드라마들이 그런 것처럼 <대장금> 역시 조선 중종 시절의 의녀 '장금'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든 드라마다. 하지만 의녀 장금은 중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주치의를 했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기록이 크게 부족했다. 따라서 현재 시청자들이 알고 있는 <대장금>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김영현 작가가 직접 만들어낸 창작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큰 인기 덕에 인물에 대한 논란은 거의 없었다.
<대장금>은 크게 장금이가 궁궐 수라간에서 한상궁(양미경 분)을 도왔던 나인 시절의 전반부와 누명을 쓰고 관비로 쫓겨났다가 어머니와 스승의 한을 풀기 위해 의녀가 돼 궁으로 돌아오는 후반부로 나눠진다. 이병훈 감독과 김영현 작가는 나인 시절과 의녀 시절의 파트를 적절히 분배했지만 화제성은 수라간 시절이 좀 더 높았다. 특히 장금이가 미각을 잃었을 때 시청자들의 관심은 절정에 달했다.
<대장금>의 장금이는 사극 속 여성 캐릭터의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넘치는 도전 정신과 강한 집념으로 당당하게 역경을 극복해가는 멋진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며 큰 호평을 받았다.
<대장금>은 신드롬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영현 작가는 <대장금> 이후 박상연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선덕여왕>,<뿌리깊은 나무>,<육룡이 나르샤> 같은 사극 명작들을 집필했다. <대장금>은 87개국에 수출돼 인기를 얻었고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인도 교도소에 수감된 한 남성이 <대장금>을 보고 삶의 희망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대장금>은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소설이 발매됐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뮤지컬로 공연되며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창작 애니메이션 <장금이의 꿈>이 방송돼 인기를 끌며 일본으로 수출되고 시즌2까지 제작됐다. 2018년에는 MBC에서 '대장금의 후손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라는 설정의 예능 드라마 <대장금이 보고 있다>가 방송되기도 했다.
엄격하면서도 따뜻했던 장금이의 스승
▲양미경이 연기한 한상궁은 <대장금>의 인기와 함께 이상적인 스승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MBC 화면 캡처
2003년 <러브레터>를 통해 주목 받기 시작한 지진희는 같은 해 <대장금>에서 민정호 역을 맡으며 스타 배우로 도약했다. 좋은 집안과 출중한 외모, 온화한 성격, 문무를 겸비한 능력을 갖춘 민정호는 일편단심으로 장금에게 헌신적인 인물로 음으로 양으로 장금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다. 민정호는 나이도 장금보다 많고 직책도 높지만 장금을 언제나 "서나인" 또는 "서의녀"라고 높여 부른다.
양미경이 연기한 한상궁은 생각시 시절 장금 어머니(김혜선 분)의 절친이자 장금이 궁으로 들어온 후엔 장금의 든든한 스승이자 멘토 역할을 했다. 강직한 성품의 원리원칙주의자지만 언제나 장금을 친딸처럼 아끼는 어머니 같은 존재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장금이를 의녀로 키워준 수의녀 장덕(김여진 분)이 상대적으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도 한상궁의 엄청난 존재감 때문이었다.
선악의 구분이 분명한 드라마에서는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시청자들의 미움을 독차지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최상궁 역의 견미리는 <대장금>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노비 출신 한상궁에 밀려 최고 상궁에 오르지 못한 최상궁은 이에 앙심을 품고 한상궁과 장금에게 누명을 씌운다. 결국 의녀로 복귀한 장금에 의해 음모가 밝혀지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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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개국에 수출, '천 억' 경제효과 남긴 전설의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