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5년 4월 21일. 현지 시각 7시 35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의 성녀 마르타의 집(Casa Santa Marta)에서 사망했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역사적으로는 여러 기록을 남겼다. 가톨릭 2천 년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었고, 시리아 출신 교황(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었다. 또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었으니까.

그의 이름과 행보도 남달랐다. 그는 교황 중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골랐다. '가난한 이들의 성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따르겠다는 의지였다. 바티칸 은행 감독 위원회에서 매년 추기경들에게 2만 5천 유로(약 3500만 원)를 보너스로 지급하던 관례를 폐지하며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였다. 더 나아가 소외된 이들을 세상과 교회의 중심으로 이끌기 위해 애썼고, '빈자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선종 소식이 발표된 후, 민족과 국적, 종교를 뛰어넘은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바티칸으로 향하고 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의 변화와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심을 끌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 기간 12년을 지금 바로 OTT와 극장에서 접할 수 있는 영화 세 편으로 되돌아봤다.

넷플릭스 <두 교황>: 프란치스코 시대의 예고편

 영화 <두 교황> 스틸컷
영화 <두 교황> 스틸컷넷플릭스

15세기 이후로 동 시기에 두 명 이상의 교황은 볼 수 없었다. 교황은 종신직이었고, 전임 교황이 선종했을 때만 새 교황이 선출됐으니까. 적어도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하기 전까지는. 그러니 전임 교황과 새 교황이 공존한 특별한 사례,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계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두 교황>은 바로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영화다.

자연히 <두 교황>에서는 안소니 홉킨스의 베네딕토 16세와 조나단 프라이스의 프란치스코 간의 차이가 묘사된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나 음악 취향부터 난민, 동성애, 낙태 등 논쟁적인 의제에 대한 견해까지, 두 교황은 번번이 대립한다. '신의 로트와일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교리를 지키는 데 투철했던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프란치스코는 더 유연하게 세상의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고 믿으니까.

그중에서도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보다는 프란치스코의 입장과 신념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과거 애인, 직장 동료, 친구 사제들과의 일화를 통해 그가 가톨릭 교회 내에서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게 된 배경을 알려준다. 이에 더해 초반부에 사제들의 성추문, 바티칸 은행의 금융거래 부패 스캔들 같은 굵직한 사건·사고를를 배치하면서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태도에 정당성을 불어넣기도 한다.

물론 베네딕토 16세가 대변하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부정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두 교황이 서로에게 고해성사를 해주는 장면만 보더라도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두 교황>이 프란치스코를 위한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고해성사 장면조차도 가톨릭교회가 변화로써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언을 품고 있으니까. 그와의 첫 만남을 되돌아보기에 <두 교황>만 한 영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즈니+ <아멘: 교황에게 묻다>: 개혁가와 성직자 사이에서

 영화 <아멘: 교황에게 묻다> 스틸컷
영화 <아멘: 교황에게 묻다> 스틸컷디즈니+

혹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외적 이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개혁적인 이미지와 달리 그의 지도 하에서도 가톨릭교회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로 낙태나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고, 성공회와는 달리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보면 교황의 대중적 이미지와 실질적 행동 사이에서 괴리감이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디즈니+ 다큐멘터리 <아멘: 교황에게 묻다>는 그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영화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 페루, 스페인, 콜롬비아 등에서 모인 청년 10명이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나눈 대담을 기록했다. 그들은 교회 내 학대 및 성범죄 문제, 낙태/동성애/섹스/여성 사제에 관한 교리, 무신론자 및 냉담자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입장 등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교황과 의견을 주고받는다.

전반적인 대담은 예상과 사뭇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황은 낙태가 살인이라고 엄격히 규정한다. 엄연히 인간 생명체인 아기를 살인하는 행위이기에 교리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못 박는다. 이는 '진보적'으로 알려진 교황의 답변치고는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의 선진국은 대체로 낙태죄를 폐지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낙태라는 살인은 단죄할지언정, 그 낙태를 선택한 여성을 배척하거나, 비난하거나, 벌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죄인을 사랑한 예수처럼 교회는 사랑을 베풀고 실천해야만 하니까.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교황의 답변은 일관적이다. '교회법 상 규정된 죄가 바뀔 여지는 크지 않지만, 죄를 저지른 사람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으로 감싸안아야 한다'라는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와 태도는 일견 냉정하고 소극적이다. 청년들이 바라는 변화의 속도와 수위를 못 따라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동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밝히며 교황청 산하 미성년자보호위원회를 설립하고,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 처벌을 명문화하며 38년 만에 교회법을 개정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노력은 더 인상적이다. 가톨릭교회라는 조직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변화를 추구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신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지를 그의 답변과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으니까.

사실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복잡한 이야기를 빼더라도 이 다큐멘터리는 가치가 있다('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표기한 자막만 빼면). 대담의 끄트머리에서 왜 지난 10여 년간 프란치스코가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를 명쾌히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건넨다.

"관념의 노예가 되지 마세요. 자기만의 생각을 선택하고 삶에서 일관성을 추구해야 해요. 내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행하는 것 사이의 일관성을요. 두뇌의 언어, 가슴의 언어, 손의 언어의 일관성을요."

<콘클라베>: 프란치스코의 유산은 이어질까?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디스테이션

교황이 선종하면 자연스럽게 콘클라베로 시선이 집중된다. 콘클라베의 진행 절차와 과정뿐만 아니라 새 교황 후보군으로 예측되는 추기경들도 덩달아 주목받는다. 14억 명이 넘는 신자를 보유한, 단일 종교 조직으로는 최대 규모인 가톨릭교회의 향후 방향성과 지향점이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 달리 말해 전임 교황의 유산이 이어질 수 있을지가 정해지는 순간이다.

지난달 개봉해 꾸준히 상영 중인 레이프 파인스 주연의 영화 <콘클라베>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선종한 시점부터 새 교황이 발표되는 순간까지 추기경단 사이에서 숨 가쁘게 벌어지는 알력 다툼을 세밀하게 카메라로 담아낸다. 특히 기존 교리에 충실해지자는 보수파와 선종한 교황처럼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개혁파 간의 갈등과 대립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흥미롭게도 <콘클라베>의 내용은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극 중 선종한 교황이 그랬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적인 리더십 또한 가톨릭교회 내 보수 진영의 강력한 반발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신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이유로 전통 라틴어 미사 집전을 제한하거나,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를 허용하는 등의 조치에 대해서는 교회 내부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진 바 있었다. 즉, <콘클라베>는 267대 교황 선출 콘클라베의 진행 과정이나 쟁점을 미리 볼 수 있는 영화인 셈이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겨둔 힌트를 고려하면 현실의 콘클라베는 영화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콘클라베 투표권을 가진 80세 미만 추기경 137명 가운데 99명을 직접 임명했고, 참석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는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는 게 콘클라베의 원칙인 이상,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이 계승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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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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