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바탕으로 각색을 거쳐 탄생한 국내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9년 만에 돌아왔다. 초연 당시 이지나 연출, 김문정 음악감독 등 유명 창작진에 더해 김준수, 박은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두터운 마니아 층을 확보했지만, 동시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가도 있었다.

원작과 뮤지컬은 영원한 젊음을 갈망한 아름다운 청년 '도리안 그레이'가 자신의 영혼을 '배질 홀워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와 맞바꾸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에는 도리안이 영원한 젊음을 탐하도록 자극하는 '헨리 워튼'이라는 인물도 있다. 9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원작 소설보다 적극적으로 세 인물의 관계성을 그려낸다.

재연에서는 유현석·윤소호·재윤(SF9)·문유강이 도리안 그레이를 연기한다. 최재웅·김재범·김경수가 헨리 워튼 역을, 손유동·김지철·김준영이 배질 홀워드 역을 맡는다. 공연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6월 8일까지 이어진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공연 사진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공연 사진(주)PAGE1

세 인물의 대립 구도

도리안 그레이의 아름다움은 사교계도 매료시킬 정도다. 배질 홀워드는 도리안의 아름다운 모습을 초상화에 담는다. 배질이 보기에 도리안은 외형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면도 아름답다. 도리안이 아름다운 이유는 외면과 내면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고, 여기서 배질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옹호한다.

반면 헨리 워튼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도덕, 슬픔, 동정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내면의 아름다움은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따라서 이런 도덕의 속박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도리안에게도 쾌락을 따르라고 설득한다.

본능에 충실하라는 헨리를 향해 도리안은 죄 의식도 본능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헨리는 그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능을 따름으로써 영원한 젊음을 얻을 수 있다고 도리안을 재차 설득한다. 도리안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영원한 젊음을 내세운다.

갈팡질팡하던 도리안은 연인이었던 시빌 베인의 죽음을 목격하고 변화한다. 정서적 혼란 상태에 빠진 도리안은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는 아름다운 초상화와 자신의 영혼을 맞바꾸는 행위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공연 사진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공연 사진(주)PAGE1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배질과 헨리의 주장에는 각각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도덕적인 내면을 중시하는 배질의 말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하지만 시대의 도덕이 배질을 억압하기도 했는데, 배질은 동성애를 금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도리안을 향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도덕에 맞서라는 헨리의 주장도 타당해보인다. 도덕에 얽매이지 말라는 헨리의 말은 과한 면이 없진 않지만,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철학과 맥락을 같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헨리는 무조건적으로 본능을 따르라고만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것에 합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도리안이 본능에 따라 쾌락을 좇는 데에는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증권가 혼란을 초래한다거나 간음을 일삼는다. 도리안이 쾌락을 추구할수록 초상화는 일그러지고 붉은색으로 물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점점 괴물이 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도리안은 이 때문에 괴로워한다.

결과적으로 도리안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마지막 선택을 한다. 그제서야 초상화가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바로 이 장면에서 배질은 도리안을 향해 다음와 같이 말한다.

"영혼이 고통받는 한 넌 그림 속 도리안 그레이야"

이 대사, 나아가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자기 성찰의 필요를 역설한다. 자기 성찰은 자신이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자기 통제와 다르다. 자기 통제는 외부의 기준을 내면화해 적용하는 것인데, 외부의 도덕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사랑을 억누른 배질이 자기 통제의 사례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끊임없이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도리안 그레이>를 보고 나오며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올랐다. 다음은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악하지 않은 인간의 조건으로 제시한 인간상이다.

"각별한 수치심을 가지고 안절부절못하면서 곤궁한 삶을 사는 사람."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공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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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뮤지컬 도리안그레이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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