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팩에 든 물과 재활용이 가능한 자이로 밴드.
신나리
콜드플레이는 사전에 공연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을 포함한 금속·유리 재질 물병 반입을 금지한다고 알렸다. 공연장에는 실리콘과 플라스틱 다회용 물병만 반입이 가능했다. 대신 주최 측은 곳곳에 음수대를 설치하고 멸균팩에 든 물을 판매했다.
콜드플레이는 지난 2016∼2017년 월드 투어 'A Head Full of Dreams'를 진행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약 250만 톤에 달한다는 분석에 충격을 받고, 2019년 공연을 중단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환경에 진심인 아티스트다. 이후 지속 가능성 실천을 위한 보완책을 준비해 2022년부터 공연 투어를 재개했다. "탄소 배출을 이전 투어 대비 최소 50%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히며 3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데, 2022년 3월 코스타리카 공연에서 시작돼 올해 9월 영국 런던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오는 25일까지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여섯 번의 공연도 이 프로젝트의 일부다.
멸균팩이 든 물을 구입하고 티켓을 교환해 현장에서 나눠준 자이로밴드(Xyloband)를 손목에 찼다. 자이로밴드는 노래에 맞춰 불빛이 빛나는 LED 팔찌로, 식물성 자연 분해 소재로 만들어졌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반납을 유도, 다음 공연에 재사용되는 게 특징인데, 주최 측은 콘서트장 전광판을 통해 나라별 회수율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앞서 4월 18일 콘서트에서 자이로밴드 회수율은 98%를 기록하며 서울이 1위에 올랐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형 스크린에는 One Tree Planted, The Ocean Cleanup 등 콜드플레이와 협업하는 환경단체를 선전하는 영상이 재생됐다. 티켓 수익금·굿즈 판매의 일부가 산림 복원·해양 정화·탄소 포집 기술 지원·환경법 제정 등에 사용된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였다. 콜드플레이가 좋아 공연장에 온 것뿐인데, 무언가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에 일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후 8시가 되자 영화 'E.T.'의 메인 테마곡과 우주여행을 연상케 하는 VCR이 흘러 나왔다. 중앙 통제를 통해 움직이는 자이로밴드가 손목에서 발광하기 시작했다. 콜드플레이가 '하이어 파워'(Higher Power)를 선보이며 시작을 알렸다. 공연은 ▲행성(Planets) ▲달(Moons) ▲별(Stars) ▲집(Home)까지 총 4섹션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섹션의 테마는 '행성'이었다. 이어 '어드벤처 오브 어 라이프타임(ADVENTURE OF A LiFETiME)', '파라다이스(PARADiSE)', '더 사이언티스트(THE SCiENTiST)' 등 글로벌 히트곡이 연이어 쏟아졌다.
숨을 고르고 마이크를 쥔 크리스 마틴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며 무대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인사했다. 이어 스탠딩석 뒤편엔 관객이 발을 구르고 점프할 때마다 전력이 생산되는 '키네틱 플로어'와 자전거 페달을 밟아 에너지를 만드는 '파워 바이크'가 있다고 소개했다. 마음껏 뛰어놀면, 여기서 만든 에너지로 다음 공연의 C구역 스테이지를 가동시킨다는 거였다. 그의 말에 스탠딩 존 뿐 아니라 지정석의 관객까지 총 5만 관객이 일어나 환호했다.
'찰리 브라운(CHARLiE BROWN)', '옐로(YELLO)',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 '어 스카이 풀 오브 스타스(A Sky Full Of Stars)'의 곡이 나올 때 자이로밴드에서 노랑, 파랑, 빨강의 빛이 뿜어 나왔다. 5만 개의 빛이 공연장을 채웠다.
콜드플레이의 진심
▲콜드플레이의 월드투어 ‘뮤직 오브 더 스피어(MUSIC OF THE SPHERES)’ 한국 공연.라이브네이션코리아
"나는 한때 세상을 지배했지/ 바다도 내 명령에 물러서곤 했지 / 이젠 아침에 홀로 잠들고 / 내 것이었던 거리를 청소하네."
지금까지도 콜드플레이를 상징하는 명곡이자 국내에서는 이른바 '탄핵송'으로 불리는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에서 관객들이 떼창을 이어갔다. 독재자의 말로와 권력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노래는 콜드플레이 공연을 앞두고 갑자기 주목받았다. 8년 전 콜드플레이가 내한했을 당시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 후 조기대선 체제로 접어든 시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역시 한국 대통령이 공석인 상태에서 내한했다. 크리스 마틴은 지난 18일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2회차 공연 도중에 "콜드플레이가 한국에 올 때마다 대통령이 없네요"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콜드플레이는 공연 내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마음껏 드러냈다. 크리스 마틴은 손목에 색색깔의 무지개 팔찌를 차고 있었다. '피플 오브더 프라이드(People of the Pirde)'를 부르며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문양의 '프라이드 깃발'을 흔들며 무대를 돌았다.
여러 관객을 배려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외계인 헤드를 쓰고 등장한 콜드플레이는 관객들을 안아주는 모션을 했는데, 크리스 마틴은 'Something Just Like This'의 1절을 수화로 전했다. 콜드플레이는 무대가 잘 보이는 '스탠딩 구역'에 청각장애인 공간을 만들고 수어 통역사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각장애인 지원단체 '사랑의달팽이'에 따르면, 공연에 온 농인과 난청인을 위해 '웨어러블 조끼' 역시 제공했다. 이 조끼는 드럼이나 베이스 같은 낮은 음역을 진동 형태로 몸에 전달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중음악·연예 행사를 경험한 장애인은 6%에 불과한데(2023년 기준)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함께' 즐긴다는 것의 가치와 방식을 고민하게 했다.
공연 내내 크리스 마틴이 입었던 티셔츠에는 이번 투어의 테마인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이방인입니다(everyone is an alien somewher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실제 크리스 마틴은 공연 중간중간 젠더, 인종 등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를 언급하며 평화를 언급했다. 공연장에는 이탈리아·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각국에서 온 팬들이 각자의 국기를 들고 환호했는데 그는 당신이 누구든, 어떤 피부색이든 어떤 성적 지향이든 모두 이 지구에서 함께 평화롭게 사는 존재여야 한다고 했다.
2000년 데뷔해 25년째 합을 맞추는 이 밴드의 공연은 노래가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 지구별을 향한 관심을 호소했고, 혐오 대신 사랑을 제안하며, 평화를 꿈꾼다고 노래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늘 '하나의 팀(one team)'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연 말미에 블랙핑크 로제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 크리스 마틴과 함께 글로벌 히트곡 '아파트(APT.)'를 불렀다. 로제의 등장에 관객은 엄청난 함성과 함께 '아파트' 떼창을 쏟아냈다. 앞서 지난 3회차 공연(4월 19일)엔 콜드플레이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방탄소년단(BTS) 맏형 진이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콜드플레이는 지난 16일을 시작으로 오는 25일까지 총 6회차 공연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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